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교육 2008-01-29   2273

[대학등록금 1000만원 시대 1-2] “가장 무서운게 등록금 고지서”

치솟는 대학 등록금은 서민들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가정경제를 무너뜨리고 멀쩡한 중산층을 채무자로 전락시킨다. 꿈과 희망을 앗아간다.

▲ ©경향신문
 장미호씨(24·가명·서울 ㅁ대 정외과)는 언론사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한다. 05학번인데, 지난해 휴학했다.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일하면 83만원을 받는다. 그 중 50만원을 저축한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등록금이 매년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을 보니 불안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해야 4년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계산이 잘 안된다. 여상을 졸업하고 중소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다가 좀더 나은 인생을 기대하며 대학에 들어왔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고, 언제 복학해 공부를 마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씨의 동생은 군대 제대 후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거기 가기 전엔 공사장에서 막일을 했다. 동생이 버는 돈은 가족 생활비로 쓰인다. 장씨는 동생이 안쓰럽다. 이게 다 치솟는 등록금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가 난다.

▲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등록금이 서민들의 허리를 휘게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통의동 이명박대통령 당선인 집무실 앞에서 등록금 문제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 중인 학부모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은 건 빚더미뿐입니다.” 경북 포항 근교에서 부추농사를 하는 김기수씨(51·포항시 남구 연일읍 중명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등록금 고지서다. 고지서가 날아오기 며칠 전부터 끙끙 앓는다. 밥맛을 잃는다. 돈을 마련할 생각을 하면 끔찍해서다.
 
 김씨는 서울과 경주의 대학에 다니는 두 딸과 고교 2학년인 막내 아들을 두고 있다. 5000평의 밭에 부추를 재배하며 ‘성공한 농사꾼’이라는 소리를 듣던 김씨는 큰딸(21)이 서울로 유학길에 오르고, 지난해 둘째딸(19)이 경주의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고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씨는 인건비를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부인과 함께 매일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14시간 이상 중노동을 한다. 큰딸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연간 몇백만원씩 저축하면서 ‘행복한 노후설계’를 했지만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김씨는 “큰딸이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 전자공학과에 합격해 기뻐할 때까지만 해도 대학생 한명을 서울로 유학보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며 혀를 찼다.

 김씨의 연수입은 대략 3000만원. 이 가운데 3분의 2인 2000만원이 큰딸 밑으로 들어간다.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에 기숙사비, 학원비, 용돈, 교통비, 책값 등을 합친 금액이다. 집에서 통학하는 둘째딸과 실업계 고교생인 막내 아들의 교육비로 150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3남매 교육에 연 3500여만원이 드는 것이다. 교육비로만 따져도 가계수지는 600만원 이상 적자가 난다. 월 200만원가량인 생활비는 빚을 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매년 농협 영농자금과 생활안정자금, 일반 은행의 가계 대출 등 낼 수 있는 빚은 다 얻고 있다.

 김씨는 큰딸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 1억원을 빚졌다. 원금과 이자를 합친 돈이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얼마나 빚을 더 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김씨는 “매년 등록금은 왜 그렇게 오르는지 모르겠다”며 “올해는 기숙사비까지 오른다니 힘이 쫙 빠진다”고 하소연했다. 이제는 꿈도 희망도 없다. 평당 3만원인 밭을 모두 팔아도 빚을 갚기 어렵다. 김씨는 “노후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애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모씨(54·서울 은평구·철물점 운영)는 자신을 ‘대출인간’이라고 부른다. 연 2000만원 가까운 대학생 두 자녀 등록금 때문에 지난 2년간 정부로부터 학자금 대출을 4번 받은 것을 빗댄 것이다. 하씨는 “올해는 정부의 학자금 대출이자가 7%를 넘는다고 하던데 그렇게 되면 월 이자만 해도 몇십만원쯤 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기업이나 관공서에 다니는 이웃들이 한없이 부럽다. 자녀 학비를 무상으로 지원받기 때문이다. 하씨는 “대학졸업한 조카가 대기업 인턴사원이 됐는데, 한달에 고작 70만원을 받는다”며 “앞으로 우리 애들도 벌이가 그렇다면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88만원세대’로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학생도 적지 않다. 부산 사립대학 2학년인 정모씨(21·여)는 얼마전 휴학계를 내고 마트에 일용직으로 취직했다. 상조회 회원모집 일을 하며 학비를 보조하던 어머니가 지난 연말 고객을 유치하러 나갔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치면서 등록금 마련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정씨는 “가족 희생의 대가로 공부한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아 학업을 미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와 이혼까지 한 박영훈씨(52·전북 전주시)는 얼마 전 전북지역 사립대학 3학년인 큰딸에게 휴학을 권유했다. 연 900만원의 등록금 등 1500만원에 이르는 교육비를 부담할 방법이 없었다.

