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5-05-17   486

<안국동窓> 그들의 눈물

밤 늦은 시간, 아무 생각없이 TV 브라운관을 멍청히 바라볼 때가 있다. 감당키 어려운 일을 붙들고 하루종일 씨름했건만 해결은커녕 기운만 소진한 날이거나, 그 피곤을 잊어볼 요량으로 술이라도 마신 날이다. 이런 날 TV는 뭔가를 보기 위해 틀어놓은 것이 아니다. 옷을 갈아입거나 세수를 하는 수준의 최소한의 행위조차 할 의지가 생기지 않아 무작정 틀어놓은 것이다. 채널을 고정한 채 그냥 물끄러미 화면만 바라볼 뿐, 무슨 프로그램이 나오든 무의미하다.

그러나 이렇게 무기력한 상황에서도 나로 하여금 채널을 바꾸거나 아예 TV를 끄도록 움직이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병원24시>와 같이 불치병을 겪거나 그 가족을 다룬 논픽션다큐멘터리류다. 뇌경색으로 수개월째 식물 인간 상태인 남편이 무작정 깨어나길 기다리며 침상을 떠나지 못하는 아내의 이야기, 온갖 검사를 다 해도 병명을 알지 못한 채 구토를 반복하며 주사액에 의지해야 하는 아이를 둔 엄마의 이야기… 생면부지의 사람들, 그것도 공중파를 통해 자그만 브라운관을 지나 전해졌을지라도, 그들의 눈물과 고통은 너무도 생생하다. 아무런 가공없이 전해지는 사실이란 얼마나 혹독한가.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것조차 견디지 못해 번번히 채널을 돌리고 만다.

그런데 오늘 나는 외면하고 싶은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것도 브라운관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무작정 사무실로 찾아온 한 노동자, 그는 울산건설플랜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원이다. 세간의 호칭으로 하자면 ‘노가다’,’막노동꾼’이다.

‘4월 30일부터 단식을 하며 고공농성을 하는 동료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참여연대 사무실을 찾아온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울분을 터뜨렸다. 얼마전 폭우에 농성 중인 동료들에게 비옷을 전해주려 했는데, 이마저 막은 경찰에 대한 울분이었다.

울산건설플랜트 노조는 울산석유 화학단지와 온산공단 등의 건설현장에서 배관, 용접, 비계, 제관, 기계, 건축, 토목, 취부, 탱크, 도장 등을 하는 비정규직 건설 노동자 1500여 명이 결성한 지역건설노동조합이다.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렇게 노조를 만드는 일은 흔치 않아 자세히 물었더니, 여수나 광양 그리고 포항 등에서는 이미 노조가 조직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울산건설플랜트 노조는 지난 해부터 사용주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해 왔는데 사측이 계속 거부하자 지난 달 18일부터 파업 중이며, 조합원 중 일부는 울산SK정유탑과 마포SK타워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다단계악덕하청 금지”, “8시간 노동준수”, “안전시설 안전관리”, “사용자는 교섭에 나와라”는 요구를 내걸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 상황을 다룬 며칠 전 기사를 떠올리며 그에게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한장의 홍보물을 내밀었다.

새벽밥 먹고 현장에 와서 옷 갈아입을 장소가 없어

도로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쇳가루 시멘트 가루 날리는 낙장에서 비가 쏟아져도

피할 곳이 없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이런 현실,

내 돈 주고 먹는 도시락 모랫바람 없이 한번 먹어보자는 것이 무슨 죄입니까.

화장실 한번 당당하게 가보자는 것입니다.

먼지 구덩이 쇳가루라도 털고 퇴근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땀에 흠뻑 쩔어도 손 씻을 세면장, 샤워장 하나 없는게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오늘의 현실입니다.

파업하며 안 운 날이 없습니다.

울고 또 울어도 눈물이 납니다.

그야말로 피눈물이 납니다.

문득 공사장 옆을 지나며 느꼈던 잦은 불쾌감이 떠올랐다. 길가는 행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던 노동자들에 대한 불만이었다. 내 눈 돌릴 곳이 마땅치 않아 불쾌하기만 했을 뿐 ‘그들이 왜 길가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는지’는 의문을 던지지 않았던 것도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탈의실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손에 든 홍보물은 ‘우리나라 굴지의 대형 건설회사의 공사현장에도 탈의실은 없다’며 이들의 처한 상황을 외치고 있었다.

