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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22
  • 2022.03.01
  • 358

[기획1] 한국 사회 균열의 구조적 변화: 갈등의 제도화를 향하여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 사회학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쓸며 한국의 불평등이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2021년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또다시 한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이 알려졌다. 어떤 사람은 ‘한류’의 성과라고 흥분하지만 다른 사람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두 영화는 극심한 불평등으로 분열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를 던지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에는 1960년대 ‘한강의 기적’ 이후 중산층 사회를 건설했다는 믿음과 달리 ‘박 사장’가족과 ‘기택네’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균열이 그려진다. 박 사장이 말하는 ‘선’은 계급의 경제적 구분이자 ‘냄새나는’ 문화적 구별이 되었다. 계급의 불평등과 함께 열등한 사람을 무시하는 분열의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논란이 되고 있는 ‘갑질’과 여성 혐오도 사회적 균열과 격차가 만든 질병이다. 이렇게 사회의 분열은 사회적 삶의 세계를 추악하게 만들고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사회적 균열 구조의 변화

좋든 싫든 모든 사회의 균열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동시에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균열과 갈등을 줄여야 한다. 어쩌면 이는 현대 사회의 숙명이자 모든 사회적 삶의 근본적 조건이다. 만약 사회의 균열과 갈등을 완화하지 못한다면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고대 아테네의 솔론과 고대 로마의 호민관으로 농지개혁을 추진했던 그라쿠스 형제는 사회적 분열을 통합시키려는 정치적 노력의 사례이다.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도 모두 사회적 대립과 갈등의 결과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도 사회적 균열에 따라 발생한 대립과 충돌의 표현이다. 오늘날에도 사회의 균열과 갈등은 현대 정치와 사회적 세계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학자들은 사회적 균열을 계급, 소득, 직업 등 계층 차이에 의한 결과이거나 젠더, 세대, 종교, 이데올로기로 발생한 사회의 분열로 인한 대립적 구조로 정의한다. 역사적으로 한국 사회는 사회정치적 차원의 거대한 균열로 분리되었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와 민주화 세력 사이의 대립에 의한 정치적 균열과 산업화 과정에 만들어진 계층적 균열이 대표적이다. 독재 정부와 민주화운동의 정치 갈등과 노사 갈등이 점점 심각해졌지만, 군사정부와 재벌 대기업 체제의 압도적 우위가 유지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균열 구조는 새로운 양상을 보였다. 정치적 차원에서 지역적 균열과 이념적 균열이 부각되었으며, 사회적 차원에서 노사관계와 계층체계의 균열이 심각해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젠더, 세대, 민족, 소비, 라이프 스타일, 정체성 등 다양한 사회집단들의 사회문화적 균열이 부각되면서 매우 복잡한 균열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제 사회적 균열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대중 매체의 공론장 차원이 아니라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한 가상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인간의 모든 곳에서 서로 차이를 확인하고 경계를 짓고 균열을 만든다.

 

한국 사회 균열의 핵심 요소: 계층, 젠더, 교육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균열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계층 구조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소득 불평등의 증가와 함께 자산 불평등도 중요한 사회 균열로 부각되었다. 이외에도 교육, 소비, 건강, 여가, 문화의 불평등이 새로운 사회적 균열로 인식되었다. 사람들이 생산자보다 소비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하면서 소비의 불평등은 사회 집단의 균열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자동차, 쇼핑, 해외여행, 관광, 외식, 여가의 불평등은 불평등에 대한 주관적 체감을 증폭시켰다. 최근 다양한 여론조사 자료를 보면, 한국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020년 1월 한국방송(KBS)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66%가 소득 불평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각종 통계와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 임원의 연봉은 크게 증가했지만 중산층과 노동자의 소득은 정체되고 있다.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가격 격차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차이는 심각하게 벌어졌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 격차와 차별도 커졌다. 소득과 자산 불평등은 한국 사회를 ‘1등 시민’과 ‘2등 시민’이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누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의 사회적 균열에서 남성과 여성의 격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3월 발표한 세계경제포럼(WEF) <2021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156개국 중 102위로 나타났다. 156개국 가운데 성평등이 가장 잘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아이슬란드로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이어 핀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스웨덴 순이었고, 독일 11위, 프랑스 16위, 미국 30위, 중국 107위, 일본 120위 등으로 나타났다. 

