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1-10   2030

새로운 빈곤, 새로운 접근

‘신빈곤’의 등장배경

2000년대 한국에서 빈곤문제는 ‘신빈곤’ 이라는 용어로 압축된다. 새로운 빈곤(new poverty)이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과거의 빈곤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신빈곤인데, 그 새롭다는 요소가 매우 복합적이다. 신빈곤은 곧 ‘근로빈곤(working poor)의 문제’라고 치환하는 과정에는 복합적인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과거에 해결되었다고 믿었던 빈곤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빈곤이기도 하며, 절대적 빈곤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제기되고 있는 문제가 상대적 박탈이라는 의미에서, 혹은 해결되었다고 믿었던 절대적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 제기되는 빈곤은 ‘상대적 빈곤’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빈곤이기도 하다. 또한 그러한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제기되는 배경에서는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혹은 공장산업에서 지식산업으로, 변화하는 사회구조가 새롭게 제기하는 빈곤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빈곤이기도 하다.

서구사회에서 새로운 빈곤, 즉 신빈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시기는 1980년대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실업의 증가, 복지국가에 대한 합의의 붕괴, 정부개입의 실패와 시장의 효율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의 등장, 사회보장의 축소와 복지국가의 재편이 논의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서구 복지국가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고용감소와 실업의 증가를 경험하였으며, 이에 따라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특히 청년실업과 만성적인 장기실업은 몇몇 국가들에서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전후 복지국가 출범이후 해결될 것으로 믿었던 빈곤이 다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신빈곤 현상의 공통점

제기되는 문제의 심각성의 정도, 표현하는 용어의 차이,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영역에서 등장한 새로운 현상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빈곤인구를 구성하는 인구학적 특성이 변화하였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복지국가 체제에서 빈곤인구는 노약자, 폐질자, 장애인, 아동 등 노동시장에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나, 1980년대 이후 근로능력이 있는 청장년 실업자와 부양아동을 지닌 여성 및 편부모 가장들의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또한 과거에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피고용자와 자영업자에 속하는 빈자의 수가 증가하였다.

둘째, 새롭게 빈곤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들의 일부는 일자리를 찾고 있거나 부분적으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계층으로서 소위 근로빈곤(working poor) 계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거나,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취약계층이기도 하며, 일부는 만성적인 실업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사회적 배제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집단들은 노동시장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배제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영구적으로 배제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셋째, 새롭게 등장한 빈곤집단들은 전통적인 복지국가 체제에서 사회보장의 가장 주요한 전략인 사회보험방식으로 대응이 불가능하거나 대응에 실패한 집단들이다. 이들은 사회보험체계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실업자이거나, 실업보험에 의한 급여기간이 초과되었거나, 혹은 취업과 실업의 반복으로 실업보험급여 자격을 상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형태의 사회적 서비스가 없다면 공공부조 급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빈곤계층으로 전락하게 되며, 이에 따라 몇몇 국가에서는 공공부조에 의존하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유럽연합에서 활동하는 몇몇 비평가들은 이렇게 급증하고 있는 집단들을 ‘새로운 빈민’으로 언급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집단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과 경험의 형성과정이 과거 세대의 인생주기의 사건으로 비롯되는 예측 가능한 빈곤과는 다른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빈곤의 등장 배경 – 구조적 요인

새로운 빈곤이라는 용어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기존의 빈곤과는 그 양상과 특성이 상이하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빈곤이다. 노동시장에 참여 가능하고, 참여할 의사가 있으나,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빈곤한 상태이거나, 노동시장에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으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소위 근로빈곤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둘째, 기존의 빈곤대책으로 대응이 어렵고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빈곤이다. 신빈곤 집단은 빈곤을 예방하고 빈곤을 근절할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보장하리라 기대되었던 복지국가체제에서 기존 시스템의 실패를 웅변하고 있는 집단이다. 특히 복지국가 체제에서 가장 주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보험 기제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집단이다.

