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법개정 박근혜 정부의 오판

 

지난 8일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지 정확히 나흘 만에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되는 전대미문의 ‘세법개정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사태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해 세 부담이 증가하게 된 근로소득자들의 강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여론을 의식한 기획재정부는 ‘거위의 깃털을 하나 뽑는’ 증세안이라며 대국민 호소에 나섰고, 민주당은 ‘세금폭탄’이라는 원색적인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정부 비판에 앞장섰다. 

 

결국 정부는 세액공제한도를 늘이는 방식으로 총급여 5500백만원 이하는 아예 세 부담이 증가하지 않는 수정안을 제시해 이번 사태를 무마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세법개정안이 이렇게까지 정치적 혼란을 가져올지 아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발표한 정부의 근로소득세제 개편은 긍정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소득이 많을수록 유리하고 부자들의 절세 수단이 되고 있는 소득공제제도를 보다 분배의 효과를 높이는 세액공제로 전환해 나가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근로장려금이나 자녀장려금도 보완·신설돼 근로빈곤층 대상 세제 지원도 적절히 개편됐다. 사실상 근로소득세제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부자증세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불로소득을 누리는 고액자산가들이나 엄청난 경제력과 조세혜택이 집중된 대기업들의 과세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은 매우 부진했다는 점이다. 반면 손쉬운 봉급생활자들의 소득세제를 우선적으로 개편하려 한 것은 정부의 패착이다. 근로소득자들이 불공평하다는 원성과 불만을 표출하게 된 주요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서도 뒤이어 수정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법인세는 건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정부 때 취해진 감세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참여연대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수 재벌대기업들에 대한 경제력이 집중되고 그에 따른 부가 편중됨에 따라 2011년 상위 10% 이내 흑자법인들의 소득 비중은 89%, 조세감면 비중은 9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법인들의 실효법인세율은 OECD 평균 수준이지만, 선진국들과 비교해 매우 낮게 형성돼 있다. 법인소득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상위 기업들부터 조세감면을 과감히 축소하고 저조한 실효법인세율을 올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수가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조원 이상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6월 말까지 전년 대비 법인세 부족분은 4조1883억원에 달해 1년 전보다 16.3%나 감소했다. 이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 요인도 있겠지만 법인세율 마저 낮아진 요인도 크다. 

 

물론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낮은 편이고, 소득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려면 소득세제를 개편하는 것이 손쉬운 접근이긴 하다. 그러나 어려운 경제현실에서 상대적으로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는 고액자산가들이나 대기업들에 대한 과세 불공평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려 하지 않는 한, 중산층 이하의 국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해소는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들이 비판하는 문제들을 겸허히 수용하고 마치 성역과도 같은 법인세제나 금융세제 등도 이번 소득세제와 같은 개편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세제개편안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현재의 정치권 양상을 봤을 때는 발전지향적인 조세개혁 논의보다 조세저항을 의식한 세제지원 확대에 더 무게중심이 실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재원조달을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한데, 차라리 복지공약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는 세법개정으로 인해 자칫 국민들에게 복지국가라는 희망을 심어준 대선 공약들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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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

 

 

이 글은 8월 19일자 뉴스웨이 웹사이트와 지면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출처: 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308150917193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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