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우리 아이가 갈 곳은… ①] 국공립 보육시설 5%뿐

‘생길이’ 엄마의 전쟁, 강남 엄마의 선택

최근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육아 개념의 변화에 따라 아동 육아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 보육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설 보육 기관은 비싸고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이에 참여연대를 포함해 전국 1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참여자치운동연대>와 <오마이뉴스>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아이가 갈 곳은…’이라는 제목의 공동기획을 진행합니다. 편집자주

‘생길이’ 엄마의 고민

남연주(가명, 34)씨는 서울 송파구의 한 구립 어린이집에서 ‘생길이’ 엄마로 통한다. 아직 딸 수연(가명, 3)이가 태어나지 않은 임신 7개월 째인 2003년 4월 구립 어린이집 입학 예비자 명단에 등록을 하면서부터다. 아이도 없고 이름도 없던 때라 ‘곧 생길 아이’의 줄임 말인 ‘생길이’로 등록했던 것이다. 3살 된 수연이는 여전히 ‘생길이’로 불릴 때가 종종 있다.
▲ 성북구의 국공립 보육시설인 솔셈어린이집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다. ⓒ2005 박상규

이런 ‘정성’까지 보였지만 수연이가 구립 어린이집에 들어간 건 올해 2월의 일이다. 2년을 대기자 명단에서 기다린 결과다. 수연이 보다 앞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1백여 명이 넘었던 걸 감안하면 큰 행운이다. 남씨는 다른 엄마들 사이에서 “로또복권 당첨자”로 통한다. 그만큼 국공립 보육시설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남씨가 국공립 어린이집을 고집한 건 저렴한 비용과 신뢰 때문이다. 맞벌이 남씨 부부는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퇴근 시간도 일정하지 않아 수연이를 사립 어린이집 종일제에 맡겼다. 월 20만원이었지만 각종 잡부금을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 물론 아이에게 질 좋은 보육 혜택이 돌아가면 비용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공립 시설보다 교육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연이가 구립 어린이집으로 옮긴 후 비용은 30%이상 감소했다. 월 15만원이면 아이를 맡길 수 있다. 시설과 위생 상태도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 수연이가 마음에 들어했고, 보육교사들도 친절했다. 남씨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고민이 많다.

가정도 소중하지만 남씨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 남씨는 아무리 늦어도 저녁 7시가 되면 어린이집에 들러 수연이를 찾아와야 한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 귀가는 대부분 남씨의 몫이다. 다른 남자 사원들이 회사에서 늦게 남아 능력을 발휘할 때 남씨는 오후 6시면 무조건 퇴근이다.

남씨는 “아이 때문에 사회에서 뒤처진다고 느낄 때면 왠지 매정한 엄마이고 큰 죄인이 된 느낌”이라며 “하루하루 독립운동 하는 기분으로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운다”고 토로했다. 남씨의 소망은 “자신의 죄를 국가와 사회가 나눠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남 엄마의 어쩔 수 없는 선택, ‘유치원비 100만원’

권정은(가명, 33)씨는 지난 3월 양천구 목동에서 강남구 신사동으로 이사를 했다. 직장이 가까운 이유도 있었지만 아이 보육문제 때문이다. 권씨는 처음에 딸 보민(가명, 4)이를 직접 보살폈다. 나름의 교육 철학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땐 장애가 됐다.

다른 부모들이 ‘생길이’ 시절부터 구립 어린이집에 등록한 것에 비해 권씨는 1년이나 늦었다. 몇 개의 국공립 어린이집에 등록했지만 3년이 되도록 “당첨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권씨는 직장으로 복귀했고, 아이는 사립 어린이집에 다녔다.

권씨는 오랜 고심 끝에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강남 엄마’가 됐다. 월 학원비만 68만원이고 여러 부대 비용까지 합치면 월 100만원을 호가한다. 이 자리도 3개월 동안의 기다림과 노력 끝에 차지한 것이다.

권씨는 남편과 맞벌이로 월 45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수입 중 3분의 1을 아이 보육비로 쓰고 있는 것이다. 권씨는 “국공립이 아닐 바에는 좋은 시설의 사립에 보내고 싶었다”며 “부유층이 아니면서 영어유치원에 보낸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권씨는 “둘째 아이를 갖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공립 보육시설 5.0%…”출산 증가 기대 어려워”

▲ 오후 5시가 지나면 일을 마친 부모들이 아이들을 찾으로 오기 시작한다.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2005 박상규

이런 남씨와 권씨처럼 많은 부모들은 국공립 보육시설을 원한다. 적은 비용에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만족할 만한 사립 보육시설도 많지만 가격과 교육 내용이 천차만별이라 선택이 쉽지 않다. 국공립 보육교사들의 79.7%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사립은 56.2%에 불과하다는 점도 부모들이 사립을 꺼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공립 보육시설 비율은 2004년 기준 5.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사립 보육기관이다. 국공립 시설이 없는 전국의 읍·면·동 지역도 490곳이나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공립 보육시설마다 ‘생길이’를 비롯한 200~300명의 아이들이 몇 년씩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국공립 보육시설 대기자 비율은 전체 아동의 73.0% 이르고 있다.

최성지 여성부 보육정책과장은 “올해부터 국공립보육시설을 해마다 400개씩 확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민간 보육시설 이용률이 78.8%에 불과한 상황에서 시설 과잉 공급이라는 지적도 있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 확대와 가정의 육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국공립 보육시설과 병설 유치원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출산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공립 보육교사 10년 경력, 임금은 170만원 대

관계자들 “임금 현실화 필요”

성북구 정릉4동에 위치한 솔셈어린이집은 국공립보육시설이다. 이곳엔 9명의 보육교사들이 111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여기에 아이들의 식사와 간식을 담당하는 교사 2명이 더 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출근시간에 맞춰 아침 7시 30분부터 어린이집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면 아이들을 찾으러 오는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평균 12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것이다. 부모 사정상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24시간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5명이다.

보육교사들의 근무시간은 아이들의 생활에 맞춰져 있다. 이곳 보육교사들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12시간이다. 24시간 돌봐야 하는 아이가 있는 만큼 야간 근무자도 따로 있다. 보육교사 3년 차 김미희씨의 월급은 138만원이다. 10년의 경력을 가지게 되면 170만원 정도를 받는다.

양승임 솔셈어린이집 원장은 “교사들의 임금은 어쩔 수 없이 보육서비스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며 “양질의 아동 보호와 교육을 위해서 보육교사들의 임금을 현실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남희 전교조 유치원위원장도 “교사에게 적정 보수와 근무조건을 제공하여 아이들의 보호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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