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5-09-30   412

<안국동窓> 양극화 해소, 더 늦기전에 틀을 바꾸자

지난 9월 22일 전국 133개 노동, 민중, 시민사회단체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를 구성하고 양극화 해소와 사회통합,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민행동을 전개할 것을 선언했다.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시민운동이 정치개혁이나 부패문제와 같은 일반 민주주의 과제가 아닌 다양한 이슈와 쟁점이 있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문제에 연대운동을 합의하고 나선 것은 최초의 일로 양극화와 이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감이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노동, 시민사회 단체 양극화해소 위한 연대

국가간 또는 국내적인 부의 격차를 의미하는 양극화(social polarization)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세계화, 급격한 기술의 발전, 경제적 민주주의의 지체 등 그 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진단과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양극화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지속된 소득격차와 분배구조의 악화가 양극화를 심화시켜 왔다는 점에는 대부분 관찰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IMF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한 기업들의 투자 및 고용의 축소와 단기 수익성을 추구하는 금융시장의 환경변화는 지속적인 노동시장 유연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노동의 불안정성 증대, 근로조건 악화, 실질임금의 하락을 가져왔다. 현재 약 800만명 전체 노동시장의 55%까지 늘어난 비정규직과 이들에 대한 임금, 근로조건 및 사회보험 적용에서의 유례없는 차별은 우리사회에 근로빈곤(working poor)이라고 하는 새로운 빈곤의 유형을 구조화 시켰다. 전체 임금 노동자 4명중의 1명이 중간임금의 2/3(시급 약 4,100원) 이하의 저임금 상태에 놓여있다는 최근 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는 근로빈곤의 규모와 실태 그리고 심각성을 보여준다.

임금소득의 격차에서 나아가 양극화를 돌이킬 수 없는 구조로 만든 것은 부동산 투기이익으로 대변되는 자산소득의 격차와 부의 편중이다.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와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현 정부들어서 남발된 각종 개발사업을 배경으로 기승을 부린 부동산 투기는 과거 강남 등 특정지역에 한정되었던 수준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자산소득에 대한 정당한 과세를 통한 재분배 기능의 취약함과 맞물려 경제적 불평등을 대물림시키고 있다.

임금과 자산의 유례없는 격차와 불평등

이 같은 원인들이 빚어낸 사회적 위기는 총체적이며 심각하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현재 한 달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월 113만 6천원)에 미치지 못하는 빈곤층은 약 500만명, 이보다 조금나은 최저생계비 120% 이하의 차상위계층은 700만명으로 전 인구의 15% 가량이 빈곤상태에 있으며, 통계청은 올해 1/4분기 중 최상하위 계층간 소득격차가 18배 이상이라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상대적 빈곤의 정도를 나타내는 가구의 상대빈곤율은 연구에 따라 편차를 보이나 대체로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전체가구 15% 안팍이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 만큼, 정부는 그간 기회가 있을때마다 ‘양극화해소’와 ‘동반성장’이라는 구호로 당면한 경제와 사회의 위기 극복의 의지와 방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의 참여정부의 실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운용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집단소송제 등 기업의 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한 기본적 개혁조치들은 후퇴되거나 유예되었으며, 과거분식회계 감리면제, 금융산업업법 개정 논란 등 재벌중심적 반개혁 조치는 강화되었다. 각종 개발정책 남발로 인한 전국적인 토지, 주택가격의 상승은 과거 개발독재 시절의 성장지상주의를 방불케하며,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나온 8.31 부동산 대책은 아직 그 성공가능성이 미지수다.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복지재정 확대는 ‘사회정책의 패러다임적 전환’과는 거리가 먼 선별적, 잔여적 한계를 답습하고 있으며, 오히려 의료, 교육, 보육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 영역의 산업화, 시장화 추진에서 나타나듯 신자유주의적인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선결과제인 비정규보호 입법은 표류하고 있으며, ‘일을통한 빈곤탈출’이라는 거창한 표어 아래 진행되는 근로빈곤 대책은 최저임금 현실화와 같은 정공법은 도외시 한 채 EITC의 도입처럼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주변적 대책에 머물고 있다.

구호에 그친 참여정부의 양극화해소

최근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양극화해소를 위한 ‘사회안전망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09년까지 8조 6천억원의 신규재원을 기초생활보장과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뒤늦게나마 양극화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사회안전망의 정책대상을 넓히겠다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 또한 핵심대책이라 할 수 있는 노동시장 양극화해소 방안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안전망 확대의 제한성과 단계성, 재원확보방안의 불투명함으로 양극화해소 대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같은 정책의 흐름은 결국 ‘양극화해소’와 ‘동반성장’이라는 참여정부의 구호가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대통령이 제기하고 집권세력 일부가 호응한 연정 논란은 지역주의 극복의 대의명분과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참여정부가 주장하는 ‘개혁’과 ‘사회통합’의 실체가 ‘정치적 자유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양극화해소, 근본틀을 바꿔야 한다

당면한 양극화 현상이 일시적이거 특정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듯, 그 해법 또한 부분적 조치가 아닌 근본적 틀을 바꾸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기묘하게 결합된 경제정책의 일방적인 기조와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경제의 시장의존성이 당분간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최소한 균형이라도 찾아야 하며 이는 노동정책, 복지정책 등 사회정책의 확대와 강화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참여정부가 말로만 주장했던 ‘동반성장’이 이와 다른것인가? 여기서 분배가 성장을 좀먹고 지체시킨다는 일각의 시비는 현실적 근거들로 지지되지 않는 ‘낡은 레코드판 돌리기’에 불과하며, 매우 의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이분법이다.

둘째, 경제의 민주화 구체적으로는 경제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민주성의 확대가 필요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정부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을만큼 노동배제적인 참여정부의 정치적 태도이다. 현재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는 노정관계의 일차적 책임은 김대환 장관의 ‘막말 행정’과 같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참여정부의 노동배제적 태도에 있다. 노동을 배제한 한 사회의 경제적 의사결정 또는 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한 것인가? 노동의 주체성을 배제한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이란 실현가능성은 물론 논리자체도 성립할 수 없는 허상의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을 참여정부는 뒤늦게라도 인정해야 한다.

셋째, 이 같은 조건들에 기반한 사회통합적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당면한 양극화 현상은 경제발전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치와 이해의 충돌에 개입하고 타협, 조정하는 필연적 국가기능, 정치기능을 포기하고 시장에 모든 것을 내 맡김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이다. 더욱이 최소한의 준법성과 투명성 조차 담보하지 못한 한국적 조건의 시장에서 그 결과는 승자와 패자를 뚜렷히 가르고 그들간의 극단적인 격차를 부르는 약육강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사회통합적 개혁과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히 시장논리에 맡길수 없는 경제사회 주체들간의 가치와 이해충돌의 타협과 조정이 필요하며, 이른바 사회적 대화와 사회협약은 그런점에서 유의미한 전제이자 구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현재와 같이 노정관계가 경직되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신이 누적된 시점에서 정부가 그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다름아닌 비정규입법을 비롯한 노동?사회정책 영역에서 분명한 태도변화를 보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를 포함한 전국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양극화해소와 사회경제적 약자의 사회적 시민권 확보, 사회통합을 위한 연대를 선언하고 나온 것은 현 시점에서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본격적인 논쟁과 토론 그리고 행동은 이제 시작이며, 공은 정부와 정치권에 넘어갔다.

※ 이글은 ‘한국노동혁신연구소’ 인터넷 사이트(http://www.kiiwp.com/) 게재한 글입니다.

박원석 (참여연대 사회인권국장,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공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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