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경제교실] 국세청의 위기와 기회

국세청의 위기와 기회  


구재이(세무사,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부소장)


백용호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국세청장에 임명되었다. 대통령으로부터 후보로 지명받은 후 청문회 과정까지 줄곧 국세청 출신 정통관료가 아닌 금융을 전공한 교수 출신인데다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라는 이유로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기도 하였다.  

신임 국세청장이 짊어지고 나갈 국세청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있다. 전임 청장 3명이 모두 영어의 몸이 되었거나 도피중이다. 그들은 모두 내부적으로 국세청의 개혁과 안정에는 어느정도 성과를 보이긴 하였으나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국세청의 수장으로서 정치권의 영향력을 차단하기는 커녕 스스로 앞장서 받아들였고 청탁과 비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이 그토록 앞세웠던 ‘섬기는 세정’의 대상은 국민이 아닌 것이 분명해졌고 국민에게 배신감만 안겨주었다.

이처럼 국세청의 딱한 현실을 초래한 주인공은 국세청의 2만여 직원이 아니라 청장을 비롯한 몇몇의 고위공직자이고, 줄거리는 일반적인 세무행정 아닌 세무조사에 맞닿아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의 실추된 신뢰와 명예를 되찾는 해법도 우선 여기서 찾아야 하며 이를 해결하여야 공평과세와 납세자권익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개혁도 가능할 것이다.

지금, 그동안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국세청에 대통령의 측근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은 신임 청장이 뛰어들어 과연 국세청이 짊어진 수 십년묵은 ‘굴레’를 벗길 수 있을 지 국세청직원은 물론 온 국민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있다. 


1.  독립성과 신뢰받는 국세청


최근 국세청이 외부용역을 주어 만들어지고 이후 청와대 주도로 검토한 국세청 개혁방안 일부가 공개되었다. 국세행정을 감독할 외부감독기구를 설치하고, 일반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지방국세청을 없애 세무서의 조사과를 통합하여 조사기능을 강화하는 조사청을 신설하는 등 매우 혁신적인 방안이 들어있다.

청와대의 국세행정개혁방안은 처음에는 국민적 요구에서 보다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려 국세청이 전략적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상당히 혁신적인 안을 담고있어 국세청이 엄청난 고통을 수반되는 이 방안을 쉽게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제까지 과세당국을 감독하거나 통제하는 기능을 갖춘 기구는 없었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과세권 남용을 막기위해서는 입법적 보완과 함께 세무행정을 감독할 수 있는 외부기구의 필요성을 제기되고있으며 실제로 선진외국에서도 시행되고있다.

미국은 국세청의 구조개혁작업을 위해 의회가 나서서 ‘국세청구조조정및개혁법’(RRA)를 제정하고 재무부에 납세자의 권익보호와 국세청의 인사감독 및 업무감사권까지 가진 ’국세청감독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직제상 재무부가 국세청의 감독기능을 수행해야 하지만 집행기관으로 업무성격이 이질적인 국세청을 제대로 감독 · 통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반면, 국세청은 전문성있는 집행기관일 뿐 장기적인 발전전략에 맞춘 행정집행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국세청의 업무를 감사하고 조세범죄를 조사하는 조세행정총괄감사관(TIGTA) 제도를 두고도 또다시 국세청감독위원회까지 설치하도록 한 것은 일견 과도한 통제로까지 보인다. 하지만 세무행정을 납세자의 시각으로 감독하면서 조세정책을 평가 개선해나가는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웅변해주고있다.

신임 청장은 청문회 과정에서 외부감독기구를 두는 것에 반대하고 국세청 내부에 외부인사로 구성된 ‘국세행정위원회’를 두겠다고 밝혔다. 또 지방청 폐지 등 조직개편에 대하여도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하지만 국세청 내부에 ‘국세행정위원회’를 두는 것은 독립성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아보인다. 국세행정의 적정성을 외부인사에게 검증받을 생각이라면 굳이 검증대상 자신인 국세청 내부에 두어 중립성에 의심을 받을 이유가 없고 만약 그럴 생각이 없다면 설치조차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사·감사 등 업무감독권은 물론 납세자권리보호의 권한을 부여한다해도 집행기관인 국세청 내부조직 내에 설치하는 것은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세청장이 새로 임명되면서 국세청에 외부인사로 구성된 세정개혁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처음에는 의욕을 보였다가도 결국 유명무실하게 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지난 수 십년동안 세정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과세권 남용을 막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외부감독기구의 설치는 국세청의 해묵은 난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2.  작지만 강한 세무조사


