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대판 보물섬은 조세도피처인가?

[기고] 현대판 보물섬은 조세도피처인가?

 

들어가는 말

 

지난 4월 이후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으로 조세도피처tax havens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공개하면서 역외탈세(域外脫稅)와 돈세탁money laundering이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를 매개로 벌어지는 탈세와 검은 돈의 세탁은 엄연히 불법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조세도피처를 활용한 역외탈세는 조세 수입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조세정의를 훼손시켜 일반 국민들의 납세의식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더욱이 부정부패를 통해 형성된 비자금 세탁 과정에 조세도피처가 활용된다면 이는 조세정의를 넘어 사회정의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세도피처와 역외탈세는 여전히 개념상 통일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를 파악하기도 대단히 어려운 상태에 있다. 이에 본 글에서는 조세도피처를 매개로 형성되는 역외 금융체계의 실체와 이를 통해 전개되는 역외탈세 현황을 살펴본 후 역외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조세도피처란 무엇인가

 

“감세와 규제받지 않는 금융으로 무장한 채 세상을 소리 없이 파괴하는 공성 망치들”로 비유되는 조세도피처는 무세국(無稅國, tax paradise), 저세율국low tax haven, 국외소득면세국tax shelters, 조세휴양지tax resorts 등으로 구분된다. 먼저 무세국(바하마, 버뮤다, 케이맨 제도, 나우르 등)은 전형적인 조세도피처로 직접세가 없는 국가이며, 저세율국(버진아일랜드,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마카오 등)은 소득세와 법인세가 징수되기는 하지만 적용세율이 현저히 낮은 국가이다. 국외소득면세국(홍콩, 말레이시아, 라이베리아 등)과 조세휴양지(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그리스, 영국 등)는 일반적으로 정상과세를 하지만 전자는 해외원천소득에 대해서 면세하고, 후자는 특별한 사업 활동이나 기업에 대해 조세상의 혜택을 부여한다. 

 

우리나라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제17조 1항에서 법인의 부담세액이 실제발생소득의 15퍼센트 이하인 국가 또는 지역을 조세도피처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실효법인세율을 조세도피처의 판정기준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22퍼센트, 일본 20퍼센트, 독일 25퍼센트를 채택하고 있다. 

 

물론 세율은 조세도피처를 판별하는 주된 기준이지만, 과세행정의 투명성과 과세정보의 교환, 투자 자본의 실질적인 생산 활동 여부도 중요한 보조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998년 보고서는 세계화로 인한 국가 간 조세경쟁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하면서 조세도피처와 유해한 조세우대조치체제harmful preferential tax regimes를 구분하고 있다. 조세도피처와 달리 유해한 조세우대조치체제의 판정기준은 ‘투자 자본의 실질적인 생산 활동의 결여’ 대신에 소위 울타리치기ring fencing 기준을 적용한다. 울타리치기란 국내 거주자를 조세우대조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수혜자의 국내시장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국내시장으로부터 조세우대조치를 격리한다는 것이다. 이후 OECD의 2000년 보고서에서는 세율이 국가의 주권 사항이고 투자 자본의 실질적 활동 유무는 판정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판정기준에서 빼고 정보교환과 투명성 기준만을 채택하기로 하였으며, 마침내 2009년 안드레, 리히텐슈타인, 모나코가 OECD 기준을 받아들임으로써 비협조적 조세도피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조세도피처는 다양한 형태의 비밀주의 사법체제와 현격히 낮은 세율 또는 영세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핵심적인 사항은 조세도피처가 조세, 금융규제, 형법, 상속 규정 등과 같이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음에 따라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세도피처를 이용하는 개인이나 기업들은 사회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누리면서 그 비용은 전혀 지불하지 않는 일종의 무임승차자free riders이고, 그러한 행위는 사회적 비난을 넘어 처대상이기도 하다. 

