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ㆍ배임수재로 벌어들인 돈도 과세대상이다

[경제포커스] 권력형비리 및 부정부패사건, 왜 밝혀내고도 과세하지 않는가

이은숙 회계사

취직한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들 저를 만나면 잘 하는 말이 있지요. “월급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세금을 매달 이렇게 많이 떼는 거야? 세법이 원래 그래?” 고지식한 저는 싫더라도 세법에 따라 정해진 세금은 낼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어서 잔뜩 불만스러워하는 친구 앞에서도 연봉이 얼마면 거기에 대해 얼마쯤 세금이 나오도록 되어있는지 설명을 해 주고 있다가 핀잔을 듣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월급날 명세서를 보고 있으면 때로는 저도 원천징수된 세금이 꽤나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요, 세법은 한국 거주자인 모든 개인이 법이 정한 각자의 소득에 대해 소득세를 납부할 의무를 진다고 정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소득에는 저나 제 친구들 같은 봉급생활자들이 한 달 내 일해서 번 돈은 물론 개인 사업가들이 자기 사업을 운영해서 벌어들이는 돈이며, 각종 이자ㆍ배당, 재산을 팔았을 때 발생하는 이익, 그리고 사례금까지도 다 포함이 됩니다.

일해서 번 돈도 다 과세 되니 무상으로 남에게 돈이나 물건 등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받았을 때 과세되는 건 당연하죠. 세법에는 타인의 증여에 의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자는 증여받은 모든 재산에 대해 일정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분명히 쓰여 있답니다. 정상적인 거래로 인한 이익을 모두 이렇게 과세하고 있으니,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불법적인 거래로 인한 이익에 대해서도 세법을 적용해 철저히 과세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요.

고위층이 횡령ㆍ배임수재로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는 왜 과세를 안 하지?

세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다 알만한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냐고요? TV에서 고위층 비리사건이 보도될 때면, 그 사람들은 어디서 돈이 나길래 “잘 봐 달라”느니 하면서 저렇게 큰 돈을 여기저기다 뿌리는지, 얼마나 대단한 자리에 있기에 자기 몫도 아닌 돈을 “잘 봐 주기로”하고 저렇게 척척 챙길 수 있는지 어이없고 화가 난 일이 많이 있으실 거예요.

그 동안 저도 그 화 내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답니다. 그런데 최근에 참여연대 자료실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명색이 회계사인데 친구들이 애써 번 돈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라고 고지식하게 대답을 해 오면서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주고 받는 위법한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과세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요. 일 때문에 세법 예규나 판례를 뒤질 때에는 늘 “어, 그래, 위법한 방법으로 번 돈도 과세되지”하고 알고 있었으면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요.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사건이 일어나면 검찰에선 대가성이 있는 자금이니 없는 자금이니, 통상적인 “떡값” 수준이니 아니니 하면서 형사처벌을 하기도 하고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요. 저는 지금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이나 되는 뇌물에 “떡값”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잘 봐 달라”는 소리를 들으며 받은 돈에 대해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을 가하지 않는 논리가 무엇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회계사로서 제가 확실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사건으로 오간 금품이 설령 형사처벌대상이 아닌 “떡값”이고, “대가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세법상 과세대상이라는 점입니다.

불법자금은 정치자금에대한법률에 의한 정차자금이 아니므로 과세대상

세풍 사건을 뜯어봅시다. 문제가 된 국회의원들은 불법적으로 모금된 정치자금을 주변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그 돈으로 집을 고치기도 하고, 남의 이름으로 그 돈을 예금해 놓기도 했습니다. 그 돈을 받은 언론인들 중에는 자기 계좌에다 그 돈을 넣어놓고 있었던 사람도 있고요.

나라종금 사건도 그렇지요. 국회의원이며 고위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그룹사 회장이며 종금사 사장에게 “회사를 잘 봐달라”는 명목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의 돈을 받았다면, 그건 엄연히 정치자금에대한법률에 의한 정치자금은 아닌데, 당연히 증여세가 과세되어야지요. 사실관계는 이미 검찰에서 다 조사를 했고 본인들도 금품이 오간 사실 자체는 다 시인하고 있는데, 국세청에서는 밝혀진 사실에 따라 과세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국세청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기준에 의해 세법을 적용해야

국세청으로서는 이제까지 권력형 비리며 부정부패 사건에 대해 검찰이 사실관계를 다 밝혀도 과세를 하지 않는 것을 관행으로 해 왔는데 갑자기 여기에 대해 과세권을 발동하려고 하면 부담스러울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이제까지는 국세청이 과세권을 발동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명료하게 판단을 내린 적이 없으니 지금 새로이 과세하기로 결단을 내리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는 국세청이 대대적으로 세정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이 시점이 바로 그런 관행을 깰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이 주고 받은 돈이든, 어떤 명목으로 주고 받은 돈이든, 세법에 따라 엄정하게 과세하는 것, 세법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국세청이 마땅히 견지해야 할 자세 아닐까요. 국세청이 세풍 사건을 세법에 따라 다시 한 번 공정하게 재검토하는 결단을 내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풍 사건에 대해 과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이미 한 번 표명했으니 그걸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세법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일은 국세청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며칠 전에 참여연대가 탈세제보한 나라종금 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세법에 따라 과세 방침을 발표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사회가 국회의원이나 여당 간부, 고위공무원 등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저나 제 친구들, 그리고 다른 모든 국민들과 똑같은 기준에 의해 세금을 내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월급명세서를 가져 와서 세금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친구들에게 고지식한 대답을 하는 것이 덜 부담스러울 것이고, 저도 월급명세서의 원천징수세액란을 보고 좀 더 수긍하는 마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회계사로서, 그리고 평범한 젊은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공평과세를 향해서 한걸음씩 떼고 있다는 점이 안심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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