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12-01   1622

[기획3] 생태위기 시대의 녹색복지국가 비전과 전략

기획3 : 생태위기 시대의 녹색복지국가 비전과 전략

이창곤 <한겨레> 선임기자1)

 

복지는 사회적 위험에 맞서 시민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덴마크 출신의 복지국가 연구자인 에스핑 안데르센은 사회적 위험을 크게 셋으로 구분했다. 어릴 때부터 청장년을 거쳐 노인이 될 때까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병과 실업, 노령 등 ‘생애주기 위험’, 사회계층 사이 부의 불균등한 분배를 뜻하는 ‘계급 위험’, 그리고 세대를 넘어 상속되는 불이익 등 ‘세대 간 위험’이다. 그는 사회정책의 우선적 목표는 이런 사회적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는 데 있으며, 복지국가는 사회정책을 통해 사회적 위험에서 시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국가체제라고 여겼다. 

 

대전환 시대의 메가톤급 사회적 위험

자본주의 초기, 산업사회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위험은 궁핍이었다. 영국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마련한 윌리엄 베버리지는 이 궁핍의 원인은 실업, 질병, 노령, 사망 등에 따른 소득중단이라고 진단했다. 그리하여 사회보장의 가장 핵심적 목표는 궁핍의 해소에 있다고 결론짓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과 가족수당 등 포괄적인 사회보장체계를 도입할 것을 제시했다. 베버리지 보고서(사회보험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보고서)의 핵심적 내용이다. 

초기의 전통적 복지국가는 실제 전통적 산업사회에서 궁핍을 일으키는 노령, 질병, 실업, 산재 등속의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사회복지프로그램을 제도화해 발전시켰다(윤홍식 외, 2019). 사회적 위험은 시대와 환경의 변화로 변형되거나 새롭게 창출된다. 이에 조응해 사회정책 기능과 복지국가 역할도 변형 또는 확장됐음은 물론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자본주의 경제사회구조와 인구구조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전통적 복지국가의 소득보장프로그램이 포괄하지 못하는 이른바 ‘신사회적 위험’이 대두했다. 노동 빈곤, 한부모, 일과 가정생활의 부조화 및 돌봄 수요 증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로 인한 돌봄 부재 등은 이전과 다른 사회적 위험이었다. 이들 위험은 특히 저소득층이나 노동빈곤층, 그리고 청년, 여성, 인종적 소수자 등을 더 깊은 삶의 불안정과 고통 속으로 밀어붙였다. 복지국가는 이들 위험에 맞서 일과 가정의 양립, 교육과 직업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대응하는 한편, 보육과 돌봄의 욕구에 조응해 다양한 사회서비스 정책과 새로운 소득지원 정책 및 가족 지원 정책을 도입했다. 이렇듯 전통적 복지국가는 사회서비스형 혹은 사회투자형 복지국가로 나아갔다. 

1980년대 전후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어 닥쳐 한동안 ‘작은 정부 큰 시장’이 기승을 부리면서 복지국가 위기론이나 복지국가 구조조정이 잇따라 나타나면서 이름하여 ‘신자유주의 시대’가 오래 이어졌다. 이 시기 복지 축소가 이뤄지고, 복지국가의 디딤돌인 복지정치 역량이 약화했다. 그 결과는 경제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복지 불균형으로 귀결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복지국가는 다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잇따른 경제위기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질긴 생명력을 보이던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그 자리를 다시 큰 정부와 국가가 귀환했다. 역사적 유물로 치부된 케인스주의가 다시 소환되기도 한다. 이는 실상 대격변의 일각일 뿐이다. 

바야흐로 윌리엄 베버리지가 상상할 수 없었고, 에스핑 안데르센도 접하지 못한 메가톤급 대형 위험이 동시다발적으로 도래하는 ‘대형 복합위험’의 시대가 다가왔다.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위기, 산업과 노동시장에 대변동을 강제하는 디지털 전환, 이에 따라 가속화하는 불평등, 그리고 지구촌에 전대미문의 죽음의 행렬을 불러온 감염병 대유행 등이 중층적으로 강타하고 있는 ‘복합위험’이란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이를 ‘대전환’의 시대라고 부른다.

대전환 시대의 주목할 변화 중 하나는 디지털 전환이다. 디지털 전환은 플랫폼경제 등 새로운 디지털 경제를 출현시키는 한편, 가뜩이나 신자유주의가 강제한 유연한 노동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끔 한다. 사회정책학자들이 특히 주목할 요소는 산업의 자동화 확산에 따라 노동자들의 지위를 더욱 극단적으로 불안정하게 하고 있는 ‘어두운 노동’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파견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정규직은 물론 생산직, 사무직 노동자와 자영업자까지 큰 생채기를 입었다. 사회보장제도는 이들에게 충분한 안전망이 되지 못했다.

