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03-01   566

[기획4] 코로나19의 교훈, 집이 기본이라는 것

코로나19의 교훈, 집이 기본이라는 것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집이 생명과 안전의 보루라는 점을 지금처럼 명확히 보여주는 때도 없다. 작년 말 만난 한 홈리스는 마스크 끈의 장력을 이기지 못해 한쪽 귀가 찢 겨 있었다. 만화방에서 지내는 그는 귀에 상처 밴드를 붙이고 마스크를 다시 쓰는 수밖에 다른 도 리가 없었다. 마스크를 벗어도 좋을 만큼 타인과 거리를 둘 안전한 공간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집에 돌아오면 마스크가 주는 긴장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다시 마스크로 무장하고 타인과 접촉한다. 긴장과 이완이 교차 하기에 우리는 지루하게나마 이 코로나 시기를 건너고 있다. 

서울역 노숙인시설 발 집단 감염 

1월 17일과 18일, 서울역 노숙인시설 실무자가 각 각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이 시설을 이용하는 거리 홈리스들에게 집단 감염이 발생하였다. 지표환자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약 보름 만에 해당 시설 발 확진자는 80여 명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확진 거리 홈리스는 약 100여 명에 달한다. 서울지역 거리 홈리스의 규모가 1,135명으로 파악됨을 볼 때1) 서울지역 거리홈리스의 약 10%가량이 코로나19 에 감염된 것이다. 인구 대비 이렇게 많은 감염자가 발생한 집단이 또 있을까. 서울시는 1월 26일 부터 29일까지 해당 시설과 이 시설에서 운영하는 응급대피소(70명 정원의 일일 응급잠자리)의 운영 을 중단하였다. 임시선별검사소, 별도의 ‘찾아가 는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노숙인시설 전수 검사를 실시하고, 2월 9일을 시작으로 2월 한 달 간 ‘거리 노숙인 대상 야간 선제검사’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노숙인시설 방역관리 강화 지침(2. 5.)’을 시행하고 ‘일시보호시설대상자, 거리노숙인, 쪽방거주자, 시설 종사자’ 중 10,971명을 검사하여 총 114명의 확진자를 발견하였다. 2월 1일부터는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단위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했다. 결과통지 수단인 휴대폰이 없는 이들은 노숙인시설을 통해 ‘검사 결과 확인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서울시의 방역 대책은 빨랐다. 확진자가 급증하자 급히 공지문을 출력해 출입문에 붙이고 이용자들을 내보냈다. 휴대폰이 없는 이들을 위한 ‘검사 결과 확인증’ 방식도 도입하였다. 그동안 서울역 앞 중구 선별검사소는 휴대폰이 없을 경우 타인의 번호를 활용하는 것 외에는 이용할 수 없었다. 급한 경우 활동가가 당사자와 동행해 활동가의 번호로 검사를 받고, 결과를 통지 받게 했다. 하지만 1인 1번호를 특정하는 방식이라 동시에 여러 명을 검사 받게 할 수는 없었다. 휴대폰이 없는 많은 홈리스들은 접근성 좋은 서울역 광장의 검사소가 그림 의 떡일 뿐이었지만, 서울시는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던 터 집단 확진이 발생하자 검사의뢰, 검사결과 확인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그것도 서울역 선별검사소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용산역 광장 등 군소 노숙 밀집지역 검사소는 여전히 휴대폰이 있어야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깟 거리가 대수냐 할 수 있지만 교통비 지불능력에 따라 거리의 체감과 생활반경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차별과 침해 부추긴 서울시 

