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12-10   1116

노동공대위의 보험료 인상 반대 투쟁과 향후 전개방향

지난해 11월말 의사들의 장충단 집회로부터 시작된 의료계 파동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동안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고 환자의 절망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통은 그것으로 모두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의료계 폐업을 달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친 일방적 수가인상을 단행하였고 그 짐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 안겼다. 6월 폐업으로 9.2%의 수가인상을 단행하였고, 8월 폐업으로 또다시 6.5%의 수가를 인상시켜 주었다. 국민들은 제때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의료비의 추가부담이라는 엄청난 부담만을 떠 안은 것이다. 그럼에도 시민사회단체들은 폐업초기의 활발한 대응과는 달리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부의 원칙 잃은 대응과 의료계와의 8개월 여에 걸친 지루한 공방으로 싸울 힘을 소진시켰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집단폐업이라는 물리력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정부는 원칙없는 대응으로 의료계에 끌려 다니면서 의사들은 일순간에 자신들의 모든 요구를 관철시켰다. 결국 의사의 독점적 권한만을 강화시킨 채 보건의료개혁은 난도질당하고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피해를 보았던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십 수년에 걸쳐 이루어낸 보건의료개혁의 성과물들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되는 현장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힘으로 밀어붙인 의료계의 기득권 강화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의약분업의 올바른 정착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동본부」를 발족시키고 의료계의 집단 휴폐업에 적극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그러나 막상 의료계의 휴폐업이 반복되면서 의약분업에 대한 논쟁은 의료계와 시민단체간의 싸움으로 변질되었고 시민단체들은 본의 아니게 분쟁의 중심에 휘말려들고 말았다. 2차 폐업을 앞두고 시민단체들은 기존의 시민운동본부의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제 시민사회단체(239개)들을 망라한 「국민건강권 수호와 의료계 폐업철회를 위한 범국민 대책회의」를 만들어 대응하였지만 이미 많은 힘을 소진한 상태여서 이렇다 할 대응을 보여주지 못한 채 의약분업을 둘러싼 주도권은 의료계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8.10 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현재 원가의 80%수준인 의료보험수가를 2년 동안 2조2천억원을 투입해 100%대로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싸움의 양상은 의료계의 일방적 페이스였다. 힘에 밀린 정부는 의료계와 의정야합을 통해 국민의 참여를 봉쇄하고 의사의 독점권을 강화시켜준 채 의료계 폐업사태를 종식시키고자 하였다.

노동자 농민, 의료개혁의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

국민의 부담 증가와 보건의료 개혁의 후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시민사회단체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때마침 노동 농민단체 내부에서는 정부의 일방적 의료비 인상과 의료계의 휴폐업에 대한 반발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한국노총이 뒤늦게 의료계 폐업 반대에 동참하고 나섰고, 그동안 내부 입장정리가 안돼 한발 비켜섰던 민주노총도 의료비 인상철회 문제에 적극적인 결합의지를 내비쳤다. 건강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단체들은 노동자 농민을 묶어 세워 마지막 총력전을 치를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9월 8일 양대노총과 전농, 한농연이 주축이 된 일방적 「의료비 인상반대 및 올바른 의료개혁을 위한 노동자 농민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노농공대위)」가 구성되었다. 노농공대위는 정부와 의료계간의 의정야합을 통한 일방적 수가인상을 저지하고 시민사회단체의 의료개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한편으로 노동계와 농민들의 의료비 인상에 대한 분노를 결집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의료의 소비자이자 부담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을 전방위로 내세우는 것은 의약분업 파동의 중심권에서 밀려나 있던 시민운동진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노농공대위는 의료계폐업, 수가인상, 보험료인상이라는 의정간 야합구도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보험료 인상반대, 보험급여 확대, 국고부담 확대를 요구조건으로 내세우며 정부와 의료계를 압박함으로써 의료계에 빼앗긴 의료개혁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노농공대위는 출범초기 구체적 추진일정을 마련하지 못하고 실무력 마저 뒷받침되지 않아 활동에 한계를 드러내는 등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0월 6일 100만명 서명 발대식 및 의사폐업, 의료비인상 반대 기자회견을 하였지만 서명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내부동력 역시 선전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동력이 붙어주지 못하였다.

보험료 인상 여부 놓고 정부 압박

노농공대위 활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였다. 공단 재정운영위원회는 국민건강보험법 제 31조에 의거 보험료의 조정과 기타 보험재정과 관련된 주요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법적 기구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보험료를 인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정운영위원회의 의결이 필요하고(정관개정), 직장가입자의 경우에는 보건복지부가 재정운영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하여 보험료율을 결정하고 이를 시행령에 반영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정부나 공단의 입장에서는 보험료 인상을 위해서는 재정운영위원회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되어 있다. 복지부의 입장에서는 한시가 급한 상태였다. 당장 12월 말이면 지역보험재정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여 자칫 진료비 지급이 어려운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직장의 경우도 사정이 다급하긴 마찬가지다. 직장은 당장 보험료를 인상시켜야할 만큼 재정이 나쁘지는 않지만 내년 1월로 다가온 직장과 공·교의 재정통합을 위해서는 서로 다른 보험료 부과율을 통일 시켜야 하기 때문에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지역은 보험재정 고갈 때문에 직장은 법에 따른 재정통합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재정운영위원회에서 보험료 인상건을 어떻게 통과시킬 수 있냐는 것이다. 현재 재정운영위원회 위원구성은 총 30인으로 직장가입자 대표 10인, 지역가입자대표 10인, 공익대표 10인으로 구성하도록 되어있다. 현재 직장가입자 대표중 5인은 한국노총(3인)과 민주노총(2인)이 추천한 위원이고 지역가입자 대표중에는 시민단체도 4인이 참여하고 있다. 인적구성으로만 본다면 2/3가 보험료를 부담해야할 당사자들로서 보험료 인상에 쉽게 동의해주기 어려운 입장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통합이전 조합시절에는 보험료 인상시 각 동에서 추천된 조합운영원회로 하여금 보험료 인상을 결정할 수 있었으나 운영위원들이 대부분 관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보험료 인상을 합리화시키는 들러리 역할에 그쳤었다. 조합운영위원들이 보험료 인상을 결의해도 다시 정관 개정 승인 권한이 복지부에 있어 복지부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그러나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는 그 지위와 역할이 과거 조합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라 의사결정과정에서 관의 일방적 간여나 통제가 여의치 않도록 제도화 되어 있다.

