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8-12-24   1430

[기획] 등록금 빚에 도우미라도…졸업 전부터 ‘신불자’

참여연대-한겨레 공동기획 5부-①
민생뉴딜 서민경제살리기 긴급제안

참여연대와 <한겨레>는 여러 민간 연구소 및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정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민생에 투자해야 한다’는 취지의 ‘민생 뉴딜’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실업·고용 대책, 교육, 의료, 공공요금, 소상공인, 서민금융 분야 등에서 서민들이 실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심층진단하고, 현 시점에서 당장 절실한 대책이 무엇인지 집중탐구 합니다.(자문기관 참여사회연구소, 사회공공연구소,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희망제작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에듀머니) 2008. 12.

등록금 빚에 도우미라도..졸업전부터 ‘신불자’
[민생뉴딜] 서민경제 살리기 긴급제안 ⑤ 등록금 덫에 걸린 학생

 

대학생들이 빚에 시달리고 있다. ‘청춘의 덫’은 등록금이다. 등록금을 대느라 숱한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빚꾸러기’가 되거나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 ‘등록금 연 1천만원 시대’도 옛말이다. 경제난으로 소득까지 줄면서 대학생을 둔 서민가계에서 등록금은 이제 공포로 다가온다. 몇몇 대학들이 내년도 등록금 인상을 동결하고, 정부 또한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이 높고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적은 상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그들에게 비상구는 없어 보인다.

#1 제적에다 신용불량자까지 한정아씨

휴학복학 반복하다 제적 경험도
“신용불량 상태인데 취업 될까요”


ㅅ대 3학년에 재학 중인 한정아(가명·26)씨는 등록금 때문에 제적을 당하기도 했으며, 졸업도 하기 전인데 벌써 ‘신용불량자’ 신세다.

2002년 입학한 그는 1~2학기 등록금을 모두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냈다. 제2금융권인 ○○캐피털에서 ‘8%대 이자를 납부하면서 졸업 뒤 원금 상환’을 조건으로 부모님이 보증을 섰다. 입학금까지 합쳐서 3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대기에는 집안 사정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학기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하면서 2003년 그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동생도 전문대를 그만두고 돈벌이에 나선 상황에서 집에 손 벌릴 처지가 못 됐어요. 편의점·옷가게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40만~50만원으로는 생활비 대기에도 빠듯해 등록금은 모을 수 없었어요.”

한씨는 돈을 본격적으로 벌고자 2003년 휴학했다. 다행히 사무보조원으로 취직을 했지만 그가 받은 월급은 80만원 남짓이었다. 빚독촉은 연일 이어졌고, 결국 그는 2005년 ‘배드뱅킹’을 신청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다중 채무자들의 회생을 돕는 이 제도를 통해 1천만원의 빚 상환 계획을 세웠다. 신용불량자 굴레도 벗었다. 그러나 제2금융권에 있는 빚을 실수로 배드뱅킹에 묶지 못하면서 또다시 ‘압류 통지’를 받게 됐고, 결국 다시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돈을 모으면 복학을, 돈이 없으면 휴학을 반복하는 생활을 이어오던 한씨는 마침내 2007년 초 ‘3년 이상 휴학을 할 수 없다’는 학칙에 걸려 제적당하기에 이르렀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한씨는 한 독지가를 만나 장학금 형식으로 등록금을 지원받아 올해 초 3학년 1학기부터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재입학을 하려니까 신입생과 마찬가지로 입학금을 따로 내야 하더라고요. 모두 410만원 정도였고, 2002년 첫 입학 때보다 100만원 정도 올랐더군요.”

재입학 뒤 그는 지난 학기 학부 200여명 가운데 2등을 했다. 하지만 장학금은 등록금의 50%인 180여만원뿐이었다. 또다시 독지가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생활비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번 돈 50만원 남짓으로 충당한다.

