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6-11   551

기업의 공공성과 시민의식 – 노조의 사회연대기금

2003년 노조에서 사회적 책무를 고민하다

2003년 민주노총 산하 금속산업연맹의 자동차 노조를 중심으로 ‘산업기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회사가 얻은 순이익금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여 이를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 노동자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당시에 이를 제안한 이유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대기업들의 기업이익은 단순하게 해당기업의 종업원들의 노력의 결과만이 아니라 수많은 영세부품업체를 비롯하여 소비자들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에서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제조업 공동화 우려 등이 높은 상황에서 기금을 조성하여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사공동으로 기여하는 방안을 찾자는 것,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산되는 노동시장에서의 격차를 해소하는데 노력하자는 것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2003년에 곧 바로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다소 선언적이지만 노사 간에 맺는 단체협약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무’와 관련된 조항들을 신설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상당수의 기업에서 단체협약으로 투명경영을 포함한 사회적 책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들이 포함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4년 기금을 본격 제안하다

자동차노조들은 2004년 들어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하였다. 각 회사의 순이익 중 5%를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으로 조성하여 비정규직은 물론이요 사회적 약자와 자동차산업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이 있자 여러 가지 논란도 뒤따랐다.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노동조합이 굳이 그런 것을 제안할 필요가 있냐는 여러 가지 반론도 있었다. 일부 언론이나 회사관계자들도 여러 가지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미 대부분의 노사가 기업의 성과배분을 논의하여 왔음에도 노조가 순이익을 배분에 관여하는 것은 부당한 경영개입이라는 낡은 얘기도 있었다. 준조세를 만들어 기업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기업의 사회공현활동이 기업활동을 어렵게 한다는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금의 규모에 대한 얘기도 논란꺼리였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에 주요 자동차회사들의 순이익의 5%는 1천7백억 정도로 추산되었다. 이 정도 규모는 자동차산업의 영세부품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 전부에게 적정 임금을 보상해 주기에는 당연히 부족하다. 그러나 이제 갓 시작하는 상황을 따지면 엄청난 규모의 액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조들은 시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기금규모는 5%든 1%든 0.5%든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산업차원의 기금에서 기업수준의 기금으로 결론

2004년에 이 제안을 두고 노조는 국내 자동차산업 완성차 업체가 모두 가입된 자동차공업협회와 논의를 지속했다. 기업수준을 넘어 산업차원에서 노사가 최초로 협의를 시작한 것이다. 2004년 7월 4일 비록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동차업계의 노사는 최초의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 협약에서 자동차산업 노사는 자동차산업의 고용과 발전을 위하여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에 필요한 비용은 업계에서 내기로 하였다. 사회공헌을 위한 기금은 각 기업의 노사간의 협의결과에 따라 각 기업별로 출연하여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 결과에 따라서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등에서는 해당 기업들이 위치한 지역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금들을 수억원씩 출연하여 지급하기도 하였다. 이는 전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올해에도 몇 기업들에서는 계속될 것이다.

드러난 문제들

그러한 노력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매우 곤혹스럽지만 스스로는 그냥 한때의 제안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는 혹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본연의 목적이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산업에서 노사가 무엇이 미래를 위한 길인가를 고민하자고 했지만 결국 일부기업들은 노조와 산업전망을 같이 논의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국제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장 더 싼 임금으로 노조의 저항 없이 일을 시킬 수 있는 비정규직을 사용하는데 관심을 가질 뿐이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통해 더 많은 차를 만들어서 내다 파는데 관심을 두는 한 한국의 산업은 여전히 ‘낮은 길’(Low-Road)로 갈 뿐이고 가끔씩 일부에서 떠드는 ‘고부가가치-고급노동-적정임금보상-친환경- 친공공적’인 ‘높은 길’(High-Road)은 그냥 내뱉는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부품 값을 내리라고 강요하고 중소영세 업체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더 싼 임금의 비정규직을 늘린다. 사회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빈부격차는 늘어나는 것이다. 매년 그렇지만 특히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의 중소부품업체의 노사 모두가 ‘더 싼 부품공급’을 강요 받는다는 것을 곳곳에서 하소연하고 있다.

현대차 회장의 구속에서 또 드러났지만 기업은 비자금을 만들어서 힘 있는 정치인 등에게 로비를 하는 길을 택한다. 더 많은 국민들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기업이미지를 개선함으로서 다수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보다 일부 힘 있는 사람들을 통해 청탁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는?

며칠 전이었다. 한 자동차 공장의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는 현대차 비자금이 터지자 현대차그룹에서 1조원의 사회공헌 기금을 내겠다는 얘기를 빗대서 말했다.

“노조가 얘기할 때는 몇 십억 단위더니 검찰이 수사하니 1조까지 내놓는다고 하니 역시 검찰의 힘이 세긴 센가보다”

사실 큰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나서고 노조와 함께 미래의 한국자동차산업을 노조와 함께 만들려고 하지 않을 때 가장 가까이서 이런 행태를 꼬집으면 끌고 가야할 책임은 노조에 있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자동차산업의 대기업들은 2004년 말부터 2005년에 이런 일을 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거꾸로 노조 내부의 비리 때문에 호된 비판들을 들어야 하는 지경이었다.

사실 이런 문제만이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높이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아니다. 자동차산업의 노조들이 사회공헌 기금을 제안하는 시점에 삼성에서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매년 일부 기금을 사회공헌활동에 쓰기도 한다. 그러나 삼성이든 현대든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단순히 기업이미지 광고 따위로 생각할 뿐이다. 실제로는 비정규직의 노동을 착취하고 중소사업장을 쥐어짜면서 면피용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현실을 보면서 사회공헌 활동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으로 난리가 난 상황에서 편법재산상속의 의문을 받는 삼성의 한 일가에서 사회공헌기금을 내 놓는다는 얘기를 할 때 국민의 대부분은 비웃고 있는 현실이다.

노조에서도 이 때문에 사회공헌기금 따위는 속으로는 딴 짓을 하는 재벌들의 모습을 감추도록 도와 줄 뿐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대기업 노동조합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기 보다는 자기 뱃속을 채우면서 겉으로만 몇 푼 내놓고 ‘우리도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치장을 하는 것이라는 냉혹한 비판도 있다.

사회적 연대를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름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때로는 사회양극화를 더 심하게 만들 법이나 제도에 저항해서 파업을 하고 투쟁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에 못지 않게 지역사회나 해당 산업에 종사라는 비정규직을 비롯한 사회자 약자와 함께 ‘나눔’을 일상적이고 구체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이런 노력들은 미약하지만 다양하게 진행되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2004년 시작한 자동차 노조들의 시도는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여러 가지 노력을 계속할 것이며 드러나는 문제들에 대한 반성을 통해 더 실현가능한 방법들을 찾아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기업의 이익이 일부의 국내외 주주들이나 재벌경영자들에만 돌아가지 않도록 기업의 이익을 사회적으로 환원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간의 대기업의 임금인상투쟁은 기업이익을 대기업에 다니는 조합원에게만 나누는 것이었다는 반성 속에서 이제는 더 크게 나눌 방법들에 대한 고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조건준/ 금속노조연맹 총무국장,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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