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부합산과세’가 필요한 때다

 

 

이 글은 2013. 1. 8. 한겨레 신문 ‘왜냐면’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68593.html

 

 

 

‘부부합산과세’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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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저물기 며칠 전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75% 소득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몇몇 언론은 그 결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위헌이라는 결과만을 놓고 올랑드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부자증세 정책이 타격을 받게 됐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언론의 선정적인 표제와 달리 그 내용을 보면 최고 세율 75%가 너무 높다는 내용이 아니다. 최고 세율의 기준이 되는 100만유로를 정할 때 부부 소득을 합산하지 않고 개인 소득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 위헌이라는 취지다. 즉 개인 소득으로 80만유로를 버는 두 사람이 결혼한 상태이면 부부 합산 소득은 100만유로를 넘게 되는데도 이에 대해 75%의 세금을 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2013년 새해를 맞자마자 미국의 ‘부자증세’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상원에서 합의된 부자증세안에 의하면 부부 합산 소득 45만달러 이상, 개인 소득 4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층 소득세율을 39.6%로 올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부부 합산 소득을 기준으로 삼고 이에 대해 현행 최고 세율 35%보다 세율을 4.6%포인트 인상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 세법은 어떤가? 우리는 3억원을 기준으로, 이를 넘는 경우 38%의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3억원의 기준은 개인별이지, 부부 소득을 합산한 금액이 아니다. 혼자 5억원을 버는 가구에 비해 둘이서 5억원을 버는 가구가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이렇게 개인별로 소득세를 물린 것은 아니었다. 이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2002년 기존의 세법이 정하고 있던 ‘부부합산과세’가 위헌이라고 선언해 버렸기 때문이다. 헌재는 이후 2008년 종합부동산세법 역시 부부합산과세 부분을 위헌으로 선언했다. 부부 합산을 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프랑스 헌재와는 정반대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우리 세법은 부부합산과세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부부 고소득자에게 최고 세율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부자들을 위한 감세로 유명한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고소득 부부는 세금을 적게 낸다.

 

부부가 경제공동체인 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을 것이다. 미국, 프랑스 등 많은 나라가 이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보고 과세를 해왔다. 우리 세법도 헌재의 위헌 결정 이전까지는 부부 소득을 합하여 세금을 매겨왔던 것이다. 부부합산과세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프랑스 헌재의 입장에 견주어 그 정당성을 의심받을 소지가 있다. 더구나 그 방향이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쪽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헌재가 부자들 편에 서 있다거나, 재판관 구성을 더욱 다양화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돼왔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보다시피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또한 우리의 최고 세율 38%는 프랑스 75%, 스웨덴 57%는 물론 일본 50%, 영국 45%, 이탈리아 43%보다 낮고, 이제는 부자감세로 유명한 미국의 39.6%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부자 부부는 미국보다 세율도 낮은데다 부부 합산도 적용되지 아니하여, 미국에서보다도 훨씬 적은 세금을 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복지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다. 복지를 확대하여 어려운 사람들이 경제적 궁핍에 방치되는 사태를 막으려면 부자들에게 적용되는 최고 세율을 국제적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자들이 부부라는 이유로 세금을 적게 내도록 한 제도도 재고하여야 한다.

 

부자증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자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몇 퍼센트 더 받는다고 해서 부자가 가난해지지는 않는다. 부자증세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토대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인간답게 살도록 한다고 해서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다.’ 

 

김성진 변호사·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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