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06-20   1812

[심층분석] 국민건강보험의 발전과정과 보장성 확대 방안




국민건강보험의 발전과정과 보장성 확대 방안



김 창 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1. 들어가며


지난해인 2007년 건강보험 30주년을 맞이해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은 나름대로 성대한 행사를 열었다. 건강보험이 출범한지 한 세대가 지난 시점에서 되돌아보며 앞으로 건강보험의 발전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향후 건강보험 30년을 내다보며 어떤 발전전략을 가져야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부는 여러 연구를 추진했다.

올해는 건강보험이 새로운 새대를 열어가는 첫 해이다. 그러나 지금 건강보험이 처한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명박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민간보험 활성화 정책을 중심으로 고려하고 있는 반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개선은 재정적자를 우려하여 논의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해 연말과 올해초 ‘건강보험당연지정제’가 이슈로 떠오르며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이런 인터넷상의 여론은 ‘건강보험지키기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의료보장체계를 민간보험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해달라는 요구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 국민들에게 건강보험의 의미와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명박 정부는 건강보험의 확대를 위한 정책 방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재정관리의 필요성만 강조되고 있을 뿐, 보장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는 관심이 없다. 이 자리를 빌어 이명박 정부가 우리나라에서 점차 심해지고 있는 건강불평등을 극복하고 국민들 누구나 어떤 차별이나 걸림돌없이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 정책을 촉구한다.

이 글은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을 앞으로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정책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향후 접근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의 발전 과정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역사는 1977년 7월 1일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작하였지만, 전국민을 대상으로 본격 적용이 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1989년 이후 곧바로 건강보험 보장성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지 못한 아쉬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는 그야말로 건강보험 관리방식을 둘러싸고 단일보험자로 통합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 조합으로 나뉘는 다보험자방식으로 관리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에 대한 검토는 주변부로 밀려났다. 다만 단일보험자로 통합되는 것이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에 유리할 것이라는 주장이 통합론을 지지하는 세력들로부터 제기되었을 뿐, 건강보험 보장률을 평가하면서 어떻게 보장수준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국민의료보험 시대가 개막된 직후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국민을 위해 보장수준을 높이려는 시도는 당시 관리방식과 논의에서 뗄 수 없는 관계였으며, 관리방식의 개선이 전제되어야 보장성 개선을 위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 시기 동안 보험급여 확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시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받는 기간인 ‘요양급여일수’가 늘어난 것이다. 1984년 180일이었던 것이 매년 조금씩 늘어났는데 1995년 이후 매년 30일씩 늘어나 2000년 1월에 드디어 365일로 확대되었고, 2000년 7월 국민건강보험 체제가 출범하면서 요양급여일수 제한이 사라졌다. 또한 1996년 CT 급여화 등 일부 서비스에 대한 보험급여가 이루어졌다.

2000년 7월 단일보험자로 통합된 국민건강보험 체제가 출범했다. 이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 논의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한 듯 2000년초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을 위한 구체적 추진 방안을 검토한 연구보고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초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보장성 개선의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이었다. 의약분업 도입과 건강보험 통합 과정에서 수가가 급격히 인상되었고,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일부 조합의 무성의한 대응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적자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건강보험 재정적자는 예상보다 빠르게 극복되었지만,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건강보험 재정적자라는 암흑의 시기와도 같았다. 이 시기에는 건강보험 보장성이 오히려 후퇴되는 양상을 보였다. 스켈링, 신경차단술, 물리치료 등에 대한 보험급여가 축소되었고, 외래 본인부담금이 인상되는 등 건강보험 보장성은 후퇴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건강보험 적자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3년부터 1조원이 넘는 당기수지를 만들었으며, 2004년에는 1조 5천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당기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한편, 누적수지까지도 흑자로 돌아서게 했다. 이렇게 재정이 좋아진 것은 진료비 심사 강화, 약제비 절감, 본인부담 인상 등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한편, 보험료를 매년 7~9%씩 인상한 결과였다.

이렇듯 건강보험 흑자시대가 도래하면서 드디어 보장성 개선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실로 건강보험 30년 역사상 가장 보장성 개선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었던 시기가 열릴 수 있었다. 2004년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2005년에 1조 5천억원에 이르는 규모의 보장성 개선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던 일은 역사적인 것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3. 노무현 정부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 정책 평가