“노숙인 ‘확진’ 받아도… 격리-역학조사 어렵고, 잠적 땐 ‘시한폭탄’”, “확진 노숙인 찾아서 ‘서울역 삼만리’”. 서울역 노숙인시설 발 확진자가 늘어나자 여러 언론에서 홈리스를 잡도리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확진 판정을 받은 홈리스의 소재 파악이 안 돼 지역사회 전파가 우려된다는 내용을 시한폭탄 따위에 비유하며 선정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동선은 여전히 그들의 일상에 있었다. 행방이 묘연하다며 호들갑을 떨던 “나머지 1명”은 명동 일대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는 주 3회 민간단 체의 급식이 이뤄지는 때였다. 동선 파악의 문제라면 확진된 홈리스의 의도적인 이동이나 도피가 아니라, 휴대폰과 신용카드 같은 접근 매체가 없다는 것에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홈리스들은 이것들을 소지ㆍ유지하기에 경제력이 크게 빈약하다. 언론을 통한 혐오는 서울시의 태도로 예기된 것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거리 홈리스들 중 확진자가 늘어나자 서울역 노숙인시설의 운영을 4일간 중단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는 노숙인시설 발 확진자 발생으로 대다수의 실무자가 입원 또는 자가격리하게 됨에 따라 한시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서울시는 “만취 노숙인을 상담지원하는 과정에서 대체인력 포함 시설종사자 8명이 추가로 자가격리”와 같이 거리 홈리스를 감염원 취급하는 내용을 포함하였다.2) 서울역 발 집단 확진의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았고, 지표환자도 거리 홈리스가 아닌 상황에서 부당하고 불필요한 언급이었다. 마치 집단 확산의 책임이 거리 홈리스에게, 음주와 같은 그들의 생활 특성에 있는 것처럼 암시하는 서울시의 보도자료 이후 ‘시한폭탄’류의 보도가 뒤따랐다. 거리 홈리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던 서울시는 정작 가용한 정책을 사용하는데 게을렀다. 밀접 접촉자 중 ‘주거형태상 격리 불가능한 경우’ 숙박시설 등 을 활용한 ‘서울시 임시생활시설(격리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연히 거리 홈리스의 경우 이에 해당하나, 서울시는 집단 감염이 시작된 지 11일이나 지나서야 밀접 접촉자들을 임시생활시설로 이송하였다. 단체들의 항의와 국가인권위의 일시보호시설 조사가 진행된 직후 이뤄진 조치다. 그전까지는 소변통조차 없는 컨테이너 박스에 격리하거나 세탁실 내지 일시보호시설 자체를 집단 격리장소로 운영하였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코로나19 지침’(2020. 4. 27.)을 통해 정부가 “낙인 씌우기,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에 빠르게 대응하여 “코로나19 대응이 특정 사람들을 폭력과 차별에 더 취약하게 만들”지 않게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3) 그러나 서울시는 스스로 차별을 낳고 취약함을 고착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말았다.

 

<사진 4-1> 2021년 2월 초, 서울역 노숙인 시설에 붙은 공지사항.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이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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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홈리스행동 

