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0-06-10   1128

[기고] 의료민영화라는 역린


지방선거가 끝났다. 여론조사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난 여당의 패배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가 “전쟁공포라는 한국인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어떤 교수의 해석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설득력이 있다. ‘역린’은 <한비자>에 나오는 말로 용이라는 짐승은 잘 길들이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그의 목 아래에 지름 한 자쯤 되는 역린, 즉 다른 비늘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거론되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기조 중 하나는 4대강이나 세종시 문제 등이 숨을 고르는 동안 그간 미루어 놓았던 다른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중 대표적인 정책이 의료민영화이다. 최근 청와대는 의료민영화에 적극적인 인사를 보건복지비서관에 임명했고, 그간 의료민영화에 소극적이었던 보건복지부 장관을 교체한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제주도 영리병원 설치와 관련한 법률은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와 있고,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경제자유특구에 영리병원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의료채권법, 건강관리서비스법, 병원간 인수합병 허용, 의료기관 인증제, 병원경영지원회사의 활성화 관련법, 의료분쟁조정법과 환자정보 사용을 허가하는 보험업법에 이르기까지 각종 의료민영화법이 국회 통과를 준비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고는 하나 대통령은 건재하고 국회는 여대야소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니, 의료민영화는 강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의료민영화 추진은 또 하나의 역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에 대한 공포 못지않게 아파도 비싼 의료비 때문에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는 것 역시 국민에게는 너무나 큰 공포이다. 아니, 국민들은 전쟁 발발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며 실제 가능성에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문제는 분명 더 실감나는 공포로 와닿을 것이다. 수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촛불을 들게 했던 광우병의 공포보다 의료민영화로 초래될 문제들은 확률적으로 더 확실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5.1%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6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2009년 건강보험 급여비용도 전년 대비 12.8%나 증가하여 건강보험 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민영화의 강행이 가져올 결과는 너무나 명백하다.


급격하게 증가한 진료비 부담은 건강보험의 붕괴와 민간보험의 득세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건강보험을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그 역할을 잃으면 고통받을 사람은 서민들이다. 사교육비로 얼마 안 되는 생활비를 쪼개 살아야 하는 서민들은 턱없이 높은 민간보험료를 내느라 허리를 더욱 졸라매야 할 것이다. 민간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많은 서민들은 혹시나 아프면 어떡하나 하며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미국이 그랬다. 민주당의 클린턴과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민영화로 인해 높아진 의료비와 그래서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4500만명의 의료보험 미가입자 문제가 지속적으로 정치적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의료민영화 강행을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두고두고 우리나라 보수 여당의 발목을 붙잡는 업보가 될 것이다.


요즘 <드래곤 길들이기>라는 영화가 인기다. 그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힘으로는 용을 길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길들임이란 그 마음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하물며 용의 역린을 건드려서야 어떻게 용을 길들이겠는가? 더욱이 그 후가 두렵지 아니한가?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 이 글은 한겨레 신문 6월 10일자 칼럼 기고란에 실렸습니다. 기사 바로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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