한씨는 “학교 성적 장학금은 단과대에서 1등을 해야 100% 지급되고, 면학 장학금은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면 받기 여렵다”며 “당장 천만원이 넘는 빚도 문제지만, 신용불량 상태라 취업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빚쟁이 신세” 김한규씨

막일하면서 겨우 학업 마쳤지만
취업 뒤 번 돈 60% 빚 갚는 데 써

 
김한규(가명·29)씨는 대학 시절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과외, 식당 보조, 막노동 등 일일이 꼽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했다. 대학 시절은 등록금 마련하는 일로 고군분투 행군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신용불량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빚은 한때 3천여만원에 이르렀다. 가난한 집안 사정 탓에 등록금을 모두 학자금 대출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학기에 300만~400만원 남짓한 등록금을 8학기 모두 대출받아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대출 이자만 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활비와 이자를 대느라 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을 했다. 전단지 돌리기, 행사 보조, 사무 보조, 게임방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였다. 한시도 쉴 틈이 없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한 달 평균 60만원 남짓 벌었다. 시간이 나는 방학 때는 막노동 등 ‘바짝’ 일을 했지만 월세 보증금(500만원)을 대는 데 써야 했다.

그가 신용불량자 상태로 접어든 건 더는 돈을 벌 수 없는 군 복무 때였다. 꼬박꼬박 내던 대출 이자가 한 번 연체가 되더니, 제대를 하고 나서는 걷잡을 수 없게 돼 버렸다. “2005년 전엔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조차 없었고, 그게 생겼을 땐 이미 신용불량자라 이용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누나 이름으로까지 대출을 받아 지난해 겨우 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취업 대란’이었다. 경제를 공부한 만큼 금융권의 문을 두드렸지만 서류 심사조차 통과 못하기 일쑤였다. “선배들이 조심스럽게 ‘은행에서는 신용불량자를 안 받아준다’고 하더라고요.” 좌절의 연속이었다. 1년여 독서실에서 총무 일을 맡는 등 사실상 백수로 지낸 그는 올해 한 중소기업에 겨우 취업을 했다. “면접 때 사장님께 등록금 대출 때문에 신용불량 상태라고 고백을 했더니 이해를 해 주시더군요.”

김씨는 올 한 해 각종 세금을 떼고 2200여만원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월급의 60% 이상을 채무 상환에 써야 했다. 아직도 빚은 1600만원이나 남았다. “내년에도 이렇게 빚쟁이로 살아가야겠죠. 등록금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돼 직장 생활로 번 돈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쓰게 됐습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취업해 빚을 갚는 저는 운이 좋은 건가요?”

#3 낮에는 대학생, 밤에는 도우미 안선영씨

등록금 빚 1년 반만에 1천만원
“학원 강사라도 하려면 졸업장 따야”

 
 
서울 ㅅ대학 사범대 4학년 안선영(가명·25)씨는 강남의 한 단란주점에서 일한다.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대학생이지만,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이곳에서 일을 하는 ‘도우미’다.

안씨가 이 일을 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110만원 남짓. 공부를 하면서 짧은 시간 일해 제법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게 이 일의 최대 장점이다. 안씨는 “궁여지책으로 선택하긴 했지만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누가 비슷한 이름만 불러도 심장이 내려앉곤 한다”고 말했다.

안씨가 처음부터 이런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경북 출신으로 서울권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던 스무살, 외환위기의 경제난으로 집안이 좀 어려워진 탓에 등록금은 집에 손 벌리지 않고 혼자 해결하리라 다짐했다. 부모님 도움으로 300만원이 넘는 등록금과 입학금을 마련한 그는 2003년 2학기부터 생활비와 학비를 혼자 벌기 시작했다.

“처음엔 ‘등록금은 장학금 받아 해결하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해결하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첫 학기 학부 3등을 했지만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등록금의 50%에 불과했다. 편의점에서 하루 6~8시간씩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50만원 정도, 20만원의 월세를 포함해 식대·교통비·통신비 등 기본 생활비를 빼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장학금을 놓쳐 등록금 대출을 받기 시작했어요. 한 학기에 300만~400만원씩 받다 보니 1년 반 만에 빚이 1천만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2학년까지 다닌 뒤 휴학을 했다. 과외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다음 학기에 복학을 했지만, 한 학기만 겨우 다니고 다시 휴학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해도 등록금을 마련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대출금 이자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문자와 전화로 통보가 오니, 신용불량자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안씨는 결국 ‘단란주점 도우미’를 선택했다. “처음엔 졸업하기 전에 빚이라도 갚아 볼 생각으로 단란주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저 꼭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지금 안씨에게 남은 것은 1천만원이 넘는 빚과 편찮으신 부모님, 그리고 막막한 미래뿐이다. “나중에 선생님이 된다 해도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임용시험도 포기한 상태지만, 학원강사라도 하려면 졸업장은 꼭 따야 하니까….” 안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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