집단 시설 고집하는 서울시 

“이러한 전염병에 직면하여, 적절한 주택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홈리스에 대한 잠재적인 사형 선고이며, 더 많은 인구를 계속 위험에 처하게 한다.”4) 작년 4월, 주거권 특보가 홈리스에 대한 ‘코로나19 지침’(2020. 4. 28.)에서 한 지적이다. 유 엔 인권최고대표도 위 지침(2020. 4. 27.)을 통해 “부적절한 주거에 사는 사람들과 홈리스들에 대한 좋은 실천 사례는 … 기본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주거를 긴급히 제공하는 것”이라 강조하였다. 인 권사회단체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홈리스행동 은 성명(2021. 1. 27.)을 통해 “모든 거리 홈리스에 대해 필수 공간을 전용할 수 있는 임시주거지원 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빈곤사회연대도 성명(2021. 1. 28.)을 내고 “주거는 최소한의 방역 지침을 준수하기 위한 보편 권리다. 당연히 취해 야 할 조치를 방임하는 현재의 상황은 재난의 불평등을 강화한다.”라고 질타하였다. 인도주의실 천의사협회 등 9개 보건의료단체들은 연대성명 (2021. 2. 2.)을 통해 “밀집시설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검사량을 늘려도 집단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 … 방역지침을 지킬 수 있도록 노숙인에게 ‘머물 수 있는 집’”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21 개 인권단체들도 연대성명(2021. 2. 3.)을 내고 “모든 홈리스에게 주거공간을 지원할 수 있는 보편적 홈리스주거지원계획을 수립하라”고 요구하였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도 성명(2021. 2. 18.)을 내고 “시설입소가 아닌 주거지원으로 코로 나 시기 거리홈리스 집단감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울특별시인권위원회는 ‘긴급성명’ (2021. 2. 2.)을 통해 “현 상황에서 노숙인 보호 대책은 소위 3밀 주거시설이 아니라 독립적인 위생 설비를 갖춘 개별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주거가 방역의 핵심임을 각계가 주장했지만 서울시의 대응은 일시보호시설 내 응급잠자리의 운영 을 중단하는 것에 그쳤다. 서울역에 설치된 응급 잠자리는 현재 운영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해당 시설발 확진 사례가 잦아들고 있어 곧 운영이 재 개될 것이다. 집단 감염의 불씨는 여전히 남은 셈 이다. 서울시는 이번 겨울철 대책으로 독립 주거 제공이 아니라 집단 숙박형태의 응급잠자리를 서 울역 일대에 5개소 367명분, 영등포역 일대에 4개 소 333명분을 설치하였다. 매년 반복되는 대책으로 코로나19 상황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들 잠자리 대부분은 십여 명에서 많게는 70명이 함께 잠을 자야 하는 공간으로, 거리두기를 한다 하더라도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20년, 서울시는 코로나19로부터 홈리스들을 지키기 위 한 별도의 주거 정책이나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 다. 올해 역시 이를 위한 예산과 정책은 없는 상태다. 게다가 거리 홈리스들에게 쪽방과 고시원 같은 저렴한 주거를 제공하는 임시주거지원은 가장 추위가 심한 1월에는 예산이 교부되지 않아 시설들에서 외상거래를 하는 편법을 동원해야 했다. 10년 넘게 지속된 관행이다. 하필이면 추위가 가장 극심한 1월에 주거 진입을 위한 대책이 멈춘다. 주거의 필요성이 더없이 큰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는 변하지 않았다. 서울시 노숙인 복지 주무부서는 예산과와 협의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다 한다. 서울시가 홈리스 정책에서 ‘주거’의 비중을 어떻게 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고시원, 쪽방… 방역에 취약한 홈리스의 거처 

<사진 4-2> 2020년 12월 말, 동자동의 한 쪽방에 붙은 쪽방상담소의 안내문. “본 건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 하여 이동제한을 요청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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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동자동 사랑방 

 

