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모니터 후기] 10/7 기획재정위원회 : 종부세 논란

이 세상에 좋은 세금이 있을까?

어제 기획재정부 국감이 열렸다. 강만수 장관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종부세의 폐해에 대해서 많은 논거와 사례들을 든다. 나는 정부와 여당이 종부세 무력화 조치를 들고 나왔을 때, 왜 정치적인 무리수를 두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제 국감을 보고나서 확실히 이해했다. 강만수 장관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종부세는 참으로 ‘나쁜 세금’이라는 확신을 가진 확신범인 것이다.

 ‘휴머니스트’ 시각을 가진 정몽준 의원은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아무리 소수라도 한명의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서 수십명이 정글에 투입되어야 한다”라는 비유를 한 적도 있다. 비록 종부세를 내는 사람의 숫자가 2%도 안 되는 소수지만 다수자가 소수자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나키스트’ 시각을 가진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순리에 맞지 않고 과도한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라고 국감에서 말하기도 한다. 한나라의 재정과 조세를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관적일 수 있는 기준에 따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언급은 대단히 급진적인 발언이다.

그런데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생기면 안 된다는 말은 언뜻 들어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효과가 있는 세금제도라 하더라도 단 한사람이라도 피해를 본다면 ‘휴머니즘’에 어긋나고 헌법정신에 어긋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좀 넓게 생각해 보자. 종부세가 나쁜 세금이라면 그럼 어떤 세금이 좋은 세금일까?

조세전문가들이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소득세는 좋은 세금일까?

조세제도 중, 가장 기본적인 세금은 자기가 버는 소득에 부과하는 소득세이다. 어떤 조세전문가들은 소득세를 보고 ‘아름답다’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의 소득에 맞춰 누진적으로 과세되고 적절한 공제제도까지 있어 응능부담(부담하는 자의 담세력에 따라 세금납부)의 원칙을 비교적 잘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나는 어떤 시민에게 이런 상담을 받았다.

“나는 사업에 실패해서 빚이 일억 원이 넘는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갚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자산이 마이너스인데도 소득세를 꼬박꼬박 내어야 하는가? 그리고 시골의 몇 천만 원짜리 작은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 하는데 양도소득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
“이번 정부의 세제개편안으로 공시가격 9억 원 이상 주택(실거래가 약 11억원)의 양도차익에 대해서 비과세라고 하던데, 나는 몇 천만 원짜리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 해도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하느냐?“라는 상담이었다.

참 딱한 사정이다. 그러나 그 상담자가 가진 땅은 비거주인이 가진 비사업용 토지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행 세법은 비거주자가 가진 비사업용 토지는 투기성 목적이 있다고 보아 매매차익의 60%를 중과세한다. 

자, 한번 골라 보자. 이 셋 중에서 바람직한 세금은 어떤 것인가.

첫째, 6억 이상 주택을 보유했다고 다른 소득이 없어도 보유사실에 대해서 내는 종부세.

둘째, 빚 청산을 위해 매매하는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셋째, 1세대 1주택자가 이사 가고자 집을 매매하는데, 6억이 넘는다는 이유로 내는 양도소득세 

참 고르기 힘든 질문이다. 바람직해 보이는 세금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할까? 종부세를 통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으니 종부세도 없애고, 소득세를 통해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으니 소득세도 없애야 할까?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똑같은 금액으로 내는 부가가치세는 어떤가? 이것도 물론 없애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요즘 큰 이슈가 되는 식품안전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출은 무슨 돈으로 하고, 금융위기, 일자리 창출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마련할까? 그리고 SOC는 어떻게 건설하고, 노인, 장애인, 육아에 대한 복지예산은 어떻게 마련 할 수 있을까?

재정학적으로 가장 좋은 세금은 토지 등 부동산에서 걷는 ‘중립세’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세금을 내고 싶지 않는데도 세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작용이나 피해가 없는 세금도 없다. 결국, 조세제도는 아무런 비판이나 조세저항 없는 ‘아름다운’ 곳에서만 걷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덜 나쁜 곳에서 걷는 것이다.

조금 더 담세 부담력이 있고, 조금 더 공익성에 부합되고, 조금 더 소득재분배에 기여하는 곳에서 걷어야 한다. 그래서 만일 어떤 세금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폐지하거나 완화하여야 한다면 그 대신에 다른 어떤 부분에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지까지 제시해야 한다. 결국, 가장 덜 나쁜 세금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덜 나쁜 부분부터 세금을 걷어야 한다. 

