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주거 2009-09-30   1560

[한겨레-참여연대공동①] 생업때문에 주변 떠돌지만… 집은 줄고 빚만 늘어

[한겨레-참여연대 공동기획①]

1기 뉴타운 왕십리-세입자들 어디로 갔을까


전세금 감당못해 70%는 다른 구·경기도로
수십년 이웃 잃고 낯선 환경서 ‘떠돌이 삶’
 

» 재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 1구역, 29일 오후 곳곳에 건물들이 부서져 있다. 뉴타운에 살던 세입자들은 인근 지역으로 이사 가면서 더 많은 전세보증금을 내야하는 등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서울 성동구의 ‘왕십리 뉴타운’에서 밀려난 세입자들은 여전히 왕십리 주변 어딘가에 있었다. 그 사이 집 크기가 줄고, 빚이 늘고, 일자리는 없어졌다. 10년 이상 왕래하던 이웃을 잃었고, 낯선 환경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왕십리 주민 박석명(51)씨는 왕십리에서 방 5칸짜리 집에 4식구가 살았다. 보증금 500만원에 25만원짜리 월세 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2년차이던 지난 2003년께부터 “왕십리가 뉴타운으로 지정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집주인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30년 넘게 ‘미싱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박씨는 1990년부터 왕십리에 터를 잡았다. 자신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던 ‘뉴타운 광풍’을 피해 지난해 초부터 이사갈 집을 알아봤다. 하지만, 전세값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뒤였다. 성동구 안에서는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형편에 맞는 전세집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지난해 11월 광진구 자양동으로 이사갔다. 보증금은 10배가 오른 5천만원, 월세는 30만원이었다. 5칸이던 방은 2칸으로 줄었다. 작은 방에 책상을 놓고 나면 아이들 누울 공간이 모자라 안방을 두 딸에게 양보했다. 작은딸은 전학을 했지만 큰딸은 고3이라 전학도 못했다.


바뀐 건 사는 집만이 아니었다. 생활에 밀어닥친 충격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재개발로 단골들이 하나둘씩 동네를 떠나면서 일감이 끊겼다. 고민 끝에 자양동에서 세탁소를 열었지만 낯선 동네에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박씨는 “하루 10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내년에 대학가는 큰아이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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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으로 옮긴 김선녀(40)씨의 주거 환경도 나빠졌다. 김씨는 왕십리 시절, 전세 3천만원에 마당이 딸린 15평짜리 단독주택에 살았다. 지금은 전세 4천만원에, 월세 10만원을 얹어주고도 반지하 다세대 주택에 산다. 오른 전세금 1천만원은 동생이 은행 대출로 메웠다. 그는 “직장이 마장동이다 보니 멀리 떠나기도 힘들고, 근처는 집값이 너무 올라 이 지경”이라고 말했다.



앞서 진행된 다른 연구도 비슷한 현실을 전한 바 있다. 서울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이 지난 2002년 펴낸 ‘난곡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재개발에 따른 주민이주에 관한 조사’를 보면, 서울 관악구 신림7동 재개발 구역 주민 2067가구 가운데 73%가 기존 생활권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이 보증금 마련을 위해 빚을 끌어쓰면서 가구당 채무는 597만원에서 960만원으로 42.2%나 급증했다.


다행히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경우도 있지만, 시름이 없는 건 아니다.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진태(38)씨는 지난해 7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는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24평짜리 왕십리 집은 보증금이 2000만원(월세 35만원)이었지만, 새로 옮긴 아파트는 전세금이 3500만원인데 집 크기는 10평으로 반토막이 났다. 왕십리에서 15년간 운영하던 봉제공장은 이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난해 12월 처분했다. 일자리를 잃은 김씨는 건설 노동으로 밥벌이를 하다, 올해 초 은행에서 4천만원을 대출받아 행당동에 작은 공장을 다시 차렸다. 그러나 봉제공장은 아직까지도 적자다.


20년 동안 왕십리에 살던 윤아무개(68)씨는 지난해 3월 전세금 1500만원을 뺐지만 빚을 갚고 나니 남은 돈이 없어 경기 성남시에 사는 언니 집에 얹혀 들어갔다. 윤씨는 “20년 살았던 곳을 떠나 서운하지만 돈이 없어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체념하듯 말했다.
왕십리에서 월세 30만원짜리 옥탑방에 살던 강아무개(65)씨는 “옥탑방은 주거이전비 지급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돈 한 푼 구경하지 못하고 올해 5월 성북구 안암동으로 이사했다. 그 와중에 월세는 40만원으로 10만원이 올랐다. 같은 처지인 고아무개씨는 “무허가 옥탑방이라서 이주비를 안주는데, 그럴 거면 주민세는 왜 받느냐”고 하소연했다.


27년 동안 살아온 왕십리를 떠나 7월 동대문구 청량리동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박춘병(59)씨는 ‘30년 이웃’들이 뿔뿔이 흩어진 걸 무척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왕십리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이제는 가망이 없다”며 “누구를 위한 뉴타운이냐”고 물었다.


이경미 정유경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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