그는 옷 갈아입을 때만 인간대접을 못 받는게 아니라고 했다. 식당이 없어 밥 먹을 때도 노상에서 먹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고 심지어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에 밥을 말아먹을 때도 있다고 했다. 쇳가루와 발암물질인 석면 등 유해 물질이 가득한 공사현장에서 쪽잠을 잘 때면 이러다가 오래 못가겠다는 푸념이 절로 난다고 했다.

“밥은 식당에서 먹고, 쪽잠은 휴게실에서 자면서 화장실 정도는 맘 편히 다녀올 수 있는 작업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의 호소가 그렇게 무리한 것인가. 먹먹해지는 마음과 뜨거워지는 눈시울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없어, 서둘러 지금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요구사항은 매우 상식적인데 왜 이렇게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을까.

그는 “현재 노조는 집단 교섭을 요청하고 있는데, 사용주들은 개별교섭을 하겠다며 버티는 상황”이라고 했다. 개별교섭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조심스레 묻자 그는 단호하게 답한다. 사용주들의 개별 교섭 주장은 교섭지연작전에 불과하며, 집단교섭 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개별 교섭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현실성이 없는 방식이라고 덧붙인다.

건설 노동자들은 모두 단기 고용을 반복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건설현장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달 동안 일하는 조건에 놓인 이들이다. (나중에 몇가지 자료를 찾아보니 이들은 일용직으로 불리움에도 불구하고 평균 근속기간이 13년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순직종의 경우도 근속년수가 9년이 넘는다.) 개별 회사 차원에서 노사 교섭에 들어간다해도 사측이 교섭을 지체하거나 해태하면 어렵게 시작한 노사교섭은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즉 교섭을 시작해도 공사가 끝나면 교섭의 당사자인 노동자가 다른 건설현장으로 가게 되니 이런 현실을 악용하여 사용주는 공사가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가, 교섭대상에서 빠져나가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노조의 조합원이라도 이를 공개하지 못한다. 노조원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그 지역의 사용주들끼리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아예 고용을 거부하는 실정이라 ‘아예 그 지역 공사판을 떠날 각오’가 아니라면 조합원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없는 것이 이들의 처지다.

이런 현실 때문에 건설 노동자들은 ‘공사기간이 만료된 다음에라도 그 단체협상을 지속할 수 있고, 협상 효력을 발휘하게 되도록’ 개별교섭이 아닌 집단교섭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래야 건설현장을 전전하는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근로조건이라도 만들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현행법도 이같은 건설노동자의 특수성을 인정해 초기업단위노조의 단체교섭을 허용하고 있고 지역 내에서 그 효력이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인간적인 근로조건’조차 ‘정치적 이념에 조종되고 있는 불법파업’으로 매도되는 것이 2005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SK, 삼성정밀화학 등의 원청회사와 전문건설업체 사용주들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대체고용을 통해 현재 생존권을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의 절규를 묵살하고 있으며, 교섭방식의 차이를 빌미로 1500여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사투와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방치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노동자라는 말조차 어색해하는 이들에게 빨갱이라는 덫칠을 하고 언론에 호화농성 등의 허위 날조기사를 제공하며 온갖 저열한 수단을 동원해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탄압을 일삼고 있다.

그가 ‘근로기준법’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스스로 몸을 불사른 한 사람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한 해가 1970년이다. 2005년 우리는 같은 외침을 듣고 있다. 그가 “근로기준법이 우리같은 건설일용노동자들한테는 왜 적용되지 않느냐”며 “하루 8시간 노동 준수, 식당, 휴게실, 세면장 설치, 주월차 수당 지급, 유급휴일 보장” 등을 말할 때 나는 우리사회의 야만에 몸서리칠 수 밖에 없다.

하루 밥벌이 아니 수십일의 밥벌이를 포기한 채, 투쟁에 지쳐가지만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겠다는 그의 다짐에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들이 그동안 겪었던 고통에 대한 슬픔과 사용주와 공권력에 대한 분노만 가득할 뿐 뭐라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그가 쏟아내는 사실조차 제대로 듣기 힘든 무력감에 너나없이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드냐고 묻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는 “동료들의 타워 고공농성 때문에 공사 현장의 재건축조합원, 현장 노동자, 상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같은 사람들끼리 서로 욕하는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말한 뒤 사무실을 떠났다.

아직 여름은 저만치 멀리 있는데도 수십일째 거리투쟁으로 새까맣게 탄 그들의 모습을 언제쯤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을까. 그때야 비로소 사실과 직면할 용기가 생길텐데 말이다. 그래야 다시 야만의 세월과 싸워갈 의지도 싹틀텐데 말이다.

먼저 나는 그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실과 직면한다는 것은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면, 그 고통을 나누는 것부터가 지금 우리의 몫이 아닐까.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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