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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빈곤정책
  • 2020.12.24
  • 517

한국형? ‘평범한’ 실업부조가 필요하다 

 

윤홍식ㅣ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어찌 된 일인지 ‘한국형’이란 수식어만 붙으면 이상한 제도가 되는 것 같다. 박정희는 유신 독재를 ‘한국형 민주주의’라고 주장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선별적 복지를 ‘한국형 복지’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뉴딜의 핵심인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 강화와 국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한 담대한 복지 확대가 결여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산업정책을 ‘한국판 뉴딜’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한국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한국형이라고 이름 붙인 제도치고 본래보다 더 좋아진 제도를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 씁쓸한 것은 그 한국형이라고 이름 붙여진 제도를 도입하면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정치인을 볼 때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든든한 고용안전망”이라고 했던 한국형 실업부조, ‘국민취업지원제도’가 그렇다. 물론 없는 것보다 ‘한국형’이라도 있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실업부조가 없어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자영업자·특고·비정규직 노동자 등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노동자, 청년의 ‘일부’가 국민취업지원제도 시행으로 6개월간 최대 3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하니,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러나 민생의 절박함은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로 위로받을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공적 사회보장제도의 수혜 여부는 취약계층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한국형의 가장 큰 문제는 대상의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취업자가 절반에 가까운데, 국민취업지원제도의 수급 대상자는 가구 기준으로 기준 중위소득의 50% 이하이고 재산은 3억원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구직자 취업 촉진 및 생활안정 지원법’(구직촉진지원법)에 규정된 기준 중위소득의 60%, 재산 기준 6억원 이하보다 더 엄격하게 대상자를 선별하고 있다. 대상자가 40여만명에 불과한 이유이다. 이래 가지고서야 누가 보아도 이재갑 장관이 이야기하는 “든든한 고용안전망”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급 수준과 지급 기간의 문제도 심각하다. 월 50만원으로 생계와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이마저도 6개월뿐이다. 정부는 실직자가 원하기만 하면 단기간 내에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순진한 생각이다. 더욱 심각한 결함은 국민취업지원제도의 수급자가 한번 되면 3년 동안은 다시 실업부조를 신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는 플랫폼 노동, 긱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늘어나면서 단속적 노동 형태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데, 한번 급여를 받으면 3년 동안 수급자격을 박탈한다는 것은 노동시장의 현실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장관께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시고 “가슴이 먹먹해”지셨다고 했다. 만약 그 먹먹함에 진정성이 있다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든든한 고용안전망”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다니엘 블레이크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영국의 선별적인 사회보장제도의 복잡하고 엄격한 관료주의 때문이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는 엄격한 소득·자산 요건, 취업 경험 요건, 구직활동 요건, 지급정지 요건 등 다니엘 블레이크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수많은 관료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장관께서 “든든한 고용안전망”이라고 한 ‘한국형 실업부조’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한국판 다니엘 블레이크’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형 실업부조’가 아니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고용보험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모든 일하는 시민이 실직해도 자신의 생활을 지켜나갈 수 있는, 그저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실업부조이다. 코로나19로 방역의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평범한 실업부조가 분에 넘치는 요구인지 묻고 싶다.

 

▣ 한겨레 왜냐면에 게재되었습니다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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