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5-05-05   688

<안국동窓> 애 낳기 무서운 사회의 어린이날

1923년 5월 1일에 소파 방정환을 비롯한 몇몇 선각자들이 어린이날을 공포했다. 이들의 활동을 후원한 것은 당시 조선에서 가장 개혁적인 종교였던 천도교였다. 소파 방정환은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사위로서 천도교 민족운동의 연장선에서 어린이운동을 펼쳤다. 이것은 ‘아이가 곧 한울님’이라는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했다. 운현궁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천도교 대교당의 담장 한켠에 ‘어린이운동의 발상지’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제의 중국침략과 뒤이은 2차대전의 개전과 함께 어린이날 행사는 금지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게 되었다. 1957년의 어린이날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선포되었고, 1970년에는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제정되었다. 이에 비해 어버이날은 1956년에 국무회의에서 어머니날을 정한 것으로 시작되어 1973년에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꿔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꽤 일찍부터 나타났고, 그것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어린이’라는 말 자체가 커다란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어린 사람’을 뜻하는 존대어로 만들어졌다. 늙은이가 비칭인 것과 달리 어린이는 존칭인 것이다. 소파 방정환을 비롯한 초기의 어린이운동가들은 어린이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 말을 만들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우리가 정말로 되새겨야 할 것은 아마도 이러한 어린이라는 말 자체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일 것이다. 그것은 어린이를 제대로 보호하되, 또한 어엿한 주체로 여겨야 한다는 요청으로 줄일 수 있다. 어린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어린이를 어른이 마음대로 하대하고 홀대하고 조종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이 때문에 머지 않아 노동력 부족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닥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미 인구정책의 방향은 출산억제에서 출산장려로 바뀌었다. 정관수술을 받으면 민방위훈련을 빼 주던 것이 불과 10년 전이요, 자궁암을 진단해 준다며 소파수술을 강권하던 것이 불과 20년 전이다. 박정희 정권의 최고 치적으로 선전되던 출산억제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것이었는가가 이렇듯 확인되고 있다. 물론 출산억제정책 때문에만 출산율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박정희의 폭압적 근대화를 통해 확립된 ‘애 낳기 무서운 사회’의 구조다.

정부는 출산장려금과 학비보조금의 지급을 주내용으로 하는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자체와 여러 기관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은 너무 미미해서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지자체의 출산장려금 지급에 대해서는 최근에 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내려졌고,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획기적인 출산장려정책도 사실은 직원의 복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예로 든 세 주체에서 지급하는 돈의 액수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으로 나름대로 큰 차이가 있지만, 사실 아이들을 낳고 싶은 대로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애 낳기 무서운 사회’는 무엇보다 학벌사회의 산물이다. 이 나라에서 제대로 대접받으며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대학을 나와야 하고, 그것도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일류 대학을 나와야 한다. 이 때문에 이 나라의 어린이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공부경쟁’에 휘말리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이러한 학벌사회는 박정희와 재벌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학력경쟁과 학벌경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인재를 양성했고, 재벌은 여기에 철저히 부응해서 학력과 학벌에 따른 보상체계를 확립했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와 재벌은 한국 사회를 자식의 교육을 위해 부모의 인생 전부를 저당잡혀야 하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학벌사회로 만들었다. 예컨대 2004년에 교육 예산(일반?특별회계 포함) 4조 6천억원의 3.5배에 이르는 16조원 정도가 사교육비로 지출되었다. 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부모들이 잔업을 하고, 부업을 하고, 심지어 도둑질도 한다.

지나친 공부경쟁과 사교육비의 지출만이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학교는 폭력에 찌들어 있기도 하다. 최근에 일진회 등의 학생폭력이 다시 큰 문제로 떠올랐지만, 사실 더 심각한 것은 교사폭력이다.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교사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나아가 학부모들은 ‘촌지’라는 이름의 ‘뇌물’과 ‘봉사’라는 이름의 ‘부역’에 대해서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심지어 경북도교육청의 도승회 교육감은 교육청의 뇌물문제를 다루는 한국방송 ‘추적 60분’의 인터뷰에서 놀랍게도 뇌물을 챙긴 교육 공무원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헷세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다룬 <싯다르타>라는 소설에서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괴로움을 자식이 없는 편안함보다 더 귀하다고 했다. 그러나 경쟁과 폭력과 뇌물로 얼룩진 우리의 학교를 보노라면, 헷세도 생각을 바꾸게 되지 않을까?

이 나라의 어린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학벌사회의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이어지는 정규 학제의 차원에서 학벌사회의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이미 엄마 뱃속에서부터 공부하지 않으면 결국 경쟁에서 지게 된다는 경고성 광고가 매체마다 넘쳐난다. 애를 낳고 기르는 데 드는 돈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도 맞벌이는 필수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도 각종 보육시설이나 유치원이 필수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일부 사립 유치원의 원비는 심지어 국립대학의 등록금보다도 비싸게 되었다. 이렇게 무서운 상황을 몇 푼의 장려금이니 보조금 따위로 과연 개선할 수 있을까?

다른 문제도 있다. 최근에 소비자시민모임이 어린이날을 맞아서 한국생활환경시험연구원과 한국의료시험연구원에 의뢰해서 대형할인매장에서 팔고 있는 놀이방매트 5종, 어린이옷 7종, 장난감 11종에 대해 성분분석을 했다. 5월 1일에 발표된 그 결과에 따르면, 놀이방매트에서는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 옷에서는 포름알데히드, 장난감에서는 디부틸프탈레이트 등의 환경호르몬 물질들이 검출되었다. 환경호르몬이란 생물체 내에서 호르몬과 같이 작용하는 화학물질로서 정상발육을 저해하고 생식기능에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물질로부터 어린이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안전기준이나 안전대책은 아직까지 수립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반생태적인 길로 치달은 성장제일주의의 공업사회라는 점에서도 이 사회는 애 낳기 무서운 사회인 것이다.

애를 낳아 기르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다. 헷세의 말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 이 사회에서는 애를 낳아 기르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너무나 어렵고 심지어 무서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노동력의 대폭적인 감소라는 초유의 상황을 앞두게 되었다. 그러나 몇 푼의 장려금을 지급하거나 어린이날 행사를 요란하게 여는 것으로는 이 상황을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를 전쟁터로 만드는 학벌사회와 반생태적 공업사회를 두 축으로 하는 ‘애 낳기 무서운 사회’의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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