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국가 2010-07-06   1462

[복지학교 후기④] 네버랜드를 향하여



난 종종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 다들 스펙관리와 취업준비에 정신없이 살아가는데 엉뚱하게도 내 일상을 지배하는 고민과 생각은 스펙과 취업에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며 아직 어리다고들 한다.


사회복지가 무엇일까? 취업을 한 뒤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기관에서의 프로그램 중심업무에 한정되어야 하는 걸까? 시민운동과 사회복지관에 취업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세계평화’라는 오래된 꿈을 이루기위해서 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학부 때에도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더 공부한답시고 대학원까지 와서 내가 항상 고민했던 질문이다. 방학을 하고도 그 흔한 영어공부도 안하면서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 내가 원하는 답을 찾고 싶어서 희망복지학교에 신청하게 됐다. 그 중 시민운동과 복지를 주제로 했던 김기식 선생님의 강의는 내가 앞서 했던 세 가지 고민을 모두 풀어주는 열쇠가 되었다.


사회복지란 무엇일까? 학교에서 우리가 주로 배워왔던 사회복지는 워커와 클라이언트로 나눠져서 클라이언트를 ‘효과적’으로 다뤄 비용대비 최대효용을 내어야 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았던가. 또 거시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말해오면서도 과연 그 모든 사람들을 칭하는 말의 의미를, 그리고 기본적인 삶의 질이 어떤 수준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학생이 몇이나 될까.






김기식 선생님은 말한다. 사회복지는 한 마디로 ‘권리’라고. 그렇지만 이 권리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투쟁의 역사를 통해 얻어낸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강의 내내 가장 중요하게 듣고 집중한 말은 ‘권리’와 ‘행동’으로서 사회복지다. 그리고 이 ‘권리’와 ‘행동’이라는 말 속에서 내 오랜 고민에 대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사회복지는 권리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사회복지는 권리보다는 시혜적인 개념으로써, 또 자선의 개념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모순 된 사회현실을 개선하여 사람들의 기본적 권리를 지켜주기보다는 주로 개개인을 사회에 맞추기 위한 ‘사회사업적’ 실천 현장이 다수를 차지했던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다수의 사회복지관이 정부에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하여 비판적이고 의식적인 ‘권리를 위한 행동’을 하지 못할 때, 오히려 우리가 사회복지와는 다른 개념으로 보았던 시민사회단체에서 권리에 대한 행동을 이루어냈다. 참여연대에서 기존의 시혜적인 개념이 강했던 ‘생활보호법’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꿔낸 것과 같이 보편적인 복지의 실현을 위해 여러 시민단체가 국민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있다. 사회복지라는 큰 틀에서 시민운동의 역할은 권리를 쟁취하기위해 행동하기 때문에 지금의 기관 중심의 사회복지보다 더 사회복지적이라는 역설적인 사실이다.


이렇듯 현실의 변화는 사회복지계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시민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와 통합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에게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 역시.


강의가 끝날 즈음 김기식 선생님은 우리를 일컬어 ‘희망’이라고 부르셨다. 기존의 사회사업적 개념에 한정되어있는 기성세대를 뛰어넘어서 사회복지관과 사회복지운동이 어우러져 권리로서의 사회복지를 실현할 요체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곤 앞의 나의 모든 고민이 해결되었다. 과연 사회복지를 단순한 학문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흡수한 사람이 시민사회나 시민운동에 무관심할 수 있을까. 이 두개를 다른 개념으로 여길 수 있을까. 또, 과연 사회복지를 몸으로 체감한 사람이 지금의 다수의 사회복지관의 프로그램 중심적 운영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강의가 끝나고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고 비판하고 배우기 위해 발로 뛰는 것이 우리 젊음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기존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우리 젊은이들은 사회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권리’를 위한 ‘행동’을 한다면 나의 꿈인 세계평화 역시 분명 허무맹랑한 얘기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젊은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젊은이들은 피터팬 증후군, 아직 어린 사람,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2010년 대한민국은 젊음의 특권인 고민과 사유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이상한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