 박씨의 심경을 더 착잡하게 만든 것은 둘째딸(20)이었다. 고교를 졸업한 둘째딸이 “언니 학비를 벌겠다”며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나선 것이다. 박씨는 “죽고싶은 심정이었다”며 “대학 등록금이 야속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15% “학비 없어 휴학했었다”


 대학생의 15%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휴학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참여연대가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대학생 12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 결과 등록금 마련을 목적으로 대출을 받았다는 학생은 10명 중 2명꼴이었다. 응답자 가운데 27.8%(329명)가 정부보증학자금이나 시중은행·대부업체 등에서 돈을 빌렸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학자금 대출 연체 경험이 있는 경우가 16.9%나 됐다. 현재 신용불량이라고 응답한 학생도 10명이나 됐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무거운 그늘을 짊어지는 것이다.

 복수응답으로 등록금 마련 방법을 물어보자, ‘부모님 지원’이라는 응답이 71.4%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정부보증장학금 대출(18.9%), 아르바이트 등 부업(15.4%), 장학금(14.1%) 순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등록금을 마련하고 있을까. 응답자 20%가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가족이 부업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외벌이’로는 연간 10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사립대 미대에 재학 중인 딸을 둔 박모씨(54)는 방학 때면 부산에 귀향하는 딸과 함께 아이스바를 만드는 공장에서 매일 12시간 일한다. 한달 100만원, 둘이서 두 달을 일하면 400만원가량이 손에 잡힌다. 그러나 등록금으로는 여전히 모자란다.

 2002년 입학 당시만 해도 한 학기 390만원 하던 등록금이 지난해에는 520만원이 됐다. 5년 새 33%나 오른 것이다.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에 하숙비 300만원, 재료비와 기타 용돈 등을 합하면 1년에 2800만원이 들어간다. 매달 230만원꼴이다. 박씨는 “처음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렇게 지원하는 게 어려울 줄 몰랐다”면서도 “졸업장은 있어야 취직이라도 하지 않겠냐”며 한숨쉬었다.

 주변에 50대 아줌마가 갑자기 부업 한다고 하면 대부분 자식 등록금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전업주부가 얻을 수 있는 직종에는 한계가 있어 식당일이 대부분이다. 월 수입 100~150만원이지만, 그나마 인건비 싸고 젊은 중국 교포에게 밀려서 자리가 많지 않다.

▲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원회 공동대표들이 지난 17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등록금 인상에 대한 정부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성일기자 ©경향신문
 
 학생들의 어려운 현실도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5%나 되는 학생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취업준비나 어학연수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경제적 이유’로 휴학하는 것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생소한 일이었다.

 등록금이나 용돈, 교재비처럼 학업 유지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업을 한다는 학생의 비율 역시 전체 학생의 83.4%였다.

 또한 등록금 부담은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거나,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부모가 부업을 하는 경우는 호남, 대구·경북, 강원, 울산 등이 수도권보다 높았다.

 서울지역은 등록금 대출 경험이 22%인 반면, 호남권은 35%였다. “학자금 대출을 거부 당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서도 강원지역은 3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학자금 연체 경험 역시 수도권보다는 지방에서 높게 나타났다.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거부돼 이자부담이 막대한 대부업체에서 등록금을 빌렸다는 응답자는 전체 가운데 4명이었는데, 강원·호남·영남지역의 대학생들이었다.

 대부업체에서 등록금 일부를 빌렸다는 서모씨(27)는 “또 휴학을 하면 졸업이 늦어지고 취업도 어려워질 것 같은 절박한 심정에 울며겨자먹기로 돈을 대출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경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지방의 가정은 넉넉하지 않은 재정능력 때문에 대출에 어려움을 겪고, 가족들이 부업에 나서거나 고리의 대부업체 대출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에 더 쉽게 노출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전체 설문조사 결과를 볼 때 신용불량자가 정부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예상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7년 말 현재 정부보증학자금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이 된 학생은 3413명에 이른다. 시중은행 및 대부업체에서 등록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한 학생들의 통계 현황은 정부에서도 파악된 바가 없다.

이번 설문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다. 조사는 광역시·도별로 무작위로 표집된 25개 대학에서 지난해 12월 14~20일 설문지를 이용해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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