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교육 포럼에 참여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 교육에 대한 해결책 혹은 현재의 문제점 진단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 참여한 사람들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동기를 가지고 참여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나 제도권 교육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봐도 쉽지 않은 문제인데 과연 전문가들의 진단과 해법이 교육문제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 것인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포럼에 참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마음 속 깊이 ‘무기력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칠게 사실을 표현하자면 한국 사회에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 한국 사회는 아직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치(현재로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본다)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교육도 이와 같아서 한국 사회의 주류 가치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시각 자체가 억압받는다. 주류 가치에 딴지를 거는 수많은 교육개혁안이 주류 가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다. 자사고와 입학사정관제가 매우 빠르게 반영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어쨌든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 상태를 비꼬아서 말하면 무기력감이 굳어져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단순히 ‘뭘 해도 소용없어’ 수준에서 적극적인 방어가 나타났음을 (개인적으로는)인정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즉, 우리들은 속마음 속에 ‘교육개혁안’을 거부하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이를테면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교육개혁안이 성공한다면 자신의 무기력감 혹은 그동안의 실패를 들춰내지는 않을까?’ 같은 것.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같지만 정말 무한경쟁이나 다름없는 우리 사회에서 일말의 여지도 없는 생각일까?
‘그래서 우리는 ‘불가능한 이유’는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 귀신이 된 것은 아닐까? 정말로 교육에게 묻고 답하려고 포럼을 찾은 것일까?’ 3주차 포럼이었던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의 송인수씨와 함께 한 포럼을 참가하고 내가 생각한 것은 위와 같은 것이었다.
다시 포럼 당시의 메모를 보니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기대한 것에 비해)별로 없었다. 사실 이번 포럼은 포럼이라기보다 하나의 강연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문제는 결국 사회문제(교육 외적인 문제)이고 사회를 보는 하나의 관점과 그 속에서 개인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 그리고 그 실현이란 무엇인지 송인수씨의 경험에 비추어 듣는 강연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송인수씨의 강연에 비추어 볼 때 한국 교육에 필요한 것은 어떤 ‘방법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순서를 따져 볼 때 더 상위의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개혁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사명감과 신념이다. 쉽게 말해서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우리는 교육개혁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데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다소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 말이지만 송인수씨의 강연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그 한 치의 의심조차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결국 뜻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점이 이범씨가 이야기했던 좌파와 우파 사이의 대타협의 첫 접점이 될 수 있다. 사명감과 신념은 타인을 배제하고 성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결국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명감과 신념을 돌이켜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교육 개혁을 주장한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사명감과 신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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