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기타(cc) 2003-10-21   1328

[논평] 신용불량자 구제책이 조금 더 와닿을수는 없을까?

개인회생법 등 근본대책 필요

수원시 권선구에 사는 김모씨는 TV를 보다 빚을 70%나 깎아주고,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참여연대로 전화를 걸었다. 김씨와 아내의 카드 빚을 합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8천만원정도. 몇 년 전 아버지의 치료비 때문에 고심하던 김씨는 사채를 끌어썼고, 택시운전을 하면서 갚아 나가려고 했지만 수입은 적고 나가는 돈은 많았다. 그러다보니 길거리에서 손쉽게 발급되는 신용카드를 이용하게 되었다. 상황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없고 소위 ‘돌려 박기’를 위해 카드 개수를 늘려갔다. 그러던 중 현금서비스 한도가 10만원으로 줄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그가 처음 찾은 곳은 신용회복지원위원회였다. 이곳은 3억원 이하의 다중채무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직장을 먼저 구하고 나서 3개월 후에 오라’는 것이었다. 최저생계비 이상 수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소비자 파산제도였다. 파산제도는 채무가 자신의 변제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지급불능상태에 빠진 경우에, 법원에서 채무자의 모든 재산을 강제적으로 채권자 전원에게 공평하게 배당하는 절차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파산절차에 58,000원(송달료, 파산절차비용), 면책절차에 추가로 송달료(2,700원x채권자수x3) 정도이다. 김씨는 이 비용마저 부담스러워 돌아섰다고 한다.

최근 신용불량자에 대한 구제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신용불량자에 대해 원금과 이자를 합쳐 최고 70%까지 감면해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산공사는 원래 부실채권정리를 전담하는 곳이다. 금융회사들이 더 이상 카드빚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면(소위 ‘악성불량채권’) 액면의 20%이하의 헐값만 받고 채권을 자산공사에 팔아 치운다. 이때부터는 금융회사가 아닌 자산공사로부터 빚독촉을 받기 시작한다. 결국 자산공사의 구제책이 실행된다하더라도 대상은 대부분 재산도 없고 수입도 없이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만 해당된다.

지난 19일에는 5개 은행(국민, 우리, 하나, 조흥, 기업)과 5개 카드사(엘지, 삼성, 외환, 현대, 신한)에서 연체액이 3천만원이하이고 연체기간이 48개월 미만인 다중채무자를 대상으로 채무재조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별도로 각 금융기관에서 연체금액을 감면하거나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등 개별적인 구제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흥청망청 쓸 땐 언제고 이제와서 배째라고 하느냐’, ‘꼬박꼬박 갚는 사람들은 뭐가 되느냐’는 식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담보로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빚을 낸 사람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누구든 가리지 않고 카드를 남발한 은행이나 카드사에 대해서 ‘도덕적 해이’를 묻지 않는다.

금융기관에서 경쟁적으로 신용불량자 구제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상이 제한적이고 한시적이다. 내년 총선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따라서 개인회생제도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개인회생제도는 채무자가 파산상태에 이르기 전에 직장과 사업을 유지하면서 법원의 채무조정을 통해 일정한 채무를 변제한 후 면책을 받아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백종운(시민권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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