수가인상 허구성, 쟁점으로 부각

10.24일 제 1차 재정운영위원회 대응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노농공대위는 27일 보건복지부장관 탄핵소추결의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보여주었다. 제 1차 재정운영위원회에서는 정부의 수가인상의 부당성과 수가인상 근거 자료의 불충분성이 논란이 되었는데 자료부실과 수가인상에 따른 보험료 인상반대라는 공감대가 위원들사이에 형성되어 있어 아무런 결론없이 끝나고 말았다. 정부는 결국 수가인상분은 이번 재정운영위원회 논의에서 제외시키기로 하고 대신 수가인상분을 제외한 자연증가분에 대해 인상에 동의해주도록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노농시민단체 위원들은 국고분담금 확대와 급여확대, 병원경영 투명성과 환자 알권리 확보, 재정절감 대책 등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보험료 인상에 동의해 줄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현재 재정운영위원회 대응은 노농공대위를 주축으로하고 시민단체가 지원하는 형식으로 노농시민단체 연석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제도적 틀을 통한 건강보험 개혁

현재까지 보험료 인상 반대 투쟁을 통해 기대되는 성과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수가인상의 허구성을 들추어 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8. 10일 수가인상조치를 발표하면서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97년 당시 수가는 진료원가의 64.8% 수준이었고 이를 기준으로 재추정한 결과 현행수가는 진료원가의 80%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수가인상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주장은 무리한 수가인상을 위해 연구결과를 왜곡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 자료의 근거가 되는 연세대 보고서는 의료기관의 경영수지 분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가항목의 상대가치를 연구하기 위한 것을 정부가 수가인상의 근거로 활용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사대상 기관이 상대적으로 고비용 구조를 가지고 있는 3차의료기관 8군데로 한정하였고, 비 보험 진료수입을 누락시킨 원가분석 산출자료를 이용하는 등 결과적으로 진료수가가 과다인상되는 결과를 야기 하였던 것이다. 둘째, 국고분담금 확대와 급여확대를 제도적 틀을 통해 요구하고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동안 시민단체는 건강보험의 재정안정과 보험료 부담경감을 위해 국고분담 50%를 끊임없이 요구하여 왔다. 아울러 현재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험급여수준을 선진국 수준까지 확대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재정구조로는 이러한 목표달성이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 이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재정운영위원회를 통해 이를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함으로써 정부가 답을 내 놓도록 압박하고 있다. 보험료 인상을 위해서는 국고지원 확대와 보험급여 확대도 같이 병행되어야 함을 재정운영위원회를 통해 담보 받으려는 것이다. 셋째, 건강보험의 민주적 운영과 참여기전을 확보하고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과거 조합시절 처럼 국민의 참여과정이 생략된 채 정부의 의도대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식이 아닌 실제 국민의 참여와 동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직접 실행에 옮긴 것이다. 향후에도 재정운영위원회를 통해 건강보험을 감시하고 민주적운영을 하도록 견인함으로써 국민의 참여속에 건강보험이 운영될 수 있는 틀을 이번 기회에 각인시켜 주었다. 넷째, 의료계와 정부의 의정야합에 제동을 걸고 다시금 의료 수요자인 노농시민단체가 역할을 찾아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의료계 폐업 이후 정부와 의료계가 의정야합을 통해 일방적 수가인상을 단행하고 국민을 배제한 채 의사중심의 의료개혁을 추진하여 왔다. 노농공대위는 보험료 인상반대 투쟁과 재정운영위원회의 대응을 통해 의료계 주도의 의료개혁 국면을 전환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보험료 인상 반대 투쟁은 의료보장 위한 실천 운동

노농공대위는 11월 말까지 100만명 서명운동을 마무리 짓고 국고분담50% 법제화를 위한 입법 청원과 정치권에 보험료 인상 철회와 국고분담금 확대를 요구할 계획이다. 노농공대위의 보험료 인상반대 투쟁은 그 자체만으로 성과일 수 없다. 보험료 인상반대를 통해 국고의 추가부담을 약속받고 보험급여를 확대해 내며, 국민의 알권리 확보와 건강보험의 민주적 운영을 찾을 때 만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노동자 농민은 의료소비자이자 보험료 부담의 주체이다.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일방적으로 수가를 인상시켜 놓고 그 수가인상 때문에 보험재정적자가 발생하므로 보험료를 인상해야하는 논리는 아무래도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정부와 공단은 의사의 수가를 보장해 주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시키려 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이 납득할만한 근거를 제시하고 그에 상응한 조치를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의료계의 폐업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남아있다. 국민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차례다

강창구 / 건강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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