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5-11   742

국민연금 기금 운용 – 그 실(實)과 허(虛)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지적사항이 있다. 많은 일간신문들이 보도해 왔듯이, 연금기금 고갈이 정부의 중대한 관리실책에서 기인 한다거나, 정부가 그동안 기금을 적립해온다고 했지만 사실은 몰래 다른 데 쓰는 바람에 기금이 고갈되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사항은 사실과 반드시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정부의 부실한 기금관리 관행을 두고 볼 때, 막대한 규모의 국민연금기금이 관리되고 운용되는 방식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 하기도 어렵다.

국민연금은 2008년이 되어야 정상적인 노령연금 수급자가 생겨나기 때문에, 연금기금은 매년 눈 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불어나는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또 다른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몇십년 이후 부딪히게 될 기금고갈을 걱정하는 것 못지않게, 지금 이 시간에도 엄청나게 쌓여가는 기금을 제대로 운용하고 관리하기 위한 고민도 병행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기금이 눈 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했는데,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지난 3월 30일에 개최된 국민연금 기금운용 위원회에 보건복지부가 제출하여 통과된 2005년도 국민연금 기금 결산(안)을 참고 해보자.

국민연금은 1988년 1월 1일 실시이후, 그 제도적용대상을 농어민(1995년), 도시지역 자영자(1999년)로 확대해오면서 연금보험료수입과 운용수익금이 급속도로 늘어나서 2005년도 말 현재 자산총액 164조 1,850억원, 부채 2,400억원, 자본(국민연금기금) 163조 9,450억원의 ‘맘모스’ 기금으로 성장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런 성장추세가 계속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금운용에 따른 손익현황을 살펴보자. 2005년 한해 동안만 하더라도, 연금보험료수입과 사업비용을 제외한 사업수익(매도가능증권이자, 단기매매증권평가이익, 매도가능증권처분 이익 등 금융부분에 투자해서 올린 자산운용수익)이 11조 5,806억원이고, 여기에다 사업외 수익과 사업외 비용간의 차액을 공제하더라도 2005년 당기 순 경상이익이 11조 3,816억원이나 된다. 이를 두고 기금운용 실적을 평가하자면, 꾸준히 연금급여를 지출하고도 당기 순이익을 남긴 것이니 관리가 부실했다거나 투자를 잘못해서 원금도 까먹었다는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는 전년대비 4조 7,399억원이나 이익을 증대(71.4%)시킨 것이니 기금운용부실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별로 없다고 하겠다. 기금운용실태가 항간의 소문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는 셈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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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입장에서 봤을 때, 정부의 기금관리나 운용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은 억울하기만 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같은 날 복지부가 기금운용위원회에 제출한 ‘2005년도 제4분기 국민연금 기금 운용현황’에 의하면, 2004년 12월말 현재 6조 3,840억원 정도 남아있던 공공부문 투자금액(원래 총 투자액이 얼마이었던지는 알 수 없음)이 2005년 말에는 전액 회수되어 내년부터는 공공부문 투자액이 0가 되었다고 하고 있다. 이는 듣기좋게 표현해서 공공부문 투자이지 사실은, 오랜 옛날에 제정된 소위 ‘공자법’(공공자금관리기금법)에 의거하여 공공자금기금 예탁금이라는 명목으로 정부내 다른 부처(재정경제부)가 복지부가 관리하는 국민연금기금에서 아주 값싼 이자로 빌려갔던 돈을 이제야 전부 상환 받게 되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하다.

그런데, 여기서, 1999년 1월 국민연금법 및 동 시행령이 개정되어 정부가 마음대로 국민연금기금을 차입하여 사용할 수 없도록 하였음은 물론이고, 재경부에 이미 빌려준 돈에 관한 이자계산방법도 개정하여서, ‘5년 만기 제1종 국민주택채권’ 과 ‘국고채권 유통수익률’ 중 높은 금리를 적용하여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이자를 지급하도록 하였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법개정이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도, 그때까지 문제투성이였던 국민연금 기금관리 및 운용에 대해서 전문성, 투명성, 민주성을 확보하기위해서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우렸던 노력의 결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정부 어느 부처를 막론하고 국민이 맡겨둔 돈을 빌리거나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공무원입장에서 볼 때는, 개정된 법률내용의 어느 한귀절도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가 기금운용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즉, 재정경제부가 ‘국고 채권 금리’가 ‘제1종 국민주택채권금리’ 보다 높았던 기간(1999.9.~10. 및 2000.3.~12.)에 대해서도 ‘제1종 국민주택 채권유통수익률을 평균한 금리’를 적용하여 이자만 무려 482억원이나 적게 지급해왔음에도 복지부는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야(2004. 9.)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복지부(국민연금 관리공단)는 2005년 7월에 허겁지겁 재경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렇지만, 법원으로부터는 2006년 3월 23일자로 기각판결을 받고 패소하고 말았다. 기각사유를 알아본 즉, ‘재경부가 법령에 규정된 이자를 지급하지 아니한 것은 고의ㆍ과실로 인한 위법행위가 아니고, 일부 이행지체의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므로 이자청구권은 민법의 3년의 단기소멸시효를 적용하여 시효완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지부(공단)의 직무태만에 의해서, 국민연금기금에서 재경부에 빌려주었던 돈에 대한 이자 중 482억에 해당하는 금액이 ‘자연채무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것은, 복지부(공단)는 재경부로부터 받아야 할 482억에 대한 채권은 존재하지만, 법적으로 청구할 수 있는 힘을 잃었으며, 재경부는 482억의 채무이행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더하여, 이 사안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나 실무평가위원회에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있었음을 보고조차 하지 않고 은밀하게(?) 소송을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입장에서 봐서 사안의 성격이 밝히기 곤란하거나 불리한 경우가 생기게 된다면, 복지부와 공단이 자발적으로 공개할 의사가 없거나 보고하지 않는 이상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을 수 밖에 없고, 앞으로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이번 경우와 똑같이 허수아비 노릇만 하게 될 가능성은 항상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대략 분기별로 모임을 갖는 비상설 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와 이를 보완하는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한,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한 견제와 관리감독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현실로 드러났다고 하겠다.

임종대 / 참여연대 공동대표,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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