 

19세기 유럽의 유대인, 20세기 미국의 동성애자처럼 21세기 한국의 여성은 커지는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등 시민으로 배제된다. 여성의 투표권과 대학 진학률은 남자와 평등해졌지만, 노동시장의 위치는 아주 불평등하다. 전체 여성의 절반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오직 3분의 1 정도만 정규직 노동자이다. 남성에 비해 임금이 매우 낮으며, 여성 10명 중 4명은 저임금 노동자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의 묘사처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많고, 여성의 가사노동과 돌봄의 부담도 크다. 젠더 불평등의 영역을 보면, 교육 104위, 건강·생존 54위, 정치적 기회 68위로 나타났으며, 경제적 참여·기회 부문 성 격차 지수가 123위로 가장 낮았다. 국회의원 및 고위·관리직 여성 비율도 15.7%로 세계 134위에 그쳤다. 

 

다음으로 주목할 사회적 균열은 교육 수준에 따른 계질서는 강력하고 입시 경쟁은 치열하다. 많은 교육사회학 연구를 보면 부모의 경제력이 높을수록 사교육에 투자한 돈이 더 많고, 학생의 성적은 더 좋았다. 부모의 경제력이 클수록 기타 4년제 대학보다는 서울 지역의 4년제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반대로 하위 계층에 속한 학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은 낮았다. 특히 상위권 대학 입학률은 사회의 불평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카이(SKY)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입학생 가운데 소위 ‘금수저 고교’ 불리는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 강남3구 일반고가 서울대 합격생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서울의 부유층이 많은 강남3구와 양천구 등 이른바 부자 동네의 일반고를 포함하면 ‘금수저 고교’ 비중은 더 많다.

 

교육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자본을 통한 불평등의 재생산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2015년 여유진 박사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에 따르면, 1975년 이후 출생자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더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중상층 이상과 하층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회적 지위가 그대로 세습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의 사회이동에 관한 인식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기회의 불평등이 결정된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학생들 사이에 이런 경향이 강하다. 이런 불만은 2019년 조국 서울대 교수 자녀 입학 논란과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군복무 논란에서 폭발했다. 부모 세대의 능력주의가 자녀 세대의 기회의 불평등을 만든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의 ‘세습적 능력주의’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에 의해 불평등한 계층 구조가 고정될 수 있다. 

 

사회 양극화와 중간계급의 몰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랫동안 ‘중간소득 계급’을 50~150%로 구분했으나, 2016년부터 75~200%로 변경했다. 2019년 OECD 보고서 <압박 아래서: 쥐어짜인 중간계급>을 보면,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중산층이 약 70%로 가장 높고 미국은 약 51%로 가장 낮다, 한국의 중산층은 약 61%로 OECD 평균 수준이다. 하지만 이 중 15% 정도가 과도한 채무로 허덕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낙수 경제학이 득세하면서 부자는 더 부유해졌지만 중산층은 몰락했다. 

 

주목할 점은 주관적 계층의식이 소득 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90년대 한국인 가운데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약 75%였는데 현재 50% 이하로 급감했다. 유럽에서는 60~70% 정도이고, 북유럽 국가에서는 약 80%, 미국에서는 45%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주관적 중산층이 급감하는 이유는 ‘추락의 공포’ 때문이다. 언제 회사를 떠날지, 자영업 상점이 문을 닫을까 불안하다. 사교육비와 집값 부담이 너무 커 불안이 크다.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까 두렵다. 중산층의 커져가는 불안은 한국 가장 심각한 사회적 질병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경제 세계화와 공장 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숙련 육체노동자가 감소하고 있다. 이제는 정보통신 기술과 인공지능의 확산으로 사무관리직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서비스 산업에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산별노조가 무력하고 기업별 단체교섭만 가능하기에 소수 대기업 노동자들만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는 거의 2배 정도이다. 불평등과 빈곤이 증가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중산층이 하위층으로 추락하는 이유는 일자리와 소득 이외에도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가 큰 영향을 준다. 공교육, 공공보건, 공공주택, 실업보험, 국민연금 등 복지제도가 취약해 중산층의 기반이 쉽게 흔들린다. 연금 사각지대와 낮은 소득 대체율이 노후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노인 빈곤율은 약 50%로 세계 최고이며, 노인 자살률도 세계 최고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약 10%로 OECD 최하위권이다. 미국의 2분의 1, 북유럽의 3분의 1 수준이다. 조세와 사회정책은 국회에서 결정하는데 정치권은 소수의 부자와 대기업의 입장에 기울어 있다. 정부의 감세, 공기업 사유화, 부자 편향 정책에 의해 불평등은 더욱 커졌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균열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 갈등의 변화와 새로운 특성: 복합 갈등

한국 사회 균열의 구조적 변화는 더욱 복잡한 사회 갈등의 양상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사회 갈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다. 2021년 1월 한국리서치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발표한 <2021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88.7%가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라는 응답률은 1.4%에 불과했다. 

