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UP] 무거운 숙제를 안고 쪽방을 떠난다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 릴레이 체험 후기



민주당 국회의원 최영희


푹푹 찐다. 새벽녘에는 조금 시원할까 생각했는데 아니다. 다른 쪽방들도 아직 잠못들어 TV 소리가 꺼질 줄 모른다.  별로 감출 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는 사람들이라서 문들을 다 열어 놓고 더위를 이겨보는데, 나는 낯설고 또 뭐 그리 잃어버릴 것 많다고 문을 잠그고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이 쪽방을 떠난다. 무거운 숙제를 안고…


어제 아침 10시, 삼선동 성곽 밑의 아름다운 동네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멘트 계단, 계단, 계단을 올라 1970년대 초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 난 그곳에서 1971년의 ‘나’를 만났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비참한 삶을 사는 주민들 뿐 아니라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을 하는 어린 남녀대학생들이다.  1970년, 대학교 2학년 때 전태일의 죽음과 그가 남긴 우리의 폐부를 찌르던 말들… 그리고 이듬해 한국사회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공장으로 빈민촌으로 한달짜리 체험이었다. 인천의 대표적인 빈민촌이었던 만석동, 북성동.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판자촌 다락방은 더위는 참겠는데 쥐벼룩이 너무 많이 나를 물어 온몸이 붉은 반점이었다. 같이 자는 동일방직에 다니는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데…그 훈련은 나의 인생을 바꾸어놨다. 그리고 나는 노동운동에…


삼선동에서 체험활동하는 이 젊은이들이 한끼 2100원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다. 이들이 닦아 놓은 인맥, 기초생활수급 노인들, 반찬배달을 받는 노인들과 만나 온갖 기구한 사연들을 듣는다.  무거운 마음으로 동자동에 온 바로 이 쪽방. 좁고 어두워 계단이 꼬꾸라지기 딱 좋은 곳이었다. 더듬더듬 올라선 4층방. 월세 20만원 짜리 란다. 양은냄비, 작은 양푼 각1개, 그리고 양재기 3개. 정겨운 그릇들이다. 쌀 2컵을 1600원에 사서 바로 씻어 밥솥에 앉혔다. 시장을 찾아 반찬을 사야한다. 골목의 작은 슈퍼에 가니 쪽방촌 사람들을 위한 반찬거리들이 있다. 다행히 얼갈이 배추와 열무를 섞어 담은 김치가 한 보시기에 2000원이다. 수북히 담아주어 제법 많다.


좋다. 김치찌개로 세끼 해결이다. 참치 캔 하나를 보태니 4000원이 날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꽁치캔은 양도 많은데 우리 동네에서는 천원이던데 꽁치로 살걸 그랬나’ 하고 후회가 됐다. 내 손에 남은 것은 단돈 700원 뿐이기 때문이다. 김치찌개를 싱겁게 해서 밥에 말아 먹어야 한다. 국물을 쪽 따르고 물을 넉넉히 부어끓이니 냄새가 끝내준다. 밥솥에서는 김이 난다. 양푼에 밥과 찌개를 넉넉히 넣어 구경꾼들에 게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먺었다. 역시 인심은 곳간에서 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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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길가다 보면 허리 꼬부라진 노인들이 폐지줍는 모습이 많이 보였었다. 모자라는 생계비를 보충하려는 몸부림이리라. 참여연대에 부탁해 폐지줍는 노인들과 함께할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갈월동 사회복지사의 안내로 할머니를 만났다. 점심 든든히 먹었으니 2시부터 한 대여섯시까지 하면 되겠다 했더니, 85세의 이 할머님은 힘이 없어 밀려서 자기 영역과 공급처를 확보하지 못하셨단다. 그래서 밤 11시쯤 골목마다 쓰레기를 들고와 버리는 곳에 가서 새벽 2~3시까지 줍는다는 것이다.


85세 노인은 손목도 부러져 심을 박았고, 허리 다쳐 누워있는 날, 지저분한 쓰레기통을 매일 뒤지다가 패혈증으로 쓰러져 죽다 살았다는 인생살이 얘기가 가슴 아팠다. 오늘은 제가 도와드리겠다니 더러워서 절대로 못한다고 한사코 말리셨다. 11시로 약속하고 나온 후 수급자 할아버지, 자식이 8명이지만 폐지 수집과 공공근로로 사신다는 할아버지들의 쪽방을 찾았다.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지하 쪽방은 “어찌할꼬” 쏘리가 절로 나왔다. 속상하니 이 방은 담배연기만 가득하다.