새로운 빈곤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서구 산업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라는 요인이 자리 잡고 있는데, 다음의 두 가지 변화로 설명된다. 많은 사회정책분석가들이 지적하는 변화의 큰 흐름 중의 하나는 서구 산업사회가 탈산업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량의 미숙련 노동자들을 고용하던 공장산업들이 사양 산업화되고,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은 지식산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함으로써, 숙련된 소규모의 노동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요구되는 사회로 산업 및 노동시장구조가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전제가 되었던 공장산업을 통한 대량고용과 완전고용이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한 구조로 변화되고 있으며, 정규직의 남성노동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시스템에 부응하는 사회보험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분야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둘째, 기술 발전과 전자 통신 및 교통의 발달로 일국단위의 경쟁과 소통이 점점 지구적 차원의 소통과 경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 더욱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지구화는 서구 선진산업사회가 탈산업사회로 급속하게 진입하도록 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지구화와 세계적 경쟁의 심화, 그리고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의 변화 두 가지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새로운 빈곤’이라는 현상의 구조적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지구화와 세계적 경쟁의 심화, 탈산업화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라는 거대한 구조적 요인에 한국사회가 예외적으로 비켜서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계경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하여 이러한 요소들은 타 국가에 비해 한국에 더 강하게, 또는 적응의 시간적 여유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압력에 적절한 대응을 못한 결과 1990년대 후반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고, 외부로부터 강제된 변화는 한국사회에 과도한 긴축과 구조조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고용의 불안정을 적절한 수준 이상으로 심화시키고, 고용불안정 계층의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한국의 ‘신빈곤’의 특징

199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소득증가와 절대빈곤의 감소경향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일시에 붕괴되었고,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빈곤’이라는 현상이 전면에 부각되게 된다. 그러나 서구와 비교할 때 한국의 ‘신빈곤’은 몇몇 지점에서 상이한 특성과 정책적 딜레마를 부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서구에서 신빈곤은 구빈곤을 제거하기 위한 ‘복지국가 체제’가 구축되고 이러한 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사회보장체계가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등장한 새로운 빈곤이라는 점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사회보장체계가 성숙되기 전에 새로운 모색을 해야만 하는 신빈곤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서구에서 빈곤 대책은 이미 절대적 빈곤의 근절을 넘어서서 상대적 박탈과 불평등의 해소, 즉 상대적 빈곤이 정책의 대상으로 설정되는 경험을 상당기간 거쳐 왔다. 새로운 빈곤과 근로빈곤 집단은 이미 중위소득 50% 이하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우 상대적 빈곤 개념이 정책과제로 확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신빈곤과 노동빈곤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정책현실에서 빈곤계층을 겨냥하고 있는 공공부조제도가 상정하고 있는 목표 집단은 절대빈곤계층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노동빈곤의 문제가 이슈로 대두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대안에서 혼선을 빚는 요인 중의 하나는 노동하는 절대빈곤의 문제인지 노동하는 상대빈곤계층의 문제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정책대안의 논의에서 상호소통의 논리구조를 형성하기 어렵게 한다.

셋째, 서구에서 신빈곤 계층은 기존의 빈곤예방 대책인 사회보험방식이 적절하게 작동하지 못하는 집단의 출현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사회보험이 성숙되기 전에 사회보험이 작동하기 어려운 불안정 노동계층의 확대와 이들의 빈곤문제가 등장하였다. 사회보험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의 문제와 사회보험방식을 보완할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동시에 고려해야하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신빈곤’에 대한 대책

새로운 빈곤은 새로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빈곤은 과거의 빈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맥락이 상이하며, 그러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사회적 기제가 또한 상이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새로운 빈곤은 보편적 사회구성원과의 격차라는 요소까지 부가되어 있다. 과거의 절대적 빈곤에 대응하는 공공부조제도의 보완만으로 문제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새로운 빈곤에 대한 대책은 단편적인 제도도입이나, 사회보험제도의 확대라는 기존의 논의를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빈곤을 제기하는 중첩적이고 복합적인 요소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요구되는 대책은 총체적이며,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형태이어야 하는데, 노동시장에서 불평등 요소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 최저임금제도의 정상적 운용, 보편적 사회 서비스의 확대, 실업부조와 조세지원 정책 등 사회정책의 전반적인 구조를 재편하는 새로운 사회보장체계의 재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이글의 주요 내용은 필자가 연구진으로 참여하여 발간을 준비 중인, 『불안정노동과 사회보장-빈곤과 배제를 넘어서』, 진보정치연구소, 2장의 내용을 요약 발췌하였습니다.

정원오 /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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