 

사회 갈등의 영역별 응답을 보면,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83.2%), ‘못사는 사람과 잘사는 사람’(78.5%), ‘경영자와 노동자’(77.1%) 순으로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세대, 지역, 젠더 부문의 갈등 심화도 두드러졌다.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 갈등’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응답은 64.0%로 2020년(60.8%) 대비 3.2%포인트 증가했다. ‘수도권과 지방 갈등’은 62.9%, ‘남자와 여자 갈등’은 51.7%가 심각하다고 응답해 각각 5.5%와 5.8% 증가하였다. 

 

남녀 갈등은 2018년 49.5%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45.0%, 2020년 45.9%로 큰 변동이 없다가 2021년 51.7%로 반등해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1년 한 해 상승폭도 모든 사회갈등 가운데 가장 크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처벌 강화 등 젠더 이슈가 전면 부각되면서, 사회 갈등의 핵심 요소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사회 갈등의 주요 변화로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권위주의 시대는 사회갈등이 국지적 특성을 보였던 데 비해, 민주화 이후 전면적 차원으로 변화했다. 대표적으로 노사갈등은 기업 단위가 아니라 전국적 이슈가 되었다. 둘째, 경제와 통신 수단의 지구화와 함께 사회 갈등이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민, 난민, 한일 무역 갈등과 안보 갈등, 기후 갈등이 대표적이다. 셋째, 사회갈등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의 갈등뿐 아니라 정체성과 가치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동성애, 성차별 등 문화적 차이로 인한 다양한 사회 갈등이 생성되고 있으며, 환경, 쓰레기, 원전센터, 기후변화를 둘러싼 환경 갈등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회 갈등에 전면적, 지구적, 정체성 갈등의 성격이 혼합되면서 ‘복합 갈등’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 갈등의 원인을 단순하게 노사관계 또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갈등으로 환원할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산업사회의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노사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전통 사회의 토지 연고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갈등도 사라지지 않는다. 무모한 개발주의에 반대하는 환경 갈등이 증대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개발 이익을 추구하는 지역주의 갈등이 뒤섞여 있다. 세대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 세대 내 불평등도 매우 크다. 젠더 갈등의 증가는 문화적 가치의 충돌과 결합되어 혐오 범죄로 비화하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투게더>에서 묘사했듯이 현대 사회에서 폐쇄적 부족주의는 공동체를 위협할 수준으로 커졌다. 

 

다양한 사회 갈등은 서로 다층적으로 중첩되어 있으며 때로는 모순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산적, 개별적,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지역 정당 구조, 기업과 노동조합, 지역 주민들만으로는 복잡한 사회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전혀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치 거품처럼 터져 나온다

 

사회 갈등의 원인: 문화, 정치, 발전 모델의 효과

사회 갈등의 원인에 대한 해석은 이론적 관점에 따라 다르다. 먼저 문화적 요인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한국 사회가 압축 성장을 경험했기 때문에 과거의 권위주의 유산이 유지되면서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정치교육과 성숙한 시민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본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에서 북이탈리아가 남이탈리아보다 사회적 참여와 사회적 관계를 토대로 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화적 관점은 한국의 낮은 사회적 자본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고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강조한다. 

 

다음으로 사회 갈등이 정치적 요인에 의해 격화되고 있다는 주장은 정당과 정부의 무능과 비효율성을 지적한다. 우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자유선거와 정권 교체를 통해 민주주의가 정착되었지만 ‘민주주의 질’은 높지 않다. 브라질 정치학자 길레르모 오도넬은 <민주주의의 질>에서 신생 민주주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수의 정치 엘리트의 권한이 지나치게 큰 ‘위임 민주주의’가 출현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 선거 제도가 단순 다수대표제로 운영되면서 지역주의 정당이 유지되고 사회적 약자와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사회집단들이 서로 경쟁하고 이해갈등을 조정, 타협, 합의하는 민주적 정치 과정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위와 같은 문화적 접근법과 정치적 관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사회 갈등은 사회 구조와 발전 모델의 거대한 전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 시대에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는 시장과 시민사회를 통제하면서 보수적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민주화 이후 지역 갈등과 노사 갈등이 전면적으로 표출되었고, 다양한 이익 갈등도 급속하게 증가했다.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적 국가주의, 노동 배제 전략, 지역 불균형 개발, 환경 파괴적 개발주의의 발전 모델을 계속 추구하는 한 사회 갈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지구화, 정보화, 개인화가 이끄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전환을 경함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세계의 통합,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 개인들의 소통 방식의 변화로 인해 사회적 균열과 갈등은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했다. 새로운 지구적 탈산업사회에서 계급적, 국가적 균열 이외에도 젠더, 인종, 민족, 세대, 소비, 정체성, 라이프 스타일의 차이가 새로운 사회적 균열을 만들고 있다. 전통적 계급사회의 관점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다차원적 균열과 갈등이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소득, 직업, 계층의 구분으로 환원할 수 없는 새로운 불평등과 차별을 만들어냈고 사회정치적 갈등의 양상도 극적으로 변화했다. 과거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문제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사회 갈등은 나쁜 것인가?: 정당 정치의 중요성

