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과세제, 영세업자 보호취지 ‘탈세수단’ 변질

[참여연대-한겨레 공동기획] 조세 큰틀 바꾸자 (상) 한계 다다른 간이과세제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뜨거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수 확대를 위해서는 세율 인상보다 탈루 세금을 줄이고, 과세 대상을 넓히는 게 우선이다. 현행 조세체계는 탈세를 조장하거나 비과세·세금감면을 과도하게 허용해 과세 기반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 조세체계를 바로잡을 방안을 <한겨레>와 함께 세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첫번째 기획으로 간이과세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간이과세 제도는 탈세를 조장하는 왜곡된 제도다. 조세 논리가 적용될 수 있도록 간이과세제를 폐지해야 한다.”(윤종훈 공인회계사) “이론적으로는 간이과세제를 폐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를 폐지하면 현실적으로 진짜 영세사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권오성 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 폐지를 놓고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하지만 간이과세 제도를 이대로 둔 채 과세 기반을 넓히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80%가 “면세점 2400만원 밑” 신고

계산서 미발급→소득흐름 추적 구멍

폐지추진땐 영세업자 별도대책 필요

자영업자의 절반이 간이과세자=연간 매출액이 4800만원 미만인 간이과세자의 비율은 최근 들어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부가세 신고 인원의 40%를 넘는다. 부가세 제도가 일반사업자와 간이과세자로 이원화된 2000년에는 간이과세자가 49.2%로 절반에 육박했다. 법인을 제외한 개인사업자만 보면 간이과세자가 53%로 절반을 넘었다.

더 큰 문제는 이 가운데 연간 매출액이 2400만원이 안 된다며 부가세를 한 푼도 내지 않겠다고 신고한 사업자가 간이과세자의 80% 안팎에 이른다는 점이다. 지난 2002년의 경우 전체 부가세 신고 인원의 46.5%가 간이과세자였는데, 39.2%(간이과세자의 84%)가 면세사업자였고 7.3%만이 연간 매출액 2400만원이 넘어 부가세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간이과세자 중 86%가 연간 매출액이 2400만원이 안 돼 부가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

탈세 조장과 과세 기반 훼손=간이과세 제도가 영세사업자의 세금 부담 완화와 세무 편의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합법적으로 탈세를 용인해주는 제도로 악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간이과세 제도는 크게 세가지 차원에서 탈세를 조장한다. 우선 간이과세자 본인들이 부가세를 탈세하는 경우다. 세무사업을 하고 있는 강경탁 공인회계사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로 볼 때, 연간 매출액이 4800만원이 안 되는 사업자가 전체의 45% 안팎이나 된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매출을 누락시키는 위장 간이과세자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간이과세자의 매출 누락은 또 일반과세자의 부가세 탈세를 용이하게 한다. 간이과세자는 세금계산서 발급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일반과세자가 간이과세자로부터 재화 등을 구입했을 경우 매입 세금계산서를 받을 수가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세금계산서 흐름을 끊기게 함으로써 일반과세자의 탈세 가능성을 열어 주게 되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매출을 축소하는 것은 위와 같은 부가세 탈세뿐 아니라 개인 소득세를 줄이려는 목적이 더 크다. 자영업자들이 매출을 누락시키면 소득이 줄어들고, 이는 곧 소득세 탈루로 이어진다.

간이과세 제도의 취지가 영세자영업자 보호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탈세를 용이하게 하는 수단으로 악용됨으로써 과세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간이과세제 폐지, 안하나 못하나=간이과세제가 이처럼 많은 부작용이 있는데도 정부는 이를 선뜻 폐지하지 못하고 있다. 김용민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은 “간이과세제를 바로 폐지하면 영세사업자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나고, 세금계산서 발급 등 세무행정상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기준금액을 고정시키고, 현금대체 결제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등 과표 양성화를 통해 간이과세자를 점차 줄여나간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종훈 회계사는 “거래 투명화를 위해서는 세금계산서 흐름을 차단하는 간이과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간이과세제를 폐지하더라도 이미 면세점 이하인 영세사업자가 전체 부가세 신고 인원의 40%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의 세 부담은 전혀 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도 “원칙적으로 간이과세제를 폐지하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영세사업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간이과세제 변천사 보니

과세특례 확대로 소득포착 곤란, 4800만원 기준 일반-간이 일원화

1977년 부가가치세가 도입된 뒤 영세사업자를 위한 과세특례 제도가 시행됐다. 영세사업자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고, 세금계산서 발급을 면제해 주는 등 세무행정상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연간 매출액이 1200만원 미만인 소규모 사업자에게 적용했는데, 그 뒤 기준금액을 점차 올려 95년에는 3600만원까지 높아졌다.

이런 특례과세 제도는 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크게 바뀌었다. 과세특례자 기준금액을 3600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올리고, 4800만~1억5천만원 사이의 사업자를 새로 간이과세자로 분류했다. 이는 과세특례 제도를 더욱 확대한 것으로서,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자영업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조세제도를 왜곡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에 따라 부가세 개인사업자는 96년 7월1일부터 일반사업자, 간이과세자, 과세특례자 등 세 유형으로 나뉘었다.

그 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이 점차 낮아지는 등 과세특례 제도 확대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자 과세특례제 폐지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99년 과세특례자를 없애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2000년 7월1일부터 부가세 개인사업자는 일반과세자와 연간 매출액이 4800만원 미만인 간이과세자로 이원화돼 지금에 이르렀다. 간이과세자 중에서도 연간 매출액이 2400만원 미만인 영세사업자는 부가세가 아예 면제된다.

정석구 선임기자(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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