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재정개혁센터 칼럼(ta) 2004-05-06   1712

<안국동窓> 강남구의회의 망동과 개혁의 중요성

강남구가 국정의 방향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섰다. 국정이라고 늘 좋은 방향으로만 갈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지방의회나 자치체에서 국정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민주주의의 활성화라는 점에서 보자면, 지방의회나 자치체가 활발히 의견을 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방의회나 자치체에서 편협한 지역이기주의를 위해 주어진 권한을 악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일 강남구의회는 의원발의로 강남구세 개정 조례안을 상정해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 내용은 강남구청장이 재산세율을 50% 감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남부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최대한 지키기 위해 세금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사건은 강남부자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는커녕 납세의 의무마저 제대로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강남부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부를 쌓고 지키면서 강남이라는 지역 자체를 ‘천민자본주의’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오늘날 강남은 한국 사회에서 세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무엇보다 강남은 한국자본주의의 천민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이른바 ‘천민자본주의’란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반윤리성이 노골적으로 구조화된 자본주의를 가리킨다. 정경유착의 사슬 속에서 엄청난 인명을 앗아가는 비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그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둘째, 강남은 투기자본주의의 대명사이다. 박정희의 잘못된 공간정책으로 말미암아 강남은 졸지에 거대한 도시지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동산 졸부들이 만들어졌다. 땅 투기는 이 사회의 일상이 되었고, 국민 대다수가 땅 투기꾼이 되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하루빨리 개혁되어야 한다. 땅으로 배를 불리는 행위는, 경제구조를 취약하게 만들고, 국민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므로, 엄중히 규제되어야 한다.

세째, 강남은 이 사회의 불평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양재대로 너머 구룡산 아래에는 구룡마을이 있다. 이곳은 말 그대로 판자촌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북쪽을 보면 타워팰리스를 비롯한 도곡동 초고층아파트지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장 가난한 곳과 가장 부유한 곳이 서로 이웃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부자들은 이런 극단적 불평등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강남은 ‘돈’만을 좇는 ‘돈’ 인간들이 이룬 ‘돈’ 지역이다. 이런 강남을 개혁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은 없다. 아니, 강남을 강남으로 내버려두는 한,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고 거대한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게 된다. 이런 현실을 두고 ‘개혁’이 아니라 ‘실용’이라고 외치는 자의 속셈에 더욱 더 분노하게 된다. 강남부자들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부자들에게 잘 보여서 더 큰 권력을 쥐고자 하는 속셈이 아니겠는가?

어린이날을 맞아서 서울방송에서 방영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중의 한 꼭지가 문득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어린이였는데, 친구들과도 잘 놀지 않고 오직 집에서 기르는 숫닭을 끼고 살다시피 한다. 이 어린이의 사연을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린이의 부모는 몇 해 전에 제각기 집을 나가버렸고, 여든이 된 할머니가 홀로 이 어린이를 키우고 있었다. 닭과의 유별난 우정은 결국 가난 때문에 빚어진 비정상적 상황의 산물인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며칠 전에 발간한 <2003년 인권보고서>에서 빈곤층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무려 300만명의 사람들이 가난의 막장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파탄은 물론이고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구의회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재산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게 내던 재산세를 조금 더 내라고 하는 것조차 내지 않겠다니, 정말 너무나 뻔뻔스럽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강남공화국’이니 ‘강남민국’이니 하는 말로 강남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강남이라는 지역이 이렇게 부정적인 곳으로 비쳐지게 된 것은 강남부자들이 천민자본주의의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민자본주의를 개혁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고 정경유착과 부동산투기와 불평등의 만연에 시달려야 한다. 이른바 ‘만달러의 덫’은 사실 ‘강남공화국의 덫’이다.

천민자본주의의 가장 큰 수혜지역인 강남이 천민자본주의의 개혁에 가장 크게 저항하고 나섰다. 강남구의회가 도전한 것은 국정의 방향이 아니다. 강남구의회는 천민자본주의의 개혁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정면으로 맞서고 나섰다. 이 저항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강남을 개혁해야 한다. 천민자본주의를 개혁해야 한다. 개혁 없이는 실용도 없다. 강남구의회가 이 사실을 적나라하게 가르쳐주었다.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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