 

한편 조세도피처를 매개로 연결되는 역외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도관 구실을 하는 중개도피처intermediary havens와 궁극적인 안착지인 최종도피처destination havens를 구분해야 한다. 돈세탁 또는 탈세의 목적으로 재산을 역외로 도피시키는 사람들은 제도권 금융이 잘 발달되어 있는 영국,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 홍콩, 싱가포르 등의 금융기관에서 그들의 자금이 안전하게 보호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케이맨 제도나 버진아일랜드 같은 전통적인 의미의 조세도피처는 중간도피처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며, 그곳을 거쳐 조성된 자금은 선진국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조세회피를 위한 역내-역외시장onshore-offshore market이 발달하여 전통적인 역외지역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델라웨어, 알래스카, 네바다 등 일부 주정부는 유한책임회사와 자산보호신탁회사의 설립을 허용함으로써 역외의 조세도피처에서 제공하던 다양한 금융거래상의 비밀주의와 세제혜택을 제공한다. 이제 기업과 부자들은 비싼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역내에서 조세도피처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조세도피처는 야자수로 둘러싸인 카리브 해안의 작은 섬들이 아니라 세계의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주요 패권 국가들의 금융센터들이다. 세계의 역외금융은 소위 Big Four로 불리는 소수의 글로벌 회계법인(PwC, Deloitte, Emst & Young, KPMG), 법률회사, 그리고 50여 개의 다국적 은행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들이 통제하는 영향력 있는 금융네트워크는 국가의 조세주권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역외체제는 범죄자들이 암약하고 있는 지하세계와 금융엘리트들을 연결하고 외교 및 정보기득권 세력과 다국적 기업들을 연결해준다. 또한 역외체제는 갈등을 조장하고, 우리의 지각을 왜곡하며, 금융 불안을 야기하고, 정계와 재계 그리고 지하경제의 거물들에게 어마어마한 보상을 안겨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외체제는 권력의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역외탈세 수법 및 현황

 

최근 국세청은 역외탈세를 지하경제 양성화의 핵심 분야로 지정하였다. 역외탈세란 국내에서 발생한 소득을 세금도 내지 않고 불법으로 해외에 빼돌리거나 해외에서 발생한 소득을 국내에서 신고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세법은 기본적으로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단, 해외소득에 대해서는 거주지국 과세원칙을 적용하고 외국납부세액공제제도를 이용하여 이중과세를 배제하고 있다. 이전가격조작transfer pricing을 통한 조세회피는 기업의 절세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통상적인 거래가격을 크게 벗어난 경우에는 넓은 의미에서 역외탈세로 간주된다. 이전가격조작이라 함은 소득세율이 낮은 외국 자회사의 소득은 부풀리고, 국내 모회사의 소득은 줄이는 방식으로 거래가격을 조작하여 세금을 피해가는 행위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파악된 역외탈세 유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홍콩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 등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여 해외 배당소득 및 해외무역소득을 해외비밀계좌에 은닉하는 수법이다. 다음으로 싱가포르 등 세율이 낮은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통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는 가격보다 높은 매입 가격으로 현지법인에 소득을 이전한 후 현지법인으로부터 거액의 급여 및 배당소득을 해외계좌로 수취하여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하는 수법이다. 이른바 이전가격조작을 통한 역외탈세이다. 마지막으로 해외거래처로부터 받을 중개수수료의 일부를 스위스은행 계좌로 수취하여 법인세 등을 납부하지 않거나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여 금융상품에 투자해서 벌어들인 수익 중 투자원금만 회수하고 나머지는 해외계좌에 은닉하는 수법이다. 이외에도 고액자산가 개인이 해외로 자금을 밀반출하여 부동산 또는 해외증권을 매매한 후 발생한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 종합소득세 및 증여세를 탈세하기도 한다. 

최근 뉴스타파와 국제탐사언론인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명단에는 대학총장을 비롯하여 재벌 오너와 임원, 예술인과 전직 대통령의 장남까지 포함되어 있다. 특히 검찰에 의해 기소된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해외법인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CJ계열사에 투자하고, 이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가장하여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수천억 원을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계열사 주식에 투자를 하고도 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기업들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여 비자금을 조성한 후 외국인 투자자를 가장하거나 국내의 차명계좌를 활용하여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의 금융거래는 비단 탈세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사주를 차명으로 관리함으로써 기업지배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따라서 기업의 불법적인 역외 금융거래는 조세정의뿐만 아니라 순환출자의 규제를 통한 재벌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경제민주화에도 반하는 행태이다. 

