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6-11   1801

기업의 사회적 책임(CR)? 아니 기업의 이미지제고(PR)!

– 최근 이야기되는 재벌들의 사회공헌 논의에 대한 비판 –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던 한국사회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lity 이하 CSR로 약칭)과 사회공헌에 대한 논의가 전례없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노조를 부정하고 부를 세금없이 불법적으로 세습하려했다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던 삼성그룹이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유죄판결(불법증여), X파일 사건(불법정치자금 제공), ‘삼성공화국 논란’으로 2005년 한해동안 언론과 노조, 시민단체로부터 비판의 십자포화에 직면하였던 삼성그룹은 2006년 2월 7일 총 8000억원의 사회공헌 기금을 내겠다고 한 것이 그 시초이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의 의해 ‘먹튀 투기자본’라는 비난을 받아온 론스타이다. 이들 역시 외환은행 매각을 앞두고 자신들에 대한 국내 여론이 불리해지자 갑작스럽게 1000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내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사회환원을 꼽을 수 있다. 글로비스를 통해 13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사법처리에 직면한 정몽구 회장은 지난 4월 19일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염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자신과 아들이 소유한 1조원 가량의 글로비스 소유 주식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을 조금만 자세히 뜯어보면 과연 이것이 단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문제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실제로 당사자들 대부분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이행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회환원을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행동은 사회적 책임이전에 그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법적 윤리적 책임의 문제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삼성은 불법정치자금의 제공과 자식들에 대한 불법증여 문제에 발목이 잡혀있고, 현대 역시 회사재산을 빼돌려 총수 개인이 생활비로 사용하고 부실계열사에 대한 총수 개인 보증을 면하기 위해 계열사로 하여금 출자를 하게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기업, 법은 어기면서 윤리적 책임은 다한다?

Caroll 에 따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 책임(Philanthropic Responsiblity)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의 두 개는 기업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required by society)이나 윤리적 책임은 기업이 이를 이행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expected by society), 자선책임은 기업이 하면 좋은 것(desired by society)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분류법에 따르면 한국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있어 법은 어기면서 윤리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즉 전공필수는 통과하지 못한 채 교양선택 과목에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학생과도 같은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과 그 지출액수는 결코 작지 않다. 전경련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 기업들의 사회공헌지출비용 집행액은 기업평균 53억 7900만원에 이르며 총 집행액도 202개사 약 1조 866억에 이른다. 2000년 기업평균 사회공헌액 36억 5800만원과 비교하면 17억 2100만원이 증가한 금액이고, 총집행액 역시 2000년 7060억원에 비해 약 3819억원 증가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표1> 참고)

<표1> 한국기업의 사회공헌지출비용 추이 – 생략

또한 2002년 기준으로 한국기업의 세전/이익/매출액 대비 사회공헌지출비용은 매출액 대비 0.17% 수준으로 (자세한 내용은 <그림 1>, <표 2>참고)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일본기업의 0.13%(2002년, 302개사, 경단련 조사)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림 1> 세전/이익/매출액 대비 사회공헌지출비용 (2002년 통계) – 생략

<표2> 한국기업의 세전/이익/매출액 대비 사회공헌지출비용 – 생략

실제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진과 임직원 역시 최근들어 부쩍 사회공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기업의 활동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2005년 아름다운재단이 기업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2000년도를 기점으로 기업별 사회공헌 담당인력배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사회공헌활동 담당인력을 배치하고 있는 기업들의 60%이상은 2000년도 이후에 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의 사회공헌 추진 동기에 대해서는 응답 기업의 83.3%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하였으며, 다음으로는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서”가 49.4%를 차지하였다. 기업이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하는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무엇인가를 묻는 물음에 대해서는 “CEO의 의지”가 66.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다음으로는 “사원들의 합의“(25.2%, 41개)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어떤 영역의 사회공헌에 가장 적극적인가. 역시 정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중 10개 그룹은 8,212억원의 사회공헌활동 추진계획에서 가장 많은 것은 노인, 소년소녀 가장 돕기와 같은 사회소외계층 지원이고 다음이 학자금, 대학시설물 기부와 같은 장학/학술 연구지원사업, 그 다음이 재난시 인명구조와 같은 재해복구시설순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표3> 참고)