현대 사회의 등장을 주의 깊게 관찰한 위대한 사상가들은 사회적 균열과 갈등을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점은 매우 달랐다. 칼 마르크스는 갈등을 긍정적인 요소로 본 반면, 에밀 뒤르켐은 부정적으로 해석했다. 막스 베버는 절충적 관점을 제시했다. 현대 사회학자들은 사회 갈등이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본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에 따르면, 사회 갈등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사회 갈등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기를 촉발하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고, 때로는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며 파괴적 결과를 만든다. 

 

1930년대 미국의 노사 갈등은 사회보장법을 제정하게 만들었고, 1960년대 미국의 인종 갈등은 시민권법안 통과를 촉발했다. 한국에서도 산업화는 새로운 계급 균열을 만들었지만 노동운동의 성장과 함께 사회적 약자들의 소득과 삶의 수준이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모든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더욱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사회 성원들의 대화와 토론을 보장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갈등 해결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갈등의 제도화’를 통한 갈등 관리는 사회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미국 정치학자 엘머 에릭 사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 주권>에서 갈등을 가장 넓게 사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정당 정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보통의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의 대안이 적다면 주권자로서 인민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권력을 강화하는 최선의 방법은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기능이며, 정당이야말로 정치의 핵심 조직이다. 대표적으로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민주당은 전통적인 지역주의 정치를 뛰어넘는 계층 연합의 정치를 통해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했다. 

 

사회 갈등은 지역, 종교, 소득, 직업, 젠더 등 우리가 집단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차이 때문에 만들어진다. 달리 표현하면 사회 갈등 없이 그 누구도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정당 정치가 사회 갈등을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하지 못한다면 인민 주권은 사실상 그 절반만 실현될 뿐이다. 정당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정당이 싸움만 한다고 비난하지만, 오히려 갈등을 표출하고 조직하고 동원하는 것이 정당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사회 갈등에 기반을 둔 정치 체제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 갈등을 조직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국가의 적극적 역할: 포용적 민주주의를 향하여

2016년 촛불 집회는 사회 갈등이 폭발하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사례이다. 그러나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사회 통합과 갈등 관리 능력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2021년 1월 발표한 한국리서치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20일 발표한 ‘2021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 차에 ‘갈등이 늘었다’는 응답자는 58.8%였다. ‘갈등이 줄었다’는 응답률(8.1%)의 7배 이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사회 통합 내지 갈등 관리 노력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의 갈등 관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2017년 26.5%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올라 이번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갈등의 제도화와 관리를 주도하는 정부와 정당의 역량이 중요하다. 한국의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원칙은 포용적 민주주의의 강화이다. 먼저 단순 다수대표제와 승자 독식 정치 대신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선거제도 개혁, 정당과 시민사회의 연계와 소통의 강화, 결선투표제와 대통령 권한 축소를 포함한 개헌을 통해 합의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국회에서 무조건 다수결주의 대신 엘리트, 대중, 여론조사를 활용한 다양한 숙의민주주의를 활용해야 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노사정 협의와 사회적 대화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도 보편적 시민권의 원칙에서 여성, 청년, 노인 등 사회적 약자, 실업자, 빈곤층을 배려하는 포용적 사회제도의 발전 없이는 사회적 분열을 제대로 막을 수 없다. 

 

20세기 초 영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토니는 “사회 제도는... 인간을 분열시키는 차이보다 인간을 통합하는 공통의 인간성을 가능한 강조하고 강화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를 통합하는 사회제도가 없다면 문명 공동체는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 갈등의 제도화가 중요하다. 포용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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