 

한편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산에 따르면, 작은 섬나라에 소재한 금융센터들의 대차대조표상 자산 계정을 합산하면 18조 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세계 총 GDP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2008년 미국 연방회계감사원GAO은 미국 100대 기업 중 83개 기업이 조세도피처에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했으며, 2009년 조세정의네트워크가 광의의 역외개념을 적용해 조사한 결과 유럽의 100대 기업 중 99개의 기업이 역외 자회사를 운용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2012년 조세정의네트워크는 보고서를 통해 1970년대부터 2010년 말까지 조세도피처로 흘러들어간 금융자산 누적액이 최소 21조 달러, 최대 32조 달러에 이르고, 한국의 부자들이 7,790억 달러, 원화로 888조 원에 달하는 거액을 조세도피처에 숨겨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추정은 조세도피처로 투자된 국내 자금의 규모를 통해서도 일부 확인이 된다. <표>에서 보듯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주요 조세도피처와 홍콩으로 흘러들어간 국내 법인과 개인의 투자 잔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2년 현재 315억 6천만 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이 중 법인의 투자 잔액이 9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은 조세도피처가 아니지만, 외국환거래법의 위반 비중이 큰 국가로서 역외탈세와 무관한 지역이 아니다.

 

역외탈세의 폐해 및 방지를 위한 방안

 

역외탈세 방지를 위한 현행 제도

역외탈세 방지를 위해 정부는 이미 실질과세원칙,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외국법인의 유보소득에 대한 배당간주, 정상가격에 의한 과세조정, 해외금융계좌의 신고 의무화, 외국과의 조세정보 교환협정 등 다양한 조치들을 취해왔다. 먼저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제2조의 2에서는 국제거래에서 이익을 본 자가 외국에 있는 자로 되어 있더라도 사실상 그 이익 귀속자가 우리나라 국민이거나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인 경우에는 납세의무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17조에서는 실효법인세율이 15퍼센트 이하인 국가에 설립된 외국법인과 내국인이 특수관계에 있는 경우에 그 특정외국법인의 배당 가능한 유보소득 중 내국인에 귀속될 금액은 내국인이 배당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내국인이 경영상의 정당한 사유 없이 조세도피처의 외국법인에 소득을 쌓아두고 배당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배당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 뒤 국내소득에 합산하여 과세하는 것이다.

 

또한 동법 제4조에서는 국외특수관계인과의 국제거래에서 그 거래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낮거나 높은 경우에는 과세당국이 정상가격을 기준으로 국내 거주자(내국법인과 국내사업장 포함)의 과세표준 및 세액을 결정하거나 경정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이전가격조작에 의한 탈세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동법 제34조에 의해 국내 거주자 및 내국법인이 해외에 금융계좌를 보유하고 해당 연도의 매월 말일 중 어느 하루의 잔액이 10억 원을 초과할 경우에는 계좌보유자의 신원 정보, 계좌번호와 금융회사명, 계좌의 실소유자 등을 다음 연도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세무서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거나 과소 신고한 경우에는 미신고 금액의 10퍼센트 이하를 과태료로 부과하고, 미신고 금액이 5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미신고 금액의 10퍼센트 이내에서 벌금에 처하고 둘을 동시에 부과할 수도 있다.

한편 동법 제7장에서는 국가 간 조세협력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과세당국은 조세의 부과와 징수, 조세 불복에 대한 심리 및 형사소추 등을 위하여 필요한 조세정보와 국제적 관행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조세정보를 조세조약을 체결한 상대국과 교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5월 기준으로 80개 국가와 정보교환조항을 포함한 조세조약을 체결하였고, 미국을 비롯하여 43개 국가와 조세행정공조협약을 맺고 있다. 또한 2개의 조세도피처와 조세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15개의 조세도피처와 조세정보교환협정에 서명하거나 가서명한 상태에 있다.

