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4-06-11   669

<안국동窓>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된 소신

2004년 6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민주노동당의 김혜경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단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 나라의 현재는 물론이요 미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중대발언을 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며, 이것은 건설업계의 압력의 결과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말한 것이다.

지금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는 그야말로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국민의 50.3%가 자기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파트는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나 비싸서 아파트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빈민의 주거공간을 빼앗아서 중산층의 주거공간으로 만드는 재개발방식 때문에 전국에서 자기의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특히 중요한 것은 두가지로 줄일 수 있다. 첫째,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된 아파트 원가를 줄여서 더 많은 국민들이 더 빠른 시간에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사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보다 아파트 분양원가 연동제가 더 중요하다. 아파트 분양원가에 따라 실제 아파트 분양가를 조절하도록 하는 것이 아파트 분양원가 연동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5.7평(33평형) 이하의 국민주택 규모에서 아파트 분양원가 연동제를 실행하겠다는 것은 일단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하겠다.

둘째,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해서 택지공급과 주택건설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민간업체는 물론이고 공공기업도 아파트 건설과 관련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폭리를 취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폭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저런 감사를 통해 잘 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돈 좀 남기는’ 차원을 훨씬 넘어섰고, 그 폭리를 ‘부당하게 쓰지는 않는다’고 자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가 정말로 문제로 삼아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국가 감사를 받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 당연한 것이고, 이윤을 부당하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폭리’ 자체이다. 토지공사나 주택공사와 같은 국가 기관이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폭리’를 취할 수 있는가? 이런 공사를 그냥 둬야 하나? 없애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야말로 ‘지상의 방 한 칸’을 위해 국민의 절반을 넘는 사람들이 인생을 저당잡혀야 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이다. 이것이 과연 좋은 사회인가? 아니,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과연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지금 사람들은 말한다. 아파트를 지었다 하면 무조건 엄청난 돈을 번다고. 심지어 ‘종이 기업’을 만들어서 아파트가 들어설 택지를 분양받았다가 바로 되파는 것으로도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까지도 벌 수 있다고. 아파트 건설이야말로 ‘로또’인 것이다. 다만 이 ‘로또’는 일반 ‘로또’와 달리 일부 계층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 일부 계층을 위해 대다수 국민이 그야말로 피와 땀을 흘려 번 돈을 고스란히 가져다 바쳐야 한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모든 아파트에 대해 원가연동제를 실시해야 한다. 이것은 원유값의 등락에 따라 석유값의 등락이 결정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실을 감안한다면, 주택공사의 아파트만이라도 전면적인 원가연동제를 실시해야 한다. 그것도 정말로 어렵다면, 25.7평에 대해서는 정부가 제안한 대로 원가연동제를 실시하고, 더 큰 평수에 대해서는 분양원가라고 공개해야 한다. 소비자가 가격이라도 제대로 알고 물건을 사야 하지 않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반대는 한나라당의 분양원가 공개 당론에 대한 반대의 뜻이 담겨 있는 듯하다. 사실 한나라당은 분양가의 하락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분양원가의 공개가 기업의 투명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분양원가의 공개를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소신’은 잘못이다. 먼저 이렇게 중요한 국민적 사안에 대해 ‘소신’을 들먹인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이것은 개인적 ‘소신’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 정책의 문제이다. 대통령의 ‘소신’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합리적 정책의 차원에서 잘못되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사회가 아직도 대통령의 ‘소신’에 좌우되는 독재 사회인가?

또한 왜 열린우리당이 대통령의 ‘소신’에 좌우되어야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기껏해야 한달에 200만원씩 당비를 내는 ‘수석 당원’일 뿐이다. 대통령의 ‘소신’을 잘못 읽어서 열린우리당이 잘못된 당론을 제시했다는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소신’과 상관없이 자신이 제시한 당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게 자신의 ‘소신’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성해야 한다. 아파트가 엄청나게 늘어났으나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이 역설적 결과에 대해 정말로 깊이 반성해야 한다. 물론 이 역설적 결과는 그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역설적 결과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 뿐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모든 의원들이 이에 관한 중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역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 국정의 수반으로서 정말로 깊이 반성하기를 바란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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