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피케티와 부자감세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비정상의 정상화”.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의 국정목표로 선택한 말이다. 그런데 지금 “비정상의 확대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발단은 세금이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임대 소득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선거 바로 다음날 말문을 트고, 경제수석으로 최근 역할을 바꾼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이 정책토론회를 통해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주말에는 기획재정부가 공식적으로 말을 바꿨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주택수에 관계없이 임대소득이 2천만원 이하이면 14%의 세율로 분리과세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료도 깎아준다고 한다. 결국 이들을 가난한 사람들로 보아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국토부의 발표에 의하면 임대소득이 2천만원이 되려면 월세가 167만원, 전세보증금이 14억5천만원이 넘어야 한다. 서울 강남구의 30평형대 아파트 시가가 10억원 정도인데 전세보증금만 14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가지고 임대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영세민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판단은 임대소득이 2천만원인가 아닌가를 가지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종합소득이 얼마인가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당연히 임대소득을 종합소득에 합산한 후 그 수준에 따라 적절한 세율로 과세해야 한다.

 

혹자는 “집 한 채 달랑 가진 것을 임대해서 소득을 얻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1가구 1주택이 아니라 집을 적어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1가구 1주택인 사람이 자기 집 전세 주고 다른 곳에 전세 사는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세금이 없다.

 

14%라는 세율도 문제다. 이 세율은 영세한 임대소득자에 대해서는 너무 높고, 높은 종합소득을 누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낮다. 현재 종합소득세율 중 가장 낮은 세율은 6%이고 가장 높은 세율은 38%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영세 임대소득자의 경우 두가지 과세방식 중 유리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이것은 오히려 종합소득 은폐의 가능성만을 증가시킬 뿐이다. 한편 분리과세는 고소득자에게는 확실히 유리하여 38% 세율 구간에 있는 고소득자의 경우 약 500만원이 넘는 이득이 발생한다.

 

결국 이 정책은 탈세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채, 오로지 부자와 고소득자만을 위한 정책이고 이들을 위해 조세형평이라는 “정상”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정상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정책을 강행해야 할 다른 긴급한 이유가 있는가. 정부는 부동산 경기부양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지금 부동산 경기침체의 핵심은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는 것이고 그 밑바닥에는 부동산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돈 몇 푼을 부자 손에 쥐여주면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것처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세계의 경제학계에서는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의 자본>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경제성장이 자동적으로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다. 이 책에는 빠져 있지만 우리나라의 사례도 예외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도 소득분배의 개선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악화되고 있는 소득분배를 더 악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정부는 금융소득,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부담이 이미 근로소득에 비해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런 비정상을 더 확대시키려 하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 증가에 의한 내수 활성화라는 건전한 길을 외면하고, 부자감세와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 거품의 힘을 빌려 내수를 띄우려 하고 있다. 제2기 경제팀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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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6월 17일 한겨레 지면과 인터넷판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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