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연금정책 2004-06-15   4114

[국민연금 특별기획-2] 국민연금, 왜 강제가입인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 것인가

기획의도
1회. 국민연금, 문제가 어디서 발생하는가
2회. 국민연금, 왜 강제가입인가
3회. 급여수준 과연 높은가 낮은가?
4회. 국민연금, 미래세대의 가혹한 부담인가
5회. 국민연금, 왜 미납자가 그렇게 많은가
6회.국민연금기금 제대로 관리되고 있나
7회. 국민연금기금, 과잉적립 아닌가
8회. 연금수급권 제한 조치, 과연 타당한가

국민연금에 새로운 물결이 불어닥치고 있다. 1988년 제도 도입 이래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기금운영의 비효율성 문제, 저부담-고급여(?) 구조에 따른 연금재정의 장기적 불안정 문제, 대규모 연금 사각지대의 상존 문제 등 다소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문제에 한정되어 왔고 또한 문제의 제기 및 논의가 언론, 학계나 시민단체의 전문가 집단 등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주도되어 온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떠돌던 ‘국민연금의 8대 비밀’ 문건으로 촉발된 작금의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논란은 문제의 형태 및 내용, 문제를 제기한 집단의 유형 및 집단의 규모 면에서 그 이전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수급권제한, 유족연금의 수급에 있어서의 남녀차등대우, 보험료 체납에 대한 압류조치의 정당성,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간 형평성 등 지금까지 사회적 관심을 끌지못했던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문제들이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였던 것이며, 또한 이 과정을 주도하는 집단들이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온라인상의 수많은 익명의 네티즌들이었다는 점이다.

네티즌 참여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어떤 사회복지제도이든 그것이 제도 고유의 목적에 부합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그 정책이 적용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욕구 내지 이해를 표출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반영해 주도록 요구하는 과정이 수반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에 비추어 볼때 최근 네티즌들이 정책의 대상자로서의 피동적인 자세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연금제도의 내용 및 관리운영의 관행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한 것은 시민참여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적이 염려스럽고 우려되는 바는 상당수 네티즌들의 논의가 문제 해결적이고 생산적이며 사회통합적인 방향보다는, 감정적이고 시대역행적이며 사회계층간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대량의 노후빈곤을 초래할 수 있는 국민연금제도의 폐지를 외치고, 그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사회보험제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강제가입을 임의가입으로 전환하여 가입 자체를 개인의 선택에 맡겨버리자는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나오게된 데에는 국민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 정부당국 및 연금공단의 관리운영상의 과오 등에서 주요 요인을 찾을 수 있지만,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도 그 하나일 것이다.

국민연금제도, 왜 강제가입인가

국민연금제도는 전세계적으로 160여개 이상의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고 이중 138개 국가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보험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들에서 한결같이 국민연금을 강제가입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첫째,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 미래의 노후를 대비하여 저축하는 고통을 감수하기보다는 현재의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미래를 대비한 저축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노후에 이르거나 임박해서 경제적 곤란에 처하게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후회하지만, 그 땐 이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늦은 셈이 된다.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거의 모든 국가들은 근로자로 하여금 근로 중에 획득하는 소득의 일정 부분을 저축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가구주 가운데 35%는 노후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노후준비를 하고 있다는 한 가구주 중 28.4%포인트는 공적연금을 노후준비수단으로 답하였다.

노후준비수단에서 공적연금을 제외한다면 약 54%가 노후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조만간 대량의 노후빈곤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국가는 개인의 자유에 맡겨두고 수수방관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일부 신보수주의 학자들은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은 개인들이 실수할 자유도 신봉해야 한다’라고 하여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한다. 그들은 개인들이 현재의 소비를 보다 선호한다면 오늘의 소비생활을 즐기도록 국가가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노후빈곤에 처하여 굶어죽는 상황이 발생될 때 그것도 개인 선택의 결과이니 존중해야 한다 말인가?