그럼 재정학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세금이 가장 덜 나쁜 세금일까? 재정학적으로 나쁜 세금이란 세금을 걷을 때 사람들의 소비, 생산 등의 패턴을 변화시켜서 자원분배의 왜곡을 불러일으키는 세금이다. 자원분배에 왜곡이 생기면 경제의 효율성이 저해되기 때문에 나쁜 세금이라는 것이다. 보통 국민이 100원의 세금을 내면 국가재정에 100원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조세제도가 경제의 효율성에 20% 왜곡을 준다면(초과부담) 국민이 비록 100원의 세금을 내도 국가재정 창고엔 80원만 채워지는 것이다.

그럼 과연 국민이 100원을 냈을 때, 국가가 100원을 그대로 가질 수 있는 세금이 있을까? 이러한 세금을 중립세(lump sum tax)라고 하는데 중립세에 가장 가까운 세금이 바로 토지 등 부동산에서 걷는 세금이다. 그래서 헨리 조지 같은 경제학자는 모든 세금을 없애고 토지세를 올려서 국가재정을 충당하자고 주장하기도 할 정도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현실은 재정학적으로 가장 덜 나쁜 토지 등 부동산 보유세의 비중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 재산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래세가 너무 높고 보유세는 너무 낮다는 것이다. 이는 과세의 편의만을 위한 것으로, 주택의 건전한 거래를 막고 1세대 다주택 보유를 수월하게 만드는 세제이다. 그래서 지난 정부 때, 신규 주택 취득 시 거래세를 5%에서 2%로 절반 이상 감축하고, 대신 보유세를 올리는 과정에서 도입한 것이 바로 종부세다. 그런데 중산층이 부담하는 보유세 모두를 올리기에는 부담스러워서 6억 원 이상 고가 주택에만 보유세를 강화하여 종부세를 만들었다.

그런데 현재 종부세를 내는 사람 기준으로도 보유세율이 1%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미국 등 선진국의 보유세가 1%가 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종부세도 외국의 보유세와 비교해서 과중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종부세가 ‘나쁜 세금’이라며 종부세를 무력화하는 방안을 관철하고자한다.

소득세는 소득에 내는 세금, 재산세는 재산에 내는 세금

어제 강만수 장관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종부세에 대한 가장 주된 비판은 (비싼)집만 있고 소득이 없는 사람이 세금을 내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소득세제와 재산세제 등의 기초 조세 개념을 혼돈했기 때문이다. 소득세는 말 그대로 소득에 내는 세금이고 종부세 같은 재산세는 물세이기 때문에 보유사실 자체에 담세력을 인정하는 세금이다. 10억 자산가와 마이너스 자산가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소득에는 동일한 소득세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소득세는 자산의 보유정도를 따지지 않고 소득에만 부여하기에 빚을 갚는 사람도 소득세를 내는 안타까운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10억 소득자와 무소득 자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재산에는 동일한 물세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소득이 없는 사람도 물세를 내는 안타까운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물론 세상은 조세 원칙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므로 위와 같은 안타까운 일은 미세 조정을 해서 해결할 수 도 있다. 소득과 상관없이 거래사실 자체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경우나 소득과 상관없이 재산보유 사실 자체에 종부세 등 보유세를 부과하는 것 모두 조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종부세를 무력화 한다면 다른 어떤 곳에서 더 보충해야 하나

 그런데, 징벌적인 ‘나쁜 세금’인 종부세를 무력화시킨 결과 내년도에 1조 1천억원의 세수가 감소되었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고자 정부는 중산층 서민들이 부담하는 재산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국민의 저항이 너무 거세서 재산세는 올리지 않는다고 급한 불만 껐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종부세로 인해 감소된 1조1천억 원은 다른 어떤 ‘좋은 세금’을 통해서 채울 것인지 전혀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종부세를 부담하고 있는 사람은 2%에 지나지 않는 ‘노블리스’들이고 거기에 1% 정도의 보유세를 부담하는 것은 ‘오블리주’라고 말하기 이전에 재산세제의 정상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극 소수 ‘강부자’만을 위해 종부세를 무력화한다면 그 부족한 세수는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채울 것인지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무리하며

어제 강만수 장관은 유난히 헌법정신을 들먹였다. 순리에 맞지 않고 과도한 세금이라면 한푼도 내지 않는 것이 헌법정신이라고 말했는데 어제 오제세 의원의 지적 처럼 대한민국 헌법은 불합리한 조세에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모든 세금은 법률로 정하고 법률로 정한 세금은 모든 국민은 따라야 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한나라의 재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헌법정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격한 아나키스트의 발언에 지나지 않다. 이러한 아나키스트가 한나라의 장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사족: 아무리 종부세에 대해 몰이해와 편향된 시각을 가졌다고 해서 한나라의 장관을 ‘아나키스트’라고 까지 표현할지에 대해서는 망설였다. 그러나 어제 강만수 장관은 종부세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의원에게 소련공산당은 물론 히틀러에도 비유를 한 것을 감안하면 이정도 비유는 가능하다고 본다.

조세개혁센터 이상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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