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9 2019-02-04   687

[복지칼럼] 새로운 시작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김진석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범 2년을 꽉 채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촛불정부” 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따라다니지만 점점 뒤에 붙은 느낌표가 물음표와 말줄임표(…)로 바뀌고 있다. 취임 1년까지도 기록적인 지지율을 기록하던 문재인 정부는 집권 2년을 꽉 채운 현재 여느 역대 정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약속이 포용적 복지와 소득주도성장 등의 주요 정책의제로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일부는 그 내용이 빈약하다거나, 또는 현실과 맞지 않다는 비판을 받으며 주춤대는 모양새다. 잠시 주춤하는 그 자리를 보수와 기득권의 집중포화가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고 있다.

 

촛불‘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역사를 거쳐 탄생한 문재인 정부이지만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난 대선 직후 어느 ‘소매상인’이 예견한 바와 같이 그저 대통령 한 명이 바뀐 것뿐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정치적 상황에서 대통령이 바뀐 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전 정부 대통령들에 대한 비교우위가 부각되면서 이번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의미부여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16년 만의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은 정부가 정책의지를 마음껏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여당과 대통령의 입장에서 ‘잃어버린 10년’ 동안 전 정부가 사회 곳곳에 뿌려놓은 고약한 역사의 잔재를 지우고 자신의 색깔로 덧칠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상황을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개인과 그 정부에 대한 변호는 딱 여기까지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부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촛불정부라는 압박감을 벗어던지고 자기 자리를 잡아가야할 때이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 정도를 숫자로 나타내주는 지지율은 물론 중요한 지표이지만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다. 어떤 정책은 당장 결과를 보여주고 그로 인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모든 정책이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요하는 정책,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는 정책일수록 그 결과가 국민의 삶 가까운 데까지 다가가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표시나지 않지만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가는 게 맞다. 야당과 반대세력이야 반대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경우라면 그 반대의 이유들을 귀담아 듣고 필요한 경우 정책에 반영하면 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책이 스스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국가의 비전에 부합한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현장을 설득하고, 여당을 설득하면서 최대한 가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소위 현 집권여당의 ‘20년 집권 플랜’에 대한 얘기가 현 여당 대표의 입을 통해 나오더니 어느새 30년 집권으로 갈아타는 모양새다. 정당의 존재이유가 아무리 권력의 쟁취와 유지에 있다지만 현재 정부가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 20년 이상 지속되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고통스러운 상상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노동과 경제정책의 영역에서 보여주고 있는 자기 분열적인 모습은 당장 남은 임기조차 견디기 힘들 지경이다. 전례 없는 최저임금 인상이 환영을 받는가 싶더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무위로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결국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폐기하기에 이른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오래된 초장시간노동과 이로 인한 삶의 질 하락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시도하는가 싶더니 또 금세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여 노동시간단축의 효과를 다시 무위로 돌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초장시간 노동의 합법화와 실질임금의 저하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관성없는 정책의 나열은 병주고 약주는 식의 자기분열 수준이 아니라 대대적인 개악이자 노동정책의 후퇴에 다름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노동부가 “어려운 경제·고용 환경을 고려하여” 단속보다 자율시정 중심의 근로감독을 하기로 했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유명무실한 법의 대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불만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의 방향이 제 효과를 발휘하려면 단기적 측면에서 확장재정을 운용하는 것이 정석일텐데 이 정부는 지난 2017년과 18년 집권시기 내내 어떤 이유인지 유래 없는 긴축을 동반한 재정안정화 기조를 강조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역시 내적 분열에 해당한다. 이러니 근거도 없이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을 경기침체 및 고용정체와 연결하는 보수와 자본의 악의적 비판에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끌려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정책의제 설정과 정책수단의 집행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자기 분열의 정체를 필자는 알지 못한다. 겉으로만 그럴 듯하게 의제설정을 하고 실제로는 집행할 의지가 없다는,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 이라는 의심이 한 편에 있는가 하면, 심지어 다른 한 편에서는 정말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보수적인 부처와 관료의 완고하고 조직적인 저항에 정책 추진력을 볼모잡힌 이른바 조기 레임덕 증후군이 이미 찾아왔다는 진단이 나온다. 필자는 이 모두가 근거 없음으로 결론나기를 바란다.

 

가끔 길을 잃은 것 같은 때가 있다. 잠시 가던 길 멈추고 생각해보니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바로 새 길을 찾아 나서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가는 길에서 문제를 찾을 수 없다면 그냥 가던 길을 가면 된다. 괜스레 가던 길 멈춘 것이 뻘쭘하다면 새롭게 마음을 다진 것으로 위로를 삼자. 어떤 경우이든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두가 다 한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뭔가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팀은 당장 방향을 바꿔야 하겠지만, 어느 한 쪽의 방향전환이 전체가 흔들릴 이유는 아니다. 갈 길 가야할 팀은 당연히 제 갈 길을 가면 된다.

 

속내야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혼란과 자기분열을 단호하게 끝낼 것을 제안한다. 식상한 얘기이나 초심으로 돌아가 복지국가, 통일국가, 차별 없는 평등국가, 즉 나라다운 나라의 기반부터 탄탄히 할 것을 제안한다. 괜히 20년 집권이니 30년 집권이니 하는 근거 없는 희망에 오늘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당장 오늘 이 곳에서 ‘촛불정부’라는 이름을 붙여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자.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유명한 경제학자가 한 말을 떠올려보면 도움이 될까? “길게 봤을 때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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