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2-07-09   1407

[시론] 수렁에 빠진 이명박 정부 ‘무상보육’

수렁에 빠진 이명박 정부 ‘무상보육’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에서 유일한 업적이 될 수 있었던 무상보육이 표류하고 있다. 사실 능동적 복지, 휴먼 뉴딜, 서민정책 등을 내세웠던 집권 초반기의 복지정책 기조는 내내 정치적 수사 의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보편적 복지와 무상시리즈 논쟁이 한창일 때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언제나 반복지 진영에 섰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복지망국론’ ‘복지포퓰리즘’ ‘복지재정파탄론’에 해당하는 언급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무상시리즈 논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중반 정부는 2012년부터 만 5세아에 대해 무상보육을 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무상복지에 대해 그렇게 비난하던 정부로서는 이해불가한 행보였다. 연말에는 다수파인 여권이 다시 무상보육을 주도해 0~2세까지 무상보육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정부도 이에 동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일관성 없는, 충동적인 정책 설계와 집행의 후과는 컸다. 당장 지방정부가 블랙홀이 되고 있는 보육예산 때문에 이 정책에 반기를 들었고, 보육 수요의 급작스러운 팽창으로 오히려 절박한 가정의 어린이집 이용이 어려워졌다. 특히 무상이 주는 유혹에 넘어가 홑벌이 가정까지도 2세 미만의 영아를 앞다투어 어린이집으로 보내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그것뿐인가. 현재 어린이집 이용에는 표준보육료 외에도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 달 평균 10만원을 웃돈다. 앞으로 통제되지 않는 추가비용의 상승으로 보육료 지원의 체감효과는 점차 줄 것이다. 5세아의 통합과정인 누리과정은 얼마나 충실할지, 곧이어 3~4세에게도 누리과정이 적용된다는데 이것 또한 졸속으로 만들어져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여성의 낮은 고용률 등을 생각할 때 보편적 복지의 원리로 누구나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 정부는 선별적 복지에서 갑자기 보편적 복지를 받아들인 정책기조상의 모순, 복지재정의 과감한 확대를 수용하기 어려운 재정운영상의 실패로 인해 이를 수행할 여지를 스스로 차단했다. 

미국의 저명한 복지정책학자 닐 길버트 교수는 정책에서 어떤 철학적 기조에 서느냐가 중요하고, 그 기조하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자신들의 복지철학과 맞지 않는 무상보육을 덜컥 시행한 현 정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난맥상을 수습할 수 있을까? 정부와 여권이 줄다리기하고 있는 추가 재원 6000억원의 조달로 이 문제가 풀릴 수 있는 것인가? 

누구나 부담 없이 보육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전략은 많다. 보육료를 없애는 것이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영아를 위해서는 일하는 부모들이 육아휴직을 부담없이 쓰게 하는 방법이 더 우선이 될 수 있다. 보육료도 가구 소득의 일정비율을 적용해 차등부담하게 해 가계부담과 재정부담의 완화를 동시에 꾀할 수도 있다. 대신 추가적이고 임의적인 비용은 더 이상 없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어린이집은 공공 통제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현재 5%에 머물고 있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대해 전국적으로 접근의 형평성을 높여야 한다.

이런 다양하고 종합적인 정책 설계 없이 덜컥 저질러놓은 무상보육 정책은, 되돌리기에는 국민의 반발이 부담되고 밀고 가기에는 재정압박이 심각하게 벌어지는 진퇴양난을 피하기 어렵다. 현 정부의 곤욕스러운 상황도 상황이지만, 앞으로 진정 보편적 복지에 입각한 보육정책의 실현을 꾀하려는 정부가 들어와서 겪어야 하는 곤란함도 결코 가볍게 보이지는 않는다. 왜곡된 정책을 펴는 것보다 차라리 아무런 정책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현 정부의 유일한 덕목이라고 냉소 섞인 자위를 해야 하나 싶다.



이태수 |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 본 시론은 2012. 07. 08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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