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칼럼(cc) 2004-06-04   725

<안국동窓> 아파트 원가 비공개와 열린우리당의 배신?

2004년 6월 1일, 열린우리당의 홍재형 정책위의장과 참여정부의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어서 6월 3일, 강동석 장관은 다시금 분양원가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뜻을 기자들에게 분명히 밝혔다. 만일 이것이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공식적인 결정이라면,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율은 2002년에 100%를 넘어섰다. 이 사회가 공평하다면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2003년 말의 조사에 따르면,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이 50.3%에 이르며, 자기 집이 있는 사람 중에서 1/3이 두 채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산을 부수고 들을 메워서 쉬지 않고 아파트를 지은 결과 주택보급율은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정작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었다. 2004년 봄에 발표된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월 3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서울에서 25평짜리 아파트를 소유하기까지는 무려 18년이 걸린다. 그리고 지난 3년 사이에 서울 아파트 22%의 가격이 2배로 올랐다고 한다.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세상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겠는가?

말 그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파트를 지었건만 정작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일해서 번 돈으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다 바쳐야 한다.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전국적으로 아파트가 엄청나게 늘어났는데도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을까? 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아파트 공급이 늘어나서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자기 집을 쉽게 장만할 수 있다는 공급중심논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실이 그렇다. 그 동안 아파트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아파트 값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정부지로 뛰었고, 자기 집 소유자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으며, 자기 집을 소유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아파트 가격이 끝없이 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아파트 가격은 원가가 공개되지 않은 ‘비밀가격’이다. 다시 말해서 업자가 제 맘대로 가격을 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파트업자가 무슨 엿장수인가? 아니, 사실 엿장수도 엿 가격을 제 맘대로 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파트 거래는 몇 억 혹은 몇 십억이라는 엄청난 돈이 오가는 거래인데도, 사는 사람은 파는 사람이 정한 값이 제값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는 수밖에 없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비상식적 거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패와 비리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더 비상식적일 것이다. 그렇다. 엄청난 부패와 비리의 냄새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2004년 3월 초에 경실련에서는 놀라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가 똘똘 뭉쳐 국민을 상대로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토지공사는 용인 죽전, 용인 동백, 파주 교하, 남양주 호평 등 4개 택지개발지구를 조성해서 건설업체에 팔았다. 그리고 건설업체는 이곳에 아파트를 지어서 팔았다. 그런데 4곳에서 모두 3조원대의 천문학적 개발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 중 토지공사가 5127억원을 챙겼고, 주공과 민간 건설업체가 2조 8497억원을 챙겼다. 토지공사는 땅을 평당 54만원에 사서 평당 244만원으로 조성한 뒤 평당 314만원에 팔았고, 주공과 민간 건설업체는 평당 702만원 정도로 팔아서 평당 388만원의 폭리를 취했다.

이 조사결과는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가 똘똘 뭉쳐서 국민을 상대로 ‘합법적 강도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잘못된 주택소유제도로 말미암아 집을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애쓰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가 폭리를 취해도 별다른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과연 이 사회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가장 유효한 수단이 바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제도이다. 사실 이 제도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엿값도 아니고 몇 억, 몇 십억씩 하는 아파트 값을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가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합법적 강도짓’을 규제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서 정부가 나서서 강도짓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총선공약으로 내걸었다. 다시 말해서 정부가 더 이상 강도짓을 보호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정책위의장이라는 자와 건설교통부 장관이라는 자가 나서서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의 ‘합법적 강도짓’을 계속 보호하겠노라고 공언했다. 이 무슨 해괴망칙한 일인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국민을 속일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국민을 속이면서 열린우리당이 ‘개혁’을 논할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국민을 괴롭히면서 이 정부가 국민의 참여로 운영되는 ‘참여정부’를 자처할 수 있는가? 국민이 ‘합법적 강도짓’이나 보호하라고 탄핵에 반대하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다고 생각하는가? 정녕 국민의 분노가 두렵지 않은가?

분양원가는 즉각 공개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상거래의 규율로 보더라도 분양원가를 공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다. 이제 분양원가의 비공개라는 비정상적 상태를 끝내야 한다. 아파트 건설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검은 먹이사슬을 이제는 끊어버려야 한다. 집 없는 사람들을 등치고 자연을 파괴해서 배를 불리는 자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건설시장이 냉각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분양원가의 공개로 피해를 입는 것은 오직 분양원가의 비공개를 통한 ‘합법적 강도짓’으로 배를 불리던 ‘공공의 적’들뿐이다.

국회 상임위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은 건교위이다. 개혁을 다짐한 17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건교위의 인기가 이렇게 좋은 까닭은 단순히 개발사업을 주무르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엄청난 잇권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건교위를 특별감시해야 한다. 건교위가 국민에 대한 ‘합법적 강도짓’과 무지막지한 자연파괴를 인가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곳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시대착오적인 건설교통부와 그 산하의 각종 개발공사들을 개혁할 수 있도록.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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