 

역외탈세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역외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세법상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탈세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세법 이외에 역외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다차원적인 제도개선이 시급히 요구될 뿐만 아니라 대상자별로 차별화된 정책을 통해 제도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 왜냐하면 역외 계좌를 신고하지 않은 개인 및 법인은 정부가 어떤 유인책을 제시해도 신고할 의사가 전혀 없는 집단과 유인책에 반응하여 신고할 수 있는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지하경제를 통해 형성된 검은 돈과 비자금이 대표적이고, 후자의 경우는 신고에 따르는 불이익이 신고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집단에 대해서는 국가 간 조세정보 교환을 활성화하여 누락된 해외금융계좌를 확보한 후 역외탈세에 대한 국세청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주거나 기업의 법인격을 부인하여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두 번째 집단에 대해서는 해외 재산에 대한 일제신고 기간을 설정하여 자발적 신고를 유도할 수 있다.

먼저 역외탈세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외에서 이루어지는 금융거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국세청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명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뉴스타파의 발표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80개 국가와 조세조약을 체결하였지만 외환거래법 위반의 비중이 큰 홍콩과는 조세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조세도피처 중 투자 잔액이 상위에 속하는 버뮤다와는 지난해 1월 조세정보교환에 관한 협정을 마쳤으나 아직 발효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고, 케이맨 제도 역시 2010년 3월 가서명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또한 투자 잔액의 비중이 가장 큰 조세도피처인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대상으로 한 조세조약 개정 절차도 완료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 국가와 조세정보교환협정 체결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하여 해외금융계좌에 대한 정보의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에 미국은 해외금융계좌신고제FATCA를 도입하여 세계 모든 금융기관이 미국 거주자의 금융계좌에 대한 정보를 국세청에 보고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시 미국 내에서 벌어들인 투자수익의 30퍼센트를 징수하도록 조치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개인정보 보호와 상충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역외 금융거래의 투명성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조세도피처를 이용하는 납세자에게 입증책임의 일부를 부담지우는 방식도 중요한 조치이다. 우리나라의 대법원 판례상 조세소송에서 과세요건이 되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과세관청에 있다. 그러나 조세도피처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금융거래는 정보 수집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탈세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러한 이유에서 프랑스와 벨기에 등 일부 국가에서는 조세도피처에 한하여 일정한 거래에 대한 입증책임을 납세자에게 지우고 있다. 우리도 조세도피처에서 이루어진 거래행위에 대해 일종의 과세예비처분을 하고, 납세자가 그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과세처분을 확정하는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기업이 탈세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 경제적 실체인 다른 개인이나 법인이 있는 경우에는 당해 법인의 법인격을 부인하여 실질적인 소유자에게 과세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의 법인격을 부인하면 법인 소유주에게 소득세와 법인세 및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세기본법」 제14조에서는 실질과세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며,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제2조의 2에서는 조세협약의 혜택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제3자를 통한 부당한 거래를 직접 거래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현행 법제도하에서도 법인격 남용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는 있다.

 