머리 속으로는 온갖 정책이 왔다갔다 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얼마나 높은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만든지 10년이 되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준비중이었다. 닷새 후에 공청회가 잡혀있다. 다시 쪽방으로 향하다가 마지막 남은 700원으로 물 한 병을 사야겠기에 슈퍼에 들리니 500원이란다. 아~ 200원이 남는다. 살림을 잘 한건가?^^


5시 정각에 쪽방으로 허선 교수님이 찾아 오셨다. ‘비수급 빈곤층’ 대책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다. 소위 차상위계층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 ‘차상위’라는 용어에 갇혀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를 이 체험을 통해 정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론이 있을 수 없었다. 주거 대책 등을 긴 시간 논의 후 다시 김치찌개에 밥 말아 먹고 눈을 좀 붙였다가 11시에 할머니댁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너무 더워 도저히 잠이 안 온다. 그냥 찜질방에 땀빼러 들어온 것과 똑같다. 문을 열고 잘 수도 없지 않은가! 염치 불구하고 열어 봤다. 담배연기만 들어온다. 뒤척이다 일어나 할머니댁으로 향했다.


불은 켜졌는데 할머니 기척은 없다. 잠자는 옆집들 깰까봐 조심스럽다. 한사코 말리던 할머니가 미리 혼자 가신 것 같다. 끌고 다니는 폐지 손수레가 없다. 할 수 없이 술판이 벌어진 복덕방, 슈퍼에 가서 쓰레기 집하장이 어딘지 물었지만 모른단다. 윗쪽이라던 할머니 말씀을 더듬어 무조건 위쪽으로 올라가 뒤지고 다녔다. 찾았다. 가로등도 꺼진 쓰레기 더미에서 할머니 혼자 일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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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폐지만 줍는게 아니다. 우유팩, 헌 옷, 가방, 플라스틱, 박스, 빈병 등 옛날 난지도 쓰레기장에서
골라내듯 찾아내셨다. 늦은 밤 동네 어귀에 쓰레기 차가 못들어가는 집들이 내다버린 모든 쓰레기를  다 뒤지시는 것이었다. 작은 종이 한장, 우편물 봉투 한 장도 다 모으셨다. 오늘은 수확이 좋단다. 이불도 석 장이나 되는데 한장을 내가 가기 전에 어떤 할아버지가 가져가 버리셨단다. 대충대충  분리해서 큰 자루나 비닐봉지에 담고, 밑에 박스를 펴서 깔고 잘 쌓아서 묶었다. 묶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시다.


문제는 이 내리막길을 어찌 가느냐이다.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데 오늘은 내가 같이 잡지만 초등학생 같은 작은 몸의 85세 노인에겐 보통일이 아니다. 할머니는 노하우가 있었다. 이런 길은 앞에서 끌고, 이런 길은 손잡이를 위로 해서 잡아 당기며 가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옮기셨다. 하지만 너무 가파른 길은 둘이 붙었어도 위험천만이었다. 매일, 이 심야에 할머니는 생존을 위한 진짜 사투를 벌이시고 계신 것이다. 정리하려는 것을 돕겠다니 가쁜 숨을 몰아 쉬시며 내일 다시 분류하신단다. 이렇게 매일 모은 것으로 얼마를 버느냐고하니 적으면 14000원에서 많으면 50000원 까지란다. 한달에…


동이 텄다. 문을 좀 삐죽이 여니 바람이 통한다. 옆집 모텔은 ‘시설완비’ 네온싸인으로 밤새 번쩍대더니 벌써 꺼졌다. 그래도 공동화장실이 조용해졌을 때 물수건 목욕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 살살 갔더니 팬티만 입은 아저씨가 대충 씻고 나오다가 마주쳤다. 방마다 대충입고 있는것을 이미 본터라 아무렇지도 않은데 남자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나와 마주치니 그 분이 깜짝 놀란듯하다. 어두워서 내 얼굴의 주름살을 못 봤나 보다.


수건에 물을 묻혀 방에서 약식 목욕을 하니 그래도 시원하다. 기화열을 내보냈으니 잠도 살짝 잤다. 이제 남은 것으로 아침을 먹고 다음 사람을 위해 정리한 후 이곳을 떠난다. 이 방에는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내는 엽서가 놓여있다. 분홍바탕에 흰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다. “WATCHING YOU. 우리는 요구합니다. 최저생계비는 올리고, 부양의무자 족쇄는 풀고” 내 가슴에도 이 엽서의 글귀가 새겨졌다. 내 등에 꽂혀있는 국민의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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