성실한 노후준비자에 대한 보호

둘째,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강제가입은 비단 가입자의 노후생활을 보장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자들로부터 미래를 대비하는 성실한 자들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문명화된 사회는 그들의 구성원들에 대한 최저수준의 소비를 설정하고 이를 충족시켜주려고 한다. 그래서 비록 불성실한 자라고 하더라도 노후에 굶어주는 일이 없도록 국가는 최저수준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일반적인 책무이다.

그런데 국가에 의해 최저수준의 생계가 보장이 된다면 사람들 중에는 굳이 미래를 대비해 애써 저축하기 보다는 현재 소득의 대부분을 현재의 소비에 써버리려는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실한 사람들은 자신의 노후를 대비함은 물론 불성실한 타인의 노후비용을 위해서도 지불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공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노후보장에 대한 비용부담이 성실 여부에 관계없이 사회전체적으로 공평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소득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의 부담을 강제적으로 부담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보겠다.

소득재분배의 기능

셋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은 근로자가 소유한 자본과 노동과 같은 생산요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때 소득 분배에 지나친 불평등이 있거나 시장에서 획득한 소득이 너무 낮아 빈곤에 빠지는 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면 사회정의에서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유지라는 차원에서도 시장에서의 소득분배를 시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와 같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발휘하는데 국민연금은 매우 유효적절한 수단 중의 하나인 것이다.

혹자는 소득재분배는 조세체계를 통해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사회보험제도는 보험 기능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조세제도와 사회보험제도 공히 소득재분배적 성격을 갖고있다고 하더라도, 조세행정은 구체적인 급여를 제공하는 급부행정은 아니어서 저소득층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수단이 갖고있지 않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최근 불거진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중 가장 많은 불만이 강제가입 규정이다. 이런 불만은 내 노후는 내가 알아서 하는데 왜 국가가 강제로 가입시키느냐 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이 노후보장을 위해 그렇게도 좋은 제도라면 강제가입시키기 보다는 민영연금과 같이 가입과 탈퇴를 자유롭게 해서 경쟁하면 보다 좋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일견 이러한 주장은 국민연금 폐지 주장보다는 덜 과격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연금제도 폐지와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강제가입에 기반하지 않으면 사회보험제도로서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국민연금제도가 강제가입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자.

강제가입 안하면 연금 존립 자체 어려워져

우선 국민연금 가입이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한다면, 소득재분배로 인해 손해를 보게되는 고소득집단은 대체로 민간보험으로 빠져나가게 되고 국민연금에는 보호의 필요성이 가장 큰 저소득집단만 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소득계층에게 적절한 급여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재원 확보가 어렵게 되어 보험료율을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다시 저소득집단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계층이 빠져나가는 등의 악순환이 이어짐으로써 국민연금제도는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는 현상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입자의 선택에 의해 평균 위험보다 높은 위험집단이 순차적으로 남게되는 현상을 역선택이라고 하는데, 소득재분배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한 국민연금 가입이 자발적이라면 심각한 역선택의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또한 국민연금 가입이 자발적이라면 민영연금은 건강이 나쁜 사람,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도덕성이 낮은 사람 등을 사전에 자격적부심사(Underwriting이라 함)를 통해 걸러내거나 또는 높은 보험료를 지불하여 보험을 구매하게 하는 등의 절차를 통해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은 개인들을 주로 적용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제도에서는 사전자격적부심사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주로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개인들이 국민연금을 집중적으로 구매함으로써 급격한 연금지출증가에 직면하여 결국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소득파악체계가 쉽지않고, 그로 인해 국민연금 보험료부과징수체계에 있어서 불합리한 부분이 있고, 국민연금급여 수급자격에 대한 불만이 있을지라도, 이는 제도의 개선 또는 구조 변화를 통해 완화하고 해결해 나갈 성질의 것이지 그것들을 이유로 국민연금을 폐지하거나 임의가입으로 돌리는 것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 된다.

국민연금제도는 조만간 도래될 고령사회의 대량 노후빈곤사태를 방지하여 고령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인 것이다.

권문일(덕성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