다음으로 세계 각국은 무신고자를 자발적 신고로 이끌기 위해 특별 프로그램을 운용하거나 일반법에서 자발적 신고를 권장하고, 자발적 신고를 이행한 납세자에게는 가산세나 이자의 감면, 형사기소로부터의 보호와 같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 영국 등과 함께 일반법을 통해 자발적 신고를 유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2012년 12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제37조를 신설하여 과태료를 부과하기 전에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하거나 신고를 수정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수정신고를 한 경우에는 과태료를 감면해주고 있다. 그러나 신고 대상자의 처벌에 대한 인식 미흡 등으로 자발적 신고 제도를 조기에 도입하는 것은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납세자들이 미신고 해외금융계좌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자발적 신고제도가 제공하는 혜택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해외계좌 신고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단계에서 처벌 완화를 통한 활성화 대책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외금융계좌에 대한 자발적 신고를 유도하는 동시에 해외금융계좌 보유사실이나 국제거래를 신고하지 않은 개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조세범처벌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포탈한 세액이 연간 1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연간 5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의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며, 그 포탈세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을 함께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반면에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에서는 해외금융계좌 중 미신고 금액이 50억 원을 초과해야 10퍼센트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20억 원에서 50억 원까지는 7퍼센트, 20억 원 미만은 불과 4퍼센트의 과태료만을 부과할 뿐이다. 미국의 경우 신고의무자가 해외금융계좌를 고의로 보고하지 않으면 10만 달러 또는 불이행 당시 계좌잔액의 50퍼센트 중 큰 금액을 과태료로 부과한다. 또한 25만 달러 이하의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을 함께 부과할 수 있으며, 다른 불법행위와 연계되어 있을 경우에 50만 달러 이하의 벌금과 10년 이하의 징역을 함께 부과할 수 있다.

 

한편 역외탈세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해외금융계좌의 신고기준을 낮추고 신고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에서는 10억 원 이상의 해외금융계좌에 대해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당해 연도에 한 번이라도 잔고합계가 1만 달러를 넘는 미국인은 국세청에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 현행법에서는 신고의무를 해외금융계좌에 국한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지분, 부동산과 고가의 미술품 취득을 통한 역외탈세는 포착이 어렵다. 따라서 역외 거래의 신고대상을 해외재산 일반으로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기획재정부,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한국수출입은행 등 관련 기관 사이에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확보된 금융거래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정보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성을 확대하여 해외금융계좌와 국내 차명계좌를 연결하는 비자금의 흐름을 차단해야 한다. 이럴 경우 국세청으로 정보가 집중됨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회 등에 의한 국세청의 감독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규정과 차명금융계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금융비밀주의로 인한 폐단을 제거해야 한다.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역외탈세는 대단히 복잡하고도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부고발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보호규정을 강화하고 내부고발에 대한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 2008년 독일 국세청이 조세도피처인 리히텐슈타인에 소재한 금융계좌를 대상으로 대규모 탈세조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내부자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역외탈세로 조성된 비자금의 상당 부분이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처벌수위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1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 제4항을 신설하여 실명이 확인된 계좌 또는 외국의 관계 법령에 따라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실명이 확인된 계좌에 보유된 재산은 명의자가 취득한 것으로 추정하여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은 차명으로 금융계좌를 개설한 경우에 명의신탁자와 수탁자에게 어떠한 처벌도 가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부동산을 차명으로 등기하는 경우, 명의신탁자에게는 해당 부동산 가액의 30퍼센트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명의수탁자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맺음말

 

박근혜 정부는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135조 원에 달하는 복지재원의 일부를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후 후속 조치로 국세청은 역외탈세를 지하경제 양성화의 핵심 분야로 지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6월 3일부터 6일까지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된 유로다드EURODAD의 국제회의에서도 금융거래의 투명성 강화와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역외탈세 근절방안이 깊이 논의되었다. 심지어 조세도피처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은밀한 역외금융거래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6월 18일 북아일랜드에서 폐막된 G8 정상회담에서도 역외탈세 방지는 로크에른 선언문의 주요 의제로 채택되었다. 이제 역외탈세는 국내의 정치경제적 이슈를 넘어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역외탈세는 조세정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분배구조를 악화시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더욱이 역외거래로 조성된 비자금은 차명계좌를 통해 자사주 매입에 지출됨으로써 기업의 지배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일부 재벌 대기업과 고소득 계층은 부를 증식시키면서 역외탈세를 통해 정당하게 부담해야 할 세금마저도 납부하지 않았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서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최저생계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따라서 역외탈세 근절은 조세정의의 확립과 경제민주화를 넘어 사회정의 차원에서 이해되고 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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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구 인하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
이 글의 출처는 황해문화 2013 가을호(통권 80호)입니다. 
각주는 아래 원문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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