최근 국세청의 난맥상은 세무조사 행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세무조사는 국민의 기본권과 재산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세무조사에 대한 공평성과 중립성 논란은 완전히 피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세무조사는 신고납세제도가 일반화된 세무환경의 세무행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무행정이 세무조사 위주로 집행되어서는 곤란하고 세무조사는 최소화하되 한번 실시하는 경우 최대한 강력하게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처럼 ‘작지만 강한’ 세무조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촘촘한 과세인프라가 구축되어 많은 세무조사를 하지않고도 납세자의 성실성을 손금보듯 볼 수 있는 구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세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과세인프라자료에 의해 납세자들이 성실신고도를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굳이 많은 세무조사가 실시할 필요조차 없게된다. 최근 수 년간에 걸친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사업용계좌·전자세금계산서 제도 등 과세인프라 구축에 따른 엄청난 과표양성화와 세수증가는 지난 30여년간 과세인프라구축 노력없이 세무조사 위주의 단편적인 세무행정이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무조사를 많이 한다고해서 납세자의 신고성실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조사업무가 많아지면 담당공무원의 업무부담이 늘어나고 제대로 집중할 수 없어 세무조사가 의례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불성실한 납세자는 정상적인 신고납부보다 세무조사를 통해 ‘절세’를 꾀하게되고 면죄부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므로 세무조사는 검증이 필요한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취약업종이나 개별적인 불성실신고가 포착된 납세자에 대하여만 선별적으로 실시하고 그 강도와 폭은 확대되어야한다.  

한편, 작지만 강한 세무조사는 국세청장의 의지나 세무공무원의 능력만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세법에는 세무조사에 대한 근거나 기본적인 절차만 마련되어있을 뿐 세무조사의 원칙·절차·효력·한계 등 통제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세무조사 절차와 통제수단 등이 세법에 상세하게 잘 설명되어 있으면 과세당국은 정당한 조사권을 제대로 집행하여 세무조사의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고 납세자도 세무조사 절차에서 납세자권리를 보장받게되어 세무조사의 신뢰성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3.  납세자중심의 세무행정


최근 수년간 국세청의 심혈을 기울여온 현금영수증· 전자신고 등 많은 과세인프라 구축작업은 납세자와 세무전문가의 협력 하에 매우 성공적으로 이뤄지고있다. 이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그 결과 납세자의 납세성실수준은 눈에 띄게 높아져 세수확대는 물론 과세기반도 탄탄해졌다.

하지만 급격한 과표양성화와 더불어 그동안 탈세효익에 젖어있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던 납세자들의 납세자권리에 대한 인식과 요구가 세무행정에서 상대적으로 강해졌다. 이는 조세제도의 발전단계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도 획기적으로 국세청 조직을 구조조정하는 한편 행정목표를 조세징수가 아닌 납세서비스로 전환하였다.

이제 국세청의 목표는 재정조달을 넘어 ‘납세자를 위한 세무행정’이 되어야 한다. ‘납세자를 위한 세무행정’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조세징수가 최우선이던 시절 만들어놓은 국고주의와 징세편의주의에 의한 조세제도와 세무행정 관행을 과감하게 바꿔야한다. 납세자가 가장 편하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고쳐져야 하고 조세절차상 예우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납세자의 재산권에 영향을 미치는 세무행정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과세전에 충분하게 납세자의 사정과 고충을 청취하고 반영하는 절차가 충분히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무행정에 있어 일방적인 집행이 아니라 납세자를 참여시켜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절차를 거칠 수 있다면 세무행정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다. 이를 위해 국세청이 납세자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중인 납세자보호관 제도를 외부인사로 임명하여 독립적으로 국세청과 납세자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옴브즈맨 제도로 개편하는 등 납세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조직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신고납세제도 세정환경에서 성공적인 세정집행을 위해서는 과세인프라 확보와 행정효율화를 위해 납세자와 세무대리인가 부담하는 납세협력비용을 징세비 차원에서 최대한 보전해주어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전산세정이 크게 확충되고 과세인프라가 구축되었음에도 정부의 징세비는 크게 늘지않은 것은 징세비가 납세협력비용으로 전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엄정하게 과세권 행사를 하면서도 행정절차상 납세자권리를 세심하게 챙겨주고 납세협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납세자를 위한 세무행정’이 정착되어 납세자의 행정에 대한 신뢰도와 납세성실도가 높아져 자연스레 조세수입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4.  대통령 측근에서 납세자의 측근으로


신임 청장의 임명은 국세청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국세청장으로 대통령의 측근이 임명되었으니 만일 지금보다 더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국세청이 좁아진 존립기반마져 잃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기’이며, 오히려 강력한 정치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청탁을 이겨내고 국세청 내부의 관료주의마져 극복하고 소신있는 개혁을 완성한다면 ‘기회’가 될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홍역을 치른 후 얼마안돼, 신임 청장이 인사청탁을 한 국세청 간부에게 엄중경고하였다는 ‘신선한’ 보도를 접했다. 과세권이라는 권한을 남용하는 공직자와 탈세 및 조세회피를 일삼는 납세자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하고, 납세자의 고충해결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공직자와 경제난 속에서도 성실하게 납세의무를 다하는 국민에게는 용기를 주고 한없이 부드러운 국세청,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 이 글은 월간조세(2009년 8월호 시론)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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