1월 29일 동대문구 소재의 한 고시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후 일주일 사이 감염자가 15명에 이르렀다. 해당 고시원은 개별 필수공간이 보장된 소위 ‘텔’급이 아닌, 주방과 화장실, 세면장 등을 공 유하는 염가 고시원이었다. 서울역 노숙인시설 발 집단 전파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으나, 이 역시 주거 특성에 따른 집단 전파로 주목해야 하는 대목 이다. 쪽방과 염가 고시원은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화장실과 세면장과 같은 필수설비는 다 공용이다. 부엌은 공용이거나(고시원), 아예 없는 경우(쪽방)가 많 다. 주거급여 수준으로 입주 가능한 곳은 대부분 창이 없는 먹방이다. 복도는 좁아서 두 사람이 교 차할 경우 신체접촉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거처에 사는 이들은 타인과의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며, 이런 특성을 고려한 방역대책이 마련돼 야 한다. 그러나 방역당국의 대책은 그렇지 않았 다. 작년 6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ㆍ중앙방역 대책본부는 ‘쪽방촌 방역 지침’과 ‘고시원 방역 지침’을 발표하였다. “창문을 상시 열어두고”, “다수 가 식사하는 경우는 되도록 피하고”, “공용 공간 이동은 최대한 자제하기” 등과 같은 내용이 다수 였다. 독립 주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공급자나 행정당국에 대한 조치는 없었고, 대부분 이용자들 에게 지킬 수 없는 규칙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지침은 무용지물이다. 그럼에도 노숙인시설 과 달리 구분된 방실이 있어서인지 이들 공간에서 대규모 집단 전파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할 뿐 이들 주거특성을 고려한 당국의 대책은 전무했다. 9월 말 동자동 쪽방 주민 중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용산구청 측은 주민 들에게 이동을 자제하라고 할 뿐 별 대책이 없었다. 동자동사랑방 등 자치단체와 주민들은 임시 선별검사소를 설치하고, 서울시가 여름철 대책으로 시행했던 숙박시설을 이용한 ‘안전숙소’를 제공 할 것을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쪽방상담소는 추석 위문품을 나눠준다며 쪽방 주민들에게 긴 줄을 서게 했다. 심지어 밀접접촉자 로 분류된 이들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긴 마찬가지였다. 한 정신의료기관은 쪽방 주민 A씨가 보건소로부터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었다는 통보를 접하자마자 바로 퇴원시켜 버렸다. 입원할 때는 별도 격리 공간에 체류시키며 신속 항원검사와 PCR검사를 받게 한 후 병동에 배치하더니, 밀접접촉자 로 분류되자마자 퇴원시켜 버린 것이다. 병원에 별 도 격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보건소 역시 아무 손도 쓰지 않았다. 여러 단체의 활동가 들이 중앙방역대책본부, 서울시, 용산구, 용산구 보건소, 개별 공무원 등에게 연락하며 안전한 격리 공간 제공을 요구했지만 A씨는 4일 동안이나 쪽 방에 홀로 있어야 했다. 화장실, 세면장 등 방 말 고는 일상생활을 다 공유해야 하는 그곳에서 말이다. 어쩌면 쪽방 밀집지역에서 동대문 소재 고시원 과 같은 집단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크나큰 행운일지 모른다.

주거를 권하다 

밥, 잠, 씻기… 일상을 꾸리기 위해 거리 홈리스들은 매주 1회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 거리 홈리스들을 만나면 열 번 이상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는 이가 수두룩하다. 혹은 “‘따스한채움터’(시립 실내급식장)는 안 간다.”라는 등 서비스 이용 을 포기한 이들도 상당하다.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는 이제 홈리스들에게 있어 식권이고 숙박권 이고 시설 이용권이 돼 버렸다. 당국이 집합적 서비스 제공을 고집하기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 기구들은 팬데믹 시기는 물론 훨씬 이전부터 주거를 중심으로 홈리스 정책을 재편 할 것을 당국에 권고해 왔다. 한국 정부는 유엔 사회권규약 비준 이후 네 차례 진행된 심의에서 모두 홈리스 문제에 대한 우려와 권고를 받았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4차 최종견해는 한국의 주거 정책을 우려하며, 홈리스 개인을 위한 장기적 해결책 을 추구할 것을 권고하였다. 유엔 주거권특보는 2019년 한국 방문보고서를 통해 “쪽방, 고시원, 여관, 비닐하우스와 같은 기준 이하의 주택이나 노숙인시설 및 거리에서 생활하는 취약계층에게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적정 주거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미흡”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정부는 “홈리스가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주거지에 접근을 보장”할 것을 권고하였다.5)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주거대책의 강조를 이어왔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노숙인 인권상황 개선 관련 정책권고’를 통해 복지부와 국토부에 “노숙인에 대한 지지주택(Supportive Housing)이 공급될 수 있도록 추진할 것”, “주택종합계획에 노숙인 주거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6) 또한 2019년에는 ‘비적정 주거 거주민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통해 “「주거취약계층 주거 지원 업무처리지침」에 따른 주거지원 공급물량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도별 목표치와 실행 계획을 수립할 것”, “적정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고시원의 최소면적 및 시설 기준 등을 마련하고, 이 기준에 미달되는 고시원은 임대료 상승을 수반하지 않는 개량 사업 등을 통해 기준 미달 고시원을 점차 개선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권고하였다.7) 그러나 이러한 국내외 인권기구의 권고는 좀체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주거 우선 

