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9-01-14   800

[기획] 벼랑끝에 선 중기·소상공인

참여연대-한겨레 공동기획 8부-②
민생뉴딜 서민경제살리기 긴급제안

참여연대와 <한겨레>는 여러 민간 연구소 및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정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민생에 투자해야 한다’는 취지의 ‘민생 뉴딜’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실업·고용 대책, 교육, 의료, 공공요금, 소상공인, 서민금융 분야 등에서 서민들이 실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심층진단하고, 현 시점에서 당장 절실한 대책이 무엇인지 집중탐구 합니다.(자문기관 참여사회연구소, 사회공공연구소,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희망제작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에듀머니) 2008. 12.

공장 멈출 판인데…허리 휘는 ‘출혈 납품’

한겨레-참여연대 공동기획
민생뉴딜 서민경제 살리기 긴급제안

벼랑끝에 선 중기·소상공인
 
   

» 부산에서 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손아무개 사장이 경기불황으로 가동조차 못한 새 장비를 가리키고 있다. 이 장비는 2억원을 들여 지난해 6월 마련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서민경제의 동맥이다. 노동자 10명 중 거의 9명이 이들을 통해 생계를 잇는다. 우리 경제의 동맥이 경제난으로 지금 치명타를 받고 있다. 원자재값 상승과 자금난 등으로 숱한 영세기업이 도산하는 등 고사 지경에 놓인 것이다. 영세 기업주들의 잇따른 자살은 그 처절한 실상의 방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대책은 ‘언발에 오줌누기’며, 사실상 무대책에 가깝다. 경영난으로 애태우고 있는 부산의 한 영세기업 사장과, 서울 소상공인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응답이 절실하다.

부산에서 자동차 부품 업체를 운영하는 손아무개(58) 사장은 요즘 들어 부쩍 거래업체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는다. 대부분 손 사장이 납품하는 제품 가격을 낮춰달라는 내용이다. 기자가 찾았을 무렵엔 작은 기계음조차 없는 상태에서 홀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는 “일률적으로 4%를 낮추자는 거죠? 그렇게 하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여러 차례 큰소리로 다퉜다. 그의 회사는 다섯 종류의 알루미늄 제품을 만들어 지엠대우 협력업체들에 납품하고 있는데, 제품 종류에 상관없이 4%씩 납품단가를 낮춰 달라는 요구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부산서 자동차부품업체 경영 ㅅ씨

지난달 가동률 30%…“단가 깎자” 요구만 빗발
정부 금융지원책 믿고 찾은 은행에선 ‘문전박대’

경기침체와 단가인하로 적자 누적

손 사장의 공장은 지엠대우의 휴업 영향으로 지난해 12월20일부터 올해 1월4일까지 문을 닫았다. 그래도 손 사장만은 행여나 구매자가 찾아올지 몰라 1월1일을 제외하고는 회사를 지켰다. 하지만 그를 찾는 것은 모두 납품단가를 깎자는 전화뿐이었다. 모두 원자재(알루미늄) 값이 떨어졌으니 납품단가를 낮춰 달라는 것이었다.

납품단가의 70~80%를 차지하는 알루미늄값은 2007년 하반기 ㎏당 2200원에서 2008년 상반기 3100원까지 치솟았다. 40% 이상 올라 기존 주문을 대자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청업체는 원자재값 상승분을 납품가격에 제대로 반영해 주지 않았다. 원자재값이 오른 지 서너 달 지나 2600원까지만 인정해 줬다. 2008년 하반기부터는 사정이 갑자기 달라졌다. 최고점을 찍고 서서히 가격이 내려가자 원청업체는 득달같이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한 달에도 서너차례씩 원자재값이 떨어졌으니 납품단가도 깎자며 조정을 요구했다. 추가로 내려갈 전망이라며 현재의 2200원 수준보다 낮은 2160원으로 하자는 요구도 있었다.

손 사장은 “칼을 쥔 사람은 저쪽이라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단가를 낮추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라도 받으려면 약자 처지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전화기를 붙들고 원청업체 김아무개 차장과 입씨름을 벌였지만 결국 요구를 받아들였다. 손 사장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4억원가량. 원자재값 상승, 납품단가 인하 등의 어려움으로 매출이 전년보다 70%나 줄어들었다.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했다.