경제위기는 복지국가 형성 이후에도 시민의 삶을 반복적으로 불안의 덫에 빠뜨려온 요소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이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경제는 부침을 거듭하던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상시적인 저성장 경제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 경제체제는 복지국가의 지속 가능한 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1인 가구의 급증 또한 사회보장제도와 직결되는 놓칠 수 없는 변화다. 1인 가구의 급증은 가족이 더는 보호망이 되기 어렵다는 걸 뜻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그 속도가 매우 가팔랐다. 2017년 통계청의 장래가구특별추계를 보면, 전체 가구 가운데 1인 가구 비중이 2017년 28.5%(558만 가구)에 이르렀다. 2047년에는 37.3%(832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세대별로 보면 30대 이하의 비중이 35.6%(199만 가구)이고, 65세 이상 가구 비중은 24.1%(134만 7천 가구)로 나타나 1인 가구의 60% 이상이 청년과 노인 세대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도전과 위험들을 무색케 하는 가장 큰 메가톤급 위험은 무엇보다 생태위기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상실이란 이중의 위기를 가리키는 생태위기는 “대전환 시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질학자들은 ‘인류세’라는 개념을 통해 이 생태위기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인류세는 생태위기의 원인이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에 따른 개념이다. 산업혁명 이래 인간이 몇 세기 동안 벌인 활동으로 자연생태계가 파괴돼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지질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다. 

인류세의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기후변화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초대형 산불, 독일 등 유럽의 홍수 등 잇따른 기상재난은 기후변화의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다. 이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 체제인 탄소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결과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실제 기후변화는 기상재난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감염병, 범죄, 전쟁, 아동발달, 농어업, 경제 등 인간사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지구 고온화의 주범은 화석연료에 따른 온실가스다. 기후학자들은 이미 지구환경이 비상상황이라고 진단한다. 기온이 1도 올라간다는 건 극한 기상이변 빈도가 급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1.5도 오르면 식량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2도 이상 상승은 ‘찜질방 지구’를 떠올리면 되는데 사망률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환경부가 2020년 7월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이런 지구적 현상을 한반도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보면, 1880~2012년 지구의 평균 지표 온도는 0.8도 올랐지만, 1912~2017년 한국에선 약 1.8도 올랐다. 기온 상승 속도가 지구 전체보다 2배 이상 가파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대로라면 21세기 말에는 한반도의 연중 폭염 일수가 현재 10.1일에서 3.5배 늘어난 35.5일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기후변화는 “자연적 변화”이면서도 현실에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의 총집결 장소와 같은 현상(조효제, 2020)”이다. 따라서 인류가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으로 코로나19를 종식한다고 해도, 기후변화가 지속하는 한 제2, 제3의 코로나 역습은 언제든, 그것도 더 세고 더 빈번히 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이렇듯 기후변화는 인류 전체의 절대적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생태위기의 피해는 이상기후로 다가오지만 현실에선 지극히 ‘사회적인 것’으로 전개된다. 기상이변을 불러와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특히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일으키는 재난의 불평등을 낳는다. 낡은 주택에 사는 사람, 해안이나 산사태 위험 지역에 사는 사람, 화훼 농민, 임업인, 양식 어민, 그리고 노인과 임산부,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피해는 회복불가능할 지경으로 파괴적이란 점에서 여타 위험과 질적으로 다른 층위의 위험이다.

이런 상황은 복지와 사회정책, 나아가 복지국가 개념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강제한다. 복지국가와 사회정책은 오늘날 지구촌 공동체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생태와 복지의 새로운 재구성: 녹색복지국가 비전

지구고온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다량배출해 온 악당국가는 근년의 중국을 제외하면 대체로 서구 선진국이다. 이들 복지국가는 흔히 사회복지지출이 높다. 그런데 윤홍식(2021) 인하대 교수에 따르면 복지지출이 높다고 해서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은 건 아니며,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것과 복지국가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결과는 복지국가와 기후위기의 상관성이 높지 않다는 뜻이며, 또한 기존의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인류 공동체와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위기 시대의 복합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복지국가 또는 다른 방식의 정책적 대응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윤 교수는 그래서 “그 복지국가를 넘어 현대적으로 다시 만든 새로운 복지국가(Neo-Welfare State)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그 복지국가’는 탄소자본주의의 산물인 현 복지체제를 가리킨다. 

