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01-15   1059

[심층분석3] 보건의료의 사회공공성, 무상의료를 만들어 가는 힘을 키우자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실장


사람들이 2012년을 기다렸던 이유

시간이 참 빠르다. 2012년의 해가 시작되었다. 2008년 촛불이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우던 날, 길게 느껴지던 그 시간을 답답하게만 느꼈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기다렸던 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교육, 언론, 인권 등 많은 분야에서 후퇴된 점이 있지만, 그만큼 우리 국민과 사회는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따져보며 스스로의 생각을 다듬어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을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표’를 통해 민심을 표현하고 ‘심판’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2012년을 기대하고 기다렸던 이유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표를 통해 심판하고자 하는 MB정부의 문제점을 무엇으로 꼽고 있는지 시민사회는 꼼꼼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말을 좀 바꾸어 보자면, MB정부를 통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런 점에서 총선과 대선 과정이 단지 ‘이명박 정부 심판’이라는 정치구호로 그치지 말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단하는 토론의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전 환경부장관을 역임했던 윤여준 씨가 펴낸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 운영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 공공성의 결여”라고 지적한 대목에 눈길이 간다. 기업가 출신으로 ‘비즈니스 프렌들리’하다는 평가는 MB정부의 출범부터 지적되어 왔던 점이지만, 그것보다 국민들이 등을 돌리게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소통’의 부재, 공론화의 부재였다. 즉, 친자본적인 정책의 경향성 보다 ‘독단적인 정책의 추진’이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대통령이 서민과 공감을 나누고 싶다며 시장을 돌아다니며 어묵과 떡볶이를 사먹지만, 정작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 속에 담겨진 오만함과 무의식은 오히려 정부가 국민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랬다. MB정부는 서민의 삶이 무엇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도, 가난한 삶도, 일자리를 구하려는 실업자의 애환도, 대학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 하는 청년들의 고난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는 서글픔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기업의 돈벌이 시장을 더 깊이 고민했는지 모른다. 

이런 경향은 보건의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건강보험 보장수준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으며, 공공의료가 확장되는 정책도 전혀 없었다. 대신, 경제부처 장관들은 끊임없이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했으며, 국민의 건강관리마저 시장에 맡기려는 정책을 추진하려다 시민사회의 반발에 부딪혔다. 우리 국민들과 시민사회는 ‘의료민영화’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2008년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미국식 의료 반대’, ‘건강보험 지키자’는 목소리가 미국 의료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 Sicko’ 보기 운동을 통해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을 넓혀갔다. 또한 2008년 촛불과 함께 만들어진 국민의 힘은 MB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막는데 절대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MB정부는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정책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의 이해와 시장의 형성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그 일환으로 ‘삼성’은 정부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의료기기와 바이오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 여기에 세계 시장을 얻는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건강권 정도는 쉽게 거래의 과정에 내어주는 ‘한미 FTA’라는 ‘의료민영화 쓰나미’를 몰고 왔다. 

결국 MB정부에게 보건의료는 애초부터 모든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국가의 책임이나 공공정책의 영역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고부가가치를 보장하는 신성장산업의 영역이었을 뿐이었거나, 자본의 시장을 열어주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무역협상에서 내어줄 수 있는 가벼운 영역 정도로만 여겨졌다. 


‘무상의료’ 깃발이 올랐다

영리병원 도입,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건강관리서비스 시장화 등 MB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반대’하고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싸워오던 시민사회가 2010년부터 서서히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수세적인 ‘저지’에서 ‘무상의료’, ‘건강보험하나로’를 앞세워 공세적인 자세로 변화를 만들어 갔다. 시민사회에서 시작된 이와 같은 논의는 급기야 2011년 제1야당인 민주당이 ‘무상의료’를 직접 천명하며 복지국가를 향한 과제로 채택한 것으로 이어지며 더욱 확장되어 갔다. 그리고 2012년을 향해 힘을 모아가고 있다. 

사실 ‘무상의료’는 ‘공짜’라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다. 모든 사람들의 건강할 권리, 필요할 때 누구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기본적인 인권으로 이해하고 보장한다는 의미와 함께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보건의료서비스의 상품화 경향, 이윤추구적 경향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필수적 서비스로서 공공성을 튼튼하게 하자는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다. 

이런 점에서 우선, 무상의료는 가깝게는 질병과 의료서비스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충분히 확보하고, 지출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개혁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보건의료체계를 치료보다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을 중심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정책과제도 당연히 포함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적 수준을 넘어 ‘무상의료’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의 건강할 권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꾸자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지 ‘건강보험 100% 보장’의 수준을 뛰어 넘어 노동과 일상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건강의 가치를 중심으로 변화를 만들어가자는 지향을 담고 있다. 


무상의료를 만들어 가는 힘, 사회공공성 확보로부터

그런데 이러한 ‘무상의료’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소리 높여 외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몇몇 정책의 조합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보건의료와 건강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사회공공성의 가치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갈 때 작은 변화라도 하나씩 만들어 갈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무상의료’를 달성하는 힘은 ‘공공성’의 개념에서부터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성’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책임성을 강조한다. 국가의 재정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준에서 직접적인 서비스 제공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사회서비스와 관련하여 ‘재정은 국가가 책임지고 서비스 제공은 민간이 담당 한다’는 식의 사고가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비국가적 공공성’의 영역을 고려해야 한다. 공공성이 이윤추구적이고 지불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에서 나올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국가에 의존적인 형태로 이해되는 것도 곤란하다. 우리는 이미 국가에 의해 공공성이 좌우되거나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되는 상황도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또한 사람들의 건강할 권리를 국가가 매개하는 형태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와 같이 ‘건강권’을 위한 비국가적 공공역량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미 현실에서 의료생활협동조합과 여러 지역단체들이 시도하고 있는 ‘건강한 마을 만들기 운동’ 등이 그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영역을 보다 확장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원을 연계하고 집중하여 비국가적 공공역량을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여’를 통한 공공성은 민주주의와 관련해 핵심이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다. ‘국립서울대학교병원’이 공공병원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이유는 ‘소유’의 문제도, ‘기능이나 역할’의 문제도 아니었다. ‘공개와 참여’가 배제되고 소수에 의해 독점적인 운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는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공론화가 되지 않는 닫힌 구조였다. 이런 병원에서 ‘공공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공성’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합의를 만들어 가고, 투명한 공개와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며, 특정한 이익보다는 공통의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가치를 지닌다. 또한 이런 원칙 하에서 열려진 의사결정을 하며 이에 대한 일정한 책임을 서로 나눈다. 

이런 힘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무상의료’는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건의료서비스의 상업화, 상품화, 시장화 경향을 그대로 둔 채, 무상의료를 한다는 것은 성립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무상의료가 튼튼히 자리 잡을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무상의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현실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우리는 MB정부를 평가하고 심판한다. 그러나 특정 세력을 심판한다는 의미보다도 이번 정부 동안 우리 사회가 겪었던 일들 속에서 우리가 다시는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우리 사회의 전망과 연결하여 계획해야 한다. 그렇게 나온 표현이 ‘무상의료’이며, 이를 추진할 핵심적인 가치는 ‘공공성’일 것이다. 


‘공공성’의 시각에서 MB정부를 평가해 보자. 그리고 더 나은 의료제도, 모든 사람들이 건강할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을 ‘공공성’이라는 안경으로 바라보고 토론해보자. 이를 통해 우리는 2012년을 단지 ‘정치공학의 격전지’가 아닌 건강세상을 향한 출발선을 다시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만은 꼭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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