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기타(cc) 2006-01-10   1992

항생제 오남용 정보공개 판결의 의미에 대하여

서울행정법원은 2006. 1. 5. 급성상기도 감염(단순 감기로 통칭됨)에 있어서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는 상위 4%와 적게 사용하는 하위 4%의 요양기관별, 의원급 표시과목별 기관의 수, 명단 및 각 기관이 사용한 항생제 사용지표를 공개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번 법원의 판결에 대해 소송 경위 및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언론과 의사협회는 현재 보건당국 조차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적정기준과 객관적 지표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원고인 참여연대가 의료기관의 종별과 질환에 관계없이 항생제 과다사용만을 의료기관 선악판단 기준으로 삼아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으로 의료계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키거나 꼭 필요한 항생제 투여를 주저하는 방어진료를 야기해 그 피해가 환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사안을 호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판결문에 명쾌하게 잘 드러나 있지만, 원고의 소송 대리인으로서 참여연대가 이번 소송에 이르게 된 경위 및 몇 가지 사실관계를 알리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 건강권, 진료기관선택권을 고양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보아 정리해본다.

첫째,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는 일부 언론의 우려와 달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항생제 사용 오남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1년 부터 매년 항생제, 주사제, 약제비 등 3개 항목에 대한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를 실시하여 요양기관별, 진료과목별 및 상병별 지표를 산출하고 그 지표에 따라 해당 요양기관을 백분율에 따라 1등급(4%)에서 9등급(4%)으로 등급평가를 하고 있었다.

둘째, 항생제 오남용 방지는 오남용 방지를 위한 교육과 홍보가 선행되어야 하며 정보공개는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공개는 너무 조급한 것이라는 보건복지부나 일부 언론의 우려와 달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여 2001년 이후 매년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를 실시했고, 이러한 정보를 항생제 사용에 대한 의료기관의 자체적인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급으로 나뉘어져 산정된 평가결과와 평가군별 평균지표를 해당 요양기관에 개별 통보하고 있었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성호흡기감염증위원회는 국내의 저명한 의료전문가들이 모여서 2003. 4.경 국내외 권위있는 교과서, 미국 등 선진국의 가이드라인, 그리고 공신력있는 저널에 게재된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고 적정진료를 유도할 목적으로 ‘외래에서 진료한 급성호흡기감염증의 심사원칙’을 제시하였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계속 적용을 연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셋째, 암치료 전문기관 등 일부 병·의원이 항생제를 많이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의약계의 현실을 무시한 정보공개청구라는 일부 언론의 우려와 달리, 참여연대가 공개청구한 정보는 막연히 질환과 관계없이 항생제를 많이 쓰는 의료기관 명단을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중 급성상기도감염(단순 감기로 통칭됨) 환자에 대한 항생제 사용지표(총 투약일수 중 항생제 투약일수)와 항생제를 적게 쓰는 기관부터 많이 쓰는 기관으로 백분율로 등급을 매긴 것 중 많이 쓰는 기관 4%와 적게 쓰는 기관 4%의 명단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이다.

넷째, 의료기관 종별로 환자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정보공개청구라는 우려와 달리, 참여연대의 정보공개청구는 의료기관의 특수성을 파악하여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각 의료기관 종별, 표시과목별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에 대한 정보로 특정되어 있었다. 종합병원이나 종합전문병원의 경우 세균감염이 된 중증환자가 많아 항생제 처방률이 더 높아야 하나, 소송과정 중 제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1년도 1/4분기 약제급여 적정성평가결과나 2005. 10. 20. 2005년도 1분기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평가결과는 이와 달리, 급성상기도감염의 약 95% 이상을 담당하는 의원에서 항생제 처방율(의원 59.2%, 종합병원 49.8%, 종합전문병원 45%)이 가장 높았고, 의원 중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이 0.3%에 불과한 기관이 있는 반면 가장 높은 기관은 99.3%에 달해, 의료기관간 표준편차가 31.09에 이르며, 의원의 표시과목별로는 이비인후과와 소아과가 처방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밝혀져 피고인 보건복지부 또한 항생제 오남용이 심각함을 자인하고 있었다.

다섯째, 간과해서 안 될 중요한 사실은 단순 바이러스가 원인이 된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해서는 항생제가 전혀 효능이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표준교과서에 기재된 과학적 진실로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은 감기에 대한 항생제 사용을 제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즉, 미국의 경우 CDC(질병관리센터)나 FDA에서는 항생제 사용을 엄격하게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안하고 있으며, FDA에서는 이미 감기와 독감에 대해서는 항생제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1998년 이후에는 급성기관지염에서 항생제 사용을 적응증에서 제외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의사가 급성호흡기감염에 항생제를 사용할 경우 일정한 양식에 항생제를 사용하여야 할 이유를 보고까지 하게 하고 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참여연대는 다른 나라와 달리 급성상기도감염 치료에 있어서 항생제 처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현재의 상황이 과학적 지식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의료계의 전반적인 분위기, 정보의 비대칭성이 원인이 된 상담치료, 교육 및 휴식을 통한 감기의 자연치유 보다는 약물투여를 선호하고 빠른 치유를 권유하는 환자의 기대와 특히 의원의 수입, 환자수의 유치, 진료 시간의 압박 등 의원의 경영환경이 원인이라고 본다.

참여연대는 선악이분법에서 의료계의 현실을 무시하고, 특정병원을 죽이려는 목적에서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울 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을 통해 감기에 대해서는 항생제가 치료효과가 없다는 의학계의 검증된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약물투여와 빠른 치유를 원하는 환자의 기대를 완화시킬 수 있는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계가 원해 의료계에 맡겨 개발한 후 오히려 의료계의 반대로 계속 적용이 연기되고 있는 ‘외래에서 진료한 급성호흡기감염증의 심사원칙’을 적용시켜, 종래 의사들의 항생제 효과에 대한 신념과 경험적 진료 중시 풍토를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한편, 국가적인 수준에서 감기 뿐만 아니라 축·수산물 등에 광범위하게 투여되고 있는 항생제의 오남용을 막을 처방적정성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일부 언론과 의료계는 마치 이번 판결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결구도로 몰고 가지 말아야 할 것이며, 보건복지부는 더 이상 일부 오도되거나 호도된 의료계의 여론에 밀려 정보공개를 미루지 말고, 즉시 정보공개를 하고 이번 판결이 가져다 준 여러 화두를 푸는데 그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서순성 (변호사,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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