<표3> 2005년 10개 그룹 사회공헌사업 내역 – 생략

결론적으로 비용면에서나 내용면에서 한국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쏟는 노력은 결코 낮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기업들의 자정노력을 불신하며 심지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그것은 기존의 재벌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수행이라는 명분과 달리 재벌 일가족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심지어는 각종 탈법, 부당행위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경우 이병철 전회장이 이건희 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때 삼성미술문화재단과 삼성공제회가 중개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아직까지 받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세법상의 면세조항을 악용하여 이병철씨가 삼성문화재단등에 주식을 이전하고 삼성문화재단등이 다시 이건희에게 되파는 등의 방법으로 상속세를 납부하지 아니하고 경영권을 세습하였다는 것이 그 의혹의 핵심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된 삼성의 8000억원 사회헌납과 관련하여 현재와 같이 장학재단이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의 영향력 하에 있는 한, 해당 재단으로의 주식 기부는 단순한 명의변경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비판과 감시를 통해 외국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또 하나의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업들의 시선이다. Frederik에 따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해관계자들의 비판과 감시를 기업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에 비례한다고 한다. 또한 Carroll에 따르면 기업이 비판에 직면할 경우 수동적인 반응(Reaction), 자기방어(Defence), 수용 (Accomodation),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행동(Proaction)의 단계를 보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담배회사의 경우 처음에는 흡연과 암과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다가,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는 주장이 세를 얻게 되면 이를 막아보기 위해 니코틴의 중독성을 부정한다던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의회와 정부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펼치는 등 자기방어의 행동을 보인다.

그러다가 담배의 유해논란에 대해 과학적인 증거들이 속속들이 제출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 동안의 태도를 거두어 자신의 제품의 유해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신 청소년들의 흡연을 금지시키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수용의 단계로 가다가 마지막으로 금연운동단체와 같은 이해당사자들과 대화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보고서(Social Reporting)를 내는 적극적인 행동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해관계자와의 비판을 무시하고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다가 브랜드 이미지의 훼손과 경영성과의 하락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한 사례는 여럿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아동노동(Child Labor)으로 비판 받던 나이키(NIKE) 사례. 베트남, 중국등에서 자사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의 유아노동 고용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던 나이키는 계속되는 언론의 비판과 시민단체의 불매운동에 밀려서 결국 유아 노동의 고용금지를 비롯한 노동조건의 개선을 약속했을뿐 아니라 결국 전세계의 자사 물품 생산업체의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외부의 독립적인 전문가의 검증(Audit)을 허용하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또한 영국의 대표적 석유기업인 셸(Shell)은 1995년 자신의 노후한 원유채취 플랫폼 Brent Spar를 북해에 투기하는 안을 고집하다가 Greenpeace와 같은 환경단체와 여론의 반대에 밀려 그 계획을 포기하였고, 같은 해 나이지리아에서의 원유 채취사업과정의 환경오염을 비판하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한채 영업을 계속하다가 결국 나이지리아정부가 셀의 사유재산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9명의 지역운동가에 대한 사형집행을 강행하자 이를 방조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셸의 기업이미지는 ‘기업악당(Corporate Villain)’으로 사람들 사이에 자리잡혔고 결국 기존의 DAD(decide, action, deliver)전략을 DDD(dialogue, decide, deliver)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다국적 패스트푸드 제조업체인 맥도널드 역시 유사한 경험이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맥도널드는 자사 제품의 유해성과 노동조건, 환경파괴를 비판하는 환경단체와 언론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소송(Libel)이라는 법적 대응의 형식으로 취해왔다. 실제로 맥도널드는 1980년대 BBC나 Guradian과 같은 언론사에서부터 소규모 학생그룹이나 지역 환경단체에 이르기까지 총 90여건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여 이들에게 사과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러나 1990년 맥도널드가 자사를 비판한 리플렛을 배포한 London Greenpeace 소속 5명의 활동가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이 기존의 소송과 달리 영국 사법사상 가장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 소송이 되고 소송자체가 사회적 쟁점화되고 의도와 달리 맥도날드가 언론과 다른 시민단체의 공격에 노출되면서 맥도널드는 이러한 강경 고수 전략을 바꾸었다. 예를 들어 2004년 모건 스펄록이 제작한「슈퍼싸이즈미 Supersize me」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무시전략을 택하더니만 2006년 하반기에 공개될 「패스트푸드의 제국」의 상영을 앞두고는 본사로 기자들을 초대해 고위임원들이 직접 판매식품의 질과 노동조건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외국의 사례들이 시사하는 결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회사는 재벌들 일가의 사유물이란 전근대적 인식에서 벗어나 주주, 노조, 채권자, 소비자, 지역사회 주민등 회사의 여러 이해당사자들(Stakeholder)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과의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회사법이나 공정거래법 혹은 세법과 같은 한 사회의 게임의 룰은 지킨다는 것은 당연히 전제로 깔린다.

따라서 창업자의 무노조 경영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 주주의 재산을 빼돌려 재벌 3세가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회사에 몰아주는 거래가 횡횡하는 현재의 상황이 계속되는 한 기업의 진의가 존중될 수는 없다. 궁지에 몰린 재벌이 기업의 책임(CR)을 이야기하는 것이 실제 그저 기업의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한 선전(PR)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팀장, chs@psp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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