홈리스 문제를 먼저 겪은 나라들은 정책의 핵심을 주거 우선’(Housing First)에 두었다. 주거 우선 은 홈리스 상태를 겪는 이들에게 영구 주거를 제공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홈리스 지원 접근법을 말한다. 주거를 제공하기에 앞서 겪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먼저 해결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주거를 제공받은 이들은 응급서비스와 임시 시설 등을 거의 이용하지 않게 되어, 일반적으로 이 정책은 비용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8) 핀란드는 2008년부터 ‘주거 우선’에 기초한 홈리스 정책을 꾸준히 진행했고, 현재 유럽에서 홈 리스 숫자가 줄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 보고되고 있다. 핀란드의 홈리스 숫자는 1987년 약 19,000 명에 이르렀으나 2019년 연간 조사 결과 5,280명 의 홈리스(단독 4,600, 가족 264)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9) 우리나라는 ‘주거 우선’에 부합한 홈리스 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서울시가 해당 원칙에 입각하여 주거유지지원서비스가 함께 제공되는 ‘지원주택’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 역시 시설의 추천서와 진단서, 서비스 수용 계획 등의 조건이 우선한다. 연간 60호의 물량으로, 정신질환ㆍ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만성홈리스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권리보다 조건이 앞서는 것이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총 280호의 지원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나, 서울시의회의 연구용역에 따르면 2022년까지 총 1,200호, 쪽방 주민을 포함할 경우 최대 2,001호가 필요한 것으로 추계되었다.10) 적정 물량으로 구현되는 정책 의지가 없는 한 ‘주거 우선’이란 선언은 무력하다. 국토부 훈령에 따라 고시원ㆍ쪽방 주민 등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역시 훈령이 정한 공급량을 크게 밑돈다. 그나마 2019년부터 전년 대비 2배 이상 물량이 증가하였으나 늘어난 대부분은 전세임대주택으로, 사실상 임대주택을 늘리 지 않고 임대료 보조만 늘린 격이다.11) 유엔 주거권 특보는 앞서 언급한 지침을 통해 “우리 모두의 안녕은 ‘집에 머물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음을 드러낸다.”라고 하였다. 코로나19를 넘기 위해서는 집단 면역 못지않게 모두의 주거권 보장이 결정적이라는 지적이다. 코로나 위기, 특히 서울역 노숙인시설발 집단 감염은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은 이들에게 재난이 어떻게 편중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수없이 강조되었던 주거 중심으로의 홈리스 정책 재편이라는 과제를 미룬 당국의 책임을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이들이 떠안고 있다. 한 편에 시설, 한 편에 주거를 취하는 어정쩡한 방식으로는 코로나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시설을 버리고 주거를 택해야 한다.

 


1) 서울특별시, 2020. 11., 2020년 겨울철 노숙인ㆍ쪽방주민 특별보호대책.
2) 서울특별시, 2021. 1. 26., 서울역희망지원센터, 시설 내 확진자 발생으로 4일간 비상운영.
3) https://www.ohchr.org/EN/NewsEvents/Pages/COVID19Guidance.aspx
4) https://www.ohchr.org/Documents/Issues/Housing/SR_ housing_COVID-19_guidance_homeless.pdf
5) 주거권 실현을 위한 한국 NGO 모임, 2019.3. 5.,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의 구성 요소, 그 맥락에서의 차별없는 권리에 관한 주거권 특별보고관의 보고서.
6) 국가인권위원회, 2013. 1. 9., 노숙인 인권상황 개선 관련 정책권고.
7) 국가인권위원회, 2019. 12. 31., 비적정주거 거주민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
8) National Alliance to END HOMELESSNESS, 2016.4., FACT SHEET: Housing First.
9) FEANTSA, 2020.11., FEANTSA COUNTRY FICHE: FINLAND.
10) 민소영(2019), 서울시 지원주택 공급확대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서울특별시의회.
11) 2020년 8월 기준, 매입임대는 555호, 전세임대는 2,768호이다(출 처: 국토교통부, 2020,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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