2005년부터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정책결정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건강보험 보장률이 개선되는 효과를 부분적으로 거두었다. 특히 입원이 두드러졌는데 2004년 54.9%에서 2006년 64.1%로 약 10% 포인트 가량 개선되었다. 외래에서는 2004년 56.9%에서 2006년 59.8%로 약 3% 포인트 개선된 것에 비하면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은 입원에서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특기할만한 주요한 보장성 개선 정책을 들자면, 우선 2004년 7월부터 시작된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 2005년 MRI 보험 급여화, 2005년 9월 암 환자 본인부담률 인하(10%), 2006년 만 6세 미만 입원아동 본인부담 면제, 2006년 6월 입원환자 식대 보험급여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에서는 그동안 건강보험 30년 역사속에서 볼 수 없었던 몇 가지 특징적인 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첫째,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비스 항목별로 급여확대를 추진하거나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방식으로만 한정되었지만, 2005년 이후 질병별로 우선순위를 정하여 접근하는 방식, 환자의 입장에서 의료비 부담이 큰 3대 비급여에 대한 개선을 통하여 실질적인 보장성 개선 효과를 추구하자는 방식, 비급여서비스를 일괄 보험급여화하고 보험급여율을 조정함으로써 단계적으로 보장수준을 개선하자는 방식 등 여러 방식이 검토되고 적용되었다.
둘째,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과 관련한 개념 정의와 지표 정리, 그리고 지표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건강보험 보장률’, ‘건강보험 급여율’ 등에 대한 개념과 ‘전체 의료비 대비 공공의료비 비율’의 지표가 구분되는 것이 정책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셋째,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에 있어서 정부가 ‘목표보장률’을 제시하고 ‘단계적 추진방안(로드맵)’을 제시한 것도 큰 특징이다. 이는 건강보험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물론 노무현 정부가 목표보장률을 자의적으로 조정하여 불신을 자초했고 제시했던 보장률 70%조차 달성하지 못했던 점, 단계적 추진방안도 2007년부터 상급병실료를 단계적으로 보험급여화하겠다는 약속을 추진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전체적인 평가는 긍정적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 정책추진의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은 특징적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렇게 추진된 노무현 정부에서도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을 추진하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또 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이것은 건강보험 재정이 또 다시 적자가 될 위기에 놓여졌다는 현상에 의한 것이었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은 누적수지가 1조원 내외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보장성 개선은 안된다’는 분위기로 얼어붙었다. 그 이유는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이 충분한 준비와 체계적 접근에 대한 노력이 미흡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보장성 개선을 위한 재정을 확보했는데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했다. 질병군별로 접근하는 방안을 시도했지만, 결국 암,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을 대상으로 한 보장성 개선 이외의 다른 질병군은 찾아내는데 실패했다. 질병군별 접근의 한계에 곧바로 부딪히고 만 것이었다.

또 다른 문제로 비급여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다는데 지적되어야 한다. 기존 비급여서비스의 일부가 보험급여화되었지만, 의료현장에서는 계속해서 비급여서비스가 개발되었으나 이에 대하여 정부나 건보공단은 관리하지 못했다. 결국 급여확대를 위하여 돈은 썼으나 보장률은 예상보다 나아지지 못했다.

국민들을 보장성 개선의 과정에 동의시키기 위한 노력도 서툴렀다.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 과정에 국민들을 참여시키고 설득하여 장기적인 분위기로 이끌고 국민들의 보험료 인상에 대한 동의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사고가 부족했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의 효과를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충분하게 제공했어야 했다. 이와 관련하여 대만의 중대상병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있었고, 실제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선택진료제의 폐지’ 등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제안을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4.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을 위한 접근에 대한 제안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수준은 2006년 기준 64%이다. 의료보장에 관하여 우리나라보다 앞선 많은 나라들, 그리고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은 더욱 높아져야 한다. 최소한 70~80% 수준으로 개선되어야 건강보장을 제대로 하고 있는 나라라고 평가받을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건강보험 보장수준을 높이기 위한 논의와 계획은 계속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이 좋을 때는 보장성 개선을 추진했다가 재정이 나빠질 기미가 보이면 보장성 개선 논의를 중단하는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 건강보험 보장 논의가 건강보험 재정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종속적 관계일 수 없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 계획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여 건강보험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는 것이 왜 국민들에게 유리한 것인지를 차분히 설명하고 구체적 실례를 만들어 보이며 국민들의 신뢰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험료 인상이 건강보험 보장수준의 개선과 연결된다는 믿음을 만들어야 한다.


한편,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과거 시기 보장성 개선 정책의 추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핵심으로 구체적 접근방법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세가지 내용을 함께 포함한 종합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 정책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고액의료비 부담 환자에게 실질적인 보장성 개선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이는 비급여서비스에 대한 비용까지 포함하여 실제 환자와 가족이 부담하는 비용의 크기를 측정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방식이어야 한다.

둘째, 비급여 서비스의 보험급여화에 대한 접근으로는 서비스 항목별로 접근하기 보다는 일정한 기준에 입각하여 여러 서비스 항목을 선정하고 이들에 대한 일괄급여를 추진한 후 보험급여율을 조정하면서 보장성 개선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서서히 늘려가 연착륙하도록 유도하는 접근법이 좋을 것이다.

셋째,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 비급여서비스 관리 강화 등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총액예산제와 DRG가 확대될 경우 이와 같은 변화는 보험재정 사용의 효율성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보장수준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또한 비급여서비스에 대해서는 일본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른바 ‘혼합진료 금지’의 원칙을 적용하여 비급여서비스가 포함된 진료행위 자체에 대한 보험급여를 인정하지 않는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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