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교육 2008-01-30   888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 3-2] 캠퍼스 설계 · 체육관 건립… 황당한 인상이유

새 캠퍼스 설계비, 세계 100대 대학 진입 달성비, 다목적 체육관 건립비, 학생회관 신축비…. 올해 대학들이 내세운 등록금 인상 이유이다. 등록금 인상의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곳이 많지만 상당수 대학은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불요불급한 사유를 내세워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은 교육환경 개선을 등록금 인상 사유로 내걸지만 교육환경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어 등록금 사용 내역에 대한 의구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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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사결과 인하대는 올해 등록금을 지난해보다 9.5% 인상키로 잠정 결정했다. 예산판단자료를 분석해보니 올해 143억원의 예산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이 같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하대가 내놓은 인상 사유에 대해 학생들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송도 신캠퍼스 설계비다. 인하대 학생회는 “지난해 등록금 인상과 관련해 학교와 학생회가 맺은 협약에 ‘토지매입과 건물신축에 교비 지출을 안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학교 측이 이를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총학생회 간부 김은승씨는 “학교 측이 이에 대해 ‘설계는 건물신축과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인하대는 또 다목적 체육관 건립도 등록금 인상사유로 내세우고 있다.

23.4%의 큰 폭 등록금 인상안을 제시한 전북대는 ‘세계 100대 대학·전국 10대 대학 진입 달성을 위한 대학 재정 자립 실현’을 사유로 내세우고 있다. 서거석 총장은 “올해 물가상승률(3.3%)과 국립거점대 평균 지원수준(7.7%) 등을 고려할 때 173억여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북대 학생들은 학교가 내건 등록금 인상사유는 터무니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 학교 재학생 김모씨(23)는 “우리 대학 가운데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한 곳이 거의 없는 점을 감안하면 학교 측의 주장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북대는 지난해 재학생 9.7%, 신입생 17.4%의 등록금 인상률을 기록했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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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는 재학생 등록금 9%, 신입생은 12% 인상키로 지난 21일 최종 합의했다. 신승호 강원대기획협력처장은 “무한 경쟁체제에 돌입할 대학의 현실을 감안해 당초 기성회비 24% 인상안을 제시했으나 학생부담을 고려해 인상폭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강원대는 새로운 국책사업 유치와 장학금 확대, 법학전문대학원 시설비 등이 인상사유라고 밝히고 있다. 학생들은 “극소수 학생들만 혜택을 보는 법학전문대학원 시설비를 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 대학 재학생 최모씨(20)는 “장학금 확대를 위해 등록금을 인상하는 것은 밑돌을 빼내 윗돌을 괴겠다는 술수”라며 반발했다.

부산지역 대학 가운데 가장 큰 폭의 등록금 인상안(12~15%)을 발표한 동아대는 ‘타 대학과 같은 수준으로 인상하기 위해’를 사유로 밝히고 있다. 이 대학 학생들은 별다른 인상요인이 없는 데도 학교 측이 관성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하려는 것 아니냐”면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연세대 손성규 재무처장은 “타 대학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어느 정도 등록금 인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손처장은 “등록금이 사용된 시설은 결국 학생들이 수혜자이므로 수혜자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도 했다. 고려대 기획예산처 예산조정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주장하는 등록금 동결은 결국 학교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며 “신임 교원 확충, 교원 급여인상, 교육여견 개선을 위해서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학생들의 반발이 거세다보니 대학들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등록금을 더 받는 편법을 쓰고 있다. 등록하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되는 신입생의 처지를 악용한 셈이다. 지난해 서울대는 등록금 인상률을 재학생 5.2%, 신입생 12%로 차등을 뒀으며, 올해 역시 각각 5.1%, 8%로 책정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어느 학교나 신입생과 재학생의 등록금 인상률에 차이를 두고 있다”며 “앞으로 혜택을 많이 받을 학생들이므로 등록금을 더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등록금 사용 내역에 대해 공개하지 않는 것도 학생들의 불만 사유다. 홈페이지와 사립학교회계정보시스템에 매년 결산내역을 공개하지만 인상분이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하기 힘들다. 인상된 등록금을 원래 목적대로 쓰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한 대학 기획처장은 “예산지출계획을 세우긴 하지만 일단 적정선에서 걷은 뒤 계획을 재조정한다”고 토로했다. 강정주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가장 큰 문제는 ‘등록금은 매년 오르는 것’이란 인식이 박혀버렸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낸 등록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자료가 공개돼야 제대로 된 인상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턱댄 동결 투쟁, 이젠 옛말

천정부지로 뛰는 대학등록금이 사회적 현안이지만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저지 투쟁 열기는 많이 식었다. 대학가에서 등록금 인상반대 플래카드를 만나기 힘들 정도다. ‘대학본관 점거 등투’ ‘수업거부’ 등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그 이유는 뭘까.

상당수 학생들은 비운동권이 총학생회를 장악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등록금 문제에 대한 관심이 운동권 총학생회에 비해 약하기 때문이다.

경희대 이윤석씨(21·언론정보학부 2)는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오히려 등록금을 올리자고 제안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등록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도 적지 않지만 이를 담아낼 조직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등록금 인상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 ‘양질의 교육서비스’가 보장된다면 등록금 인상을 감내하겠다는 학생이 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총학생회장 박인성씨(26·불어 4)는 “등록금은 무조건 동결이라고 주장했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등록금 인상 이유와 어디에 쓰이는지를 명확히 제시하면 학생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장경태 총학생회장(행정 4)도 “고려대 등이 등록금으로 캠퍼스 시설이 크게 달라진 것을 보고 ‘우리도 등록금을 올려 시설을 확충하자’는 학우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반대 의견도 나온다. 아직 방학기간인 데다, 대학이 등록금 인상안을 내놓은 상태여서 등록금 반대 투쟁이 약해보이지만 학생들이 투쟁 자체를 포기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김병국씨는 “협상 단계라서 조용한 것이지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라며 “2월2일쯤 삼청동 인수위 앞에서 500명 규모의 등록금인상 반대 시위를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통령직 인수위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대책을 내놓으라는 각종 학생·학부모 단체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 등록금투쟁을 주도했던 인사들은 요즘 대학생들의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것 같다며 우려한다. 1992년 성균관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우영씨(39·이미경 의원 보좌관)는 “매년 3~4월이면 금잔디 광장에 5000여명씩 모여 등록금 문제 등을 주제로 대토론회를 열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투쟁이 학생 본연의 자세가 아닌 시대가 됐다곤 해도 요즘 학생들은 취업문제에 얽매여 학내·외 민주화 문제에 소홀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등록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얼마가 적정한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학생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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