녹색복지국가는 “기후위기를 발생시키는 경제에 의존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지구 생태를 복원하고 지킬 수 있는 경제와 함께 하는 국가(윤홍식, 2021)”여야 한다. 나아가 지구고온화의 주범인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열, 풍력 등 지구환경에서 순환 가능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리키는 녹색전환을 이끄는 복지국가여야 한다. 

필자는 이를 ‘녹색복지국가’라고 지칭한다. 녹색복지국가는 급변하는 경제사회질서 속에서 국민들의 기초적인 삶을 보장하는 한편 소수의 성장보다는 모두의 번영을 이룩하고, 인류는 물론 지구촌에 삶의 터를 둔 뭇 생명이 함께 누리는 공존을 지향하는 국가다. 기존 복지국가의 재구조화이되, 생태위기란 인류 생존의 근원적 위기를 타개하는 녹색전환을 지향하는 국가다. 

녹색복지국가는 생태위기 시대의 새로운 복지국가 비전이다. 복지가 지향해온 기본적 가치를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지국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즉,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인간은 신분이나 직업, 경제 상태나 신체적 조건, 경도된 사상, 출신 지역이나 민속, 피부색, 성별, 연령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차별받거나 인간성이 부정되어선 안된다는 가치”를 이상으로 한다.(박광준, 2002) 

역사적으로 복지국가의 초기 지도 원리는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국민생활최저선 확보(National Minimum)였다. 오늘날에는 이 가치의 실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생존과 생계를 넘어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기준”(김연명, 2020)으로 레벨업되어야 한다.

이 밖에도 녹색복지국가는 이밖에도 복지가 지향해온 평등의 가치, 즉 “사회적 자원이 경제적 능력에 따라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도에 따라 배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형평의 가치, 그리고 사회복지는 단순히 소모적인 비용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투자이며, 사회보장제도의 기반인 성장의 토대라는 사회투자적인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지국가가 추구해온 이상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생태위기 시대의 복지비전인 녹색복지국가는 기존 복지국가가 추구한 복지의 기본 가치의 보장에 더해 그 가치가 오직 인간만을 향해 있지 않다. 예컨대, 복지국가의 기본적 가치인 존엄성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도 있다는 생각에서 인간과 뭇 생명의 호혜적 공존을 지향한다. 녹색복지국가는 하여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기초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전환”이며, 또한 “사회기술적 변화로 추동되는 좁은 의미의 전이(translation)를 넘어서는 개념”(환경부, 2019)이다. 

녹색복지국가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산업적 경제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그린 뉴딜이나 녹색성장, 경제의 녹색화 등류의 기존 개념에 비해 매우 포괄적인 비전이다.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기존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띠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간-자연 관계에 조응하는 생존의 정치, 인간종의 범위를 넘어서 더 포괄적인 다종 집합체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프로젝트”로서 궁극에는 녹색전환의 길(최병두, 2020)을 지향한다. 탈탄소사회는 녹색복지국가의 궁극

적 도달점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경제체제의 광범위하고 전면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인간의 생존을 존중하면서 자연과의 상생관계 속에서 지키고자 하는 생태적 가치, 즉 생명가치”를 바탕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복지체제가 바로 녹색복지국가인 것이다. 

녹색복지국가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속도는 느리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하고 끝내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지구 역사상 이전에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이 메카톤급 대형 위험에 맞서는 생존의 길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녹색복지국가는 인간의 존엄성과 형평성, 사회연대의 가치를 추구해온 복지국가의 오랜 이상을 따르는 동시에 자연과의 호혜적 공존을 지향해 생태적 가치를 이루는 생태위기 시대의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다. 

 

녹색복지국가의 실현 전략: 생태사회정책

무릇 어떠한 비전이나 구상도 ‘선언’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녹색복지국가 비전의 실현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히 복지에 돈을 더 많이 쓴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 역사적 진전이었지만 그동안의 복지와 복지국가 발전은 인간의 물질적 안정과 풍요를 가져오는 데 나름의 구실을 했으나 때로는 자연을 파괴한 “생태적 착취의 결과”(홍성태, 2021)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태위기 시대의 복지와 복지국가 관점은 이제 달라야 한다. 분명 달라져야 한다. 녹색복지국가 비전은 “건강한 자연은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복지”란 인식에 기초한다. 즉, “더는 생태위기를 방치하고 특정 계층의 복지만 높일 수 없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정책을 부분적으로 실행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무늬만 그린뉴딜’ 전개로는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목표다.