떠나는 직원들

손사장은 1994년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1500만원으로 아내와 단둘이 공장을 차렸다. 당시에는 손 사장이 기계를 잡고, 아내가 제품을 정리했다. 이를 다시 트럭에 실어 직접 납품을 했다. 잠이 모자라 졸다가 접촉사고를 낸 적도 많았고, 공장에서 졸도해 응급실 신세도 여러차례 졌다. 그래도 품질을 인정받아 주문처가 하나둘 늘어났고, 공장도 커갔다. 2006년에는 산업단지 터를 분양받아 버젓한 공장을 세웠고, 매출도 수십억원을 자랑하는 곳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6개월 동안 불어닥친 위기는 지난 15년의 세월을 날려버릴 기세다. 지엠대우가 생산량을 줄이면서 주문도 줄었고, 그에 따라 공장가동률이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가동률은 30%에 불과해, 한 달 가운데 일주일 정도만 공장이 돌아갔다. 2007년 20명에 이르던 직원들도 하나둘 회사를 떠나 현재는 10명만 남았다.

공허한 정부 대책

손 사장은 원자재 구입과 인건비 등 운전자금을 마련하려고 은행을 찾았지만 돈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서로 빌려 가라던 은행은 문을 굳게 닫은 지 오래다. 손 사장은 지난해 연말 기술보증기금(기보)을 찾았다.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매출 감소와 담보 부족 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지난 8일 정부가 기보의 보증한도 확충 등을 포함한 50조원 규모의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하자 다시 찾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 사장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을 믿고 찾았지만 이번에는 ‘고용보험료를 연체해 200여만원의 압류가 있어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며 “직원이 ‘(소액 압류에도 대출을 해 주라는) 정부 정책은 나왔지만 아직 전달이 안 됐다. 6개월 뒤에나 찾아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담보력이 부족한 기술혁신형 기업에 대출을 해 주겠다는 정부 정책에서도 손 사장은 소외됐다. 그는 “기술혁신형 기업, 선진 기업 등 규모가 있는 곳에 대해서는 장려책이 많다”며 “나처럼 직원 10여명의 소기업한테 정부 정책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거꾸로 부담은 자꾸만 늘고 있다. 원청업체의 제안으로 지난해 2억원을 들여 도입한 새 설비는 가동조차 못한 채 매월 이자만 90만원이나 덧붙는다. 2006년 빌린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책자금 1억8천만원도 올해부터 분기마다 1500만원씩 상환해야 한다. 그와 비슷한 신세의 주위 업체 사장 상당수는 헐값에 공장을 팔고 단지를 떠났다.

창업 이후 15년 동안 한 달 이상 공장을 세운 적이 없었다는 손 사장은 대신 장기간의 휴업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1월 공장 가동일이 7일에 불과해 차라리 공장을 세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사장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요즘은 정말 출근하기 싫다. 절반밖에 안 남은 직원들 월급 줄 자신도 없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 사장에게 2009년 1월 겨울바람이 유난히 차가워 보였다.

부산/글·사진 이정훈 기자

대형마트 등쌀에 버텨봤자 ‘헛장사’
 
서울 구로서 슈퍼마켓 운영 ㅂ씨
권리금 포기했는데도 인수자 안나서

10년째 서울 구로구에서 ㅋ마트를 운영해 온 백아무개(46) 사장은 요즘 죽을 맛이다. 경제난으로 매출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인근에 대형마트 두 곳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하루 매출 400만원에 이르던 수입은 1년6개월 전 대형마트 입점 뒤 점점 떨어지더니 이젠 하루 1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백 사장은 “이 돈으로는 관리비·월세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대형마트도 경제난이 겹치면서 경쟁을 세게 해 사실상 365일 내내 세일을 한다. 우유 하나를 살 사람도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린다”며 “(대형마트가) 밤 9시까지만 영업해도 우리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백 사장은 데리고 있던 직원 셋을 모두 내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엔 부인과 처남으로 채웠다.

경제난은 이런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주변의 구멍가게 대여섯 곳은 이미 문을 닫았다. 백 사장은 “경기불황으로 소비자가 꼭 필요한 것만 사는 바람에, 과일·고기 등의 매출은 줄고, 대형마트의 갑절에 이르는 카드 수수료로 이중고를 겪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선 더 버틸 재간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면서도 “일을 접고 싶어도 그만두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매출 감소로 결국 슈퍼마켓을 내놓고, 권리금까지 포기했지만 (마트를 인수)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큰 고통을 겪지만 정부 대책에서 사실상 소외받고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백 사장 같은 소상공인들이다. 상시 노동자 5인 이하(제조업체는 10인 이하)의 사업자인 만큼, 규모와 자금 등이 열악해 불황에 견뎌낼 여력이 원천적으로 미약하다. 대기업이나 건설산업 등을 위해선 정부 대책이 긴급히 작동되지만, 이들을 위한 대책은 거의 없거나 있다 해도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소상공인들은 ‘카드 수수료 및 세금 인하’(65.7%), ‘물가 안정 대책’(53.9%), ‘정책자금 및 신용보증 확대’(32.4%), ‘대형마트 등 사업확장 규제’(25.5%) 등을 절실한 정부대책으로 꼽았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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