녹색복지국가 비전은 무엇보다 기후위기 등 생태위기에 혁신적이고 전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2021년 10월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주요 국가의 소극적 모습은 생태위기에 대한 지구촌 대응의 한계와 문제를 여실히 보여줬다.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불행하게도 집단적인 정치적 의지는 모순을 극복하기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요 국가의 정상이 진전된 과제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녹색복지국가 비전은 산업과 경제 등 경제사회체제의 큰 전환 없이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녹색복지국가 실현은 기존 복지자본주의 체제의 일대 개혁을 동반해야 한다. 이는 녹색복지국가 실현 과정 앞에 엄청난 장벽이 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녹색복지국가 비전을 현실화하는 요체가 정치한 비전보다 “슬기롭고 다층적인 전략”이 강조되는 이유다.

녹색복지국가 전략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생태위기 시대의 복합위험에 대응해 시민의 기본권, 즉 사회권을 어떤 정책과 제도적 장치로 보장할 것인가란 물음의 답을 찾는 것이다. 사회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적절한 건강, 충분한 교육, 알맞은 주거, 쾌적한 환경 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를 적절히 보장해 삶의 안정을 이룬다는 뜻이다.

따라서 핵심은 사회정책의 새롭고도 전면적인 재구성에 있다.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기존 정책으로는 이룰 수 없음이 자명하다. 생태위기 시대의 복합위험을 극복하는, 경제사회체제 전환을 꾀하는 정책 프레임이어야 한다. 복지자본주의는 본디 그 내적 특성으로 불평등과 비복지를 낳는다. 이들을 제어하는 장치가 민주주의다. 영국 사회정책학자 토머스 험프리 마셜은 일찍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대립 속에서 시민의 안정된 삶을 사회권 보장으로 지킬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낙후된 사회정책을 개선하고 획기적으로 현대화해 시민 삶의 질을 크게 드높이는 것이 녹색복지국가 전략의 일차적 요체일 수밖에 없다. 녹색복지국가는 곧 보편적 복지국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화하고 보편적인 사회정책 전개만으로 생태위기 등 복합위험을 헤쳐나갈 수 없다. 앞서 강조한 기후위기 등 생태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사회정책이어야 한다. 즉, 인간의 권리와 시민 삶의 질을 신장하는 한편, 인간과 자연의 호혜적 공존이란 생태적 가치를 동시에 또렷이 담은 사회정책이어야 한다. 바로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사회정책이어야 한다. 이름하여 ‘생태사회정책’이다. 녹색복지국가의 핵심 전략은 바로 생태사회정책의 뚜렷한 전개다. 녹색복지국가 비전은 생태사회정책의 전개를 통해 비로소 바람직하고 지속 가능한 전환의 궤도에 오를 것이다. 이안 고프 영국 바스대학 교수는 이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에 따르면, 생태위기 시대의 사회정책은 복지와 지속가능성 모두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또한 안전한 기후와 더 나은 복지의 시너지를 꾀하는 정책이다. 

이안 고프는 그 예로 가뭄, 홍수, 더위의 영향을 줄이는 것과 같은 기후조절 정책, 대기오염과 에너지 빈곤 감소를 실현하는 여러 친환경 정책, 나아가 녹색일자리 기회 확대와 고용의 안전장치 강화 정책 등을 든다. 이런 생태사회정책을 전개하기 위해 그는 ‘녹색 양적 완화’를 포함한 국가재정의 급진적인 개혁이 함께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생태사회정책은 “새로운 성장전략”이기도 하다. 그는 이를 “기후 스마트 포용성장 정책”이라고 지칭했다.

생태사회정책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정책 꾸러미’(Policy Package) 형태일 것이다. 다양한 정책 간의 융합적 전개, 즉 ‘정책 매트릭스’(Policy Matrix)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도 최근 필자와의 대화에서 “오늘날 환경문제 해결은 기존의 환경정책이란 좁은 틀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면서 “환경문제 해결은 이제 경제사회정책, 산업정책 등의 정책 융합을 통해 해결 지점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기후위기는 환경에서부터 보건, 경제, 산업 등 인간사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위험을 유발하고 있다. 

녹색복지국가는 지구촌 공동체가 함께 추구해야 하는 길이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경로와 전략은 나라마다 처한 경제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행위자와 시민사회 등의 역량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구체적인 우리 현실에 기반을 둔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생태사회정책 꾸러미와 로드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생태위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되, 두 발을 딛고 있는 ‘지금 여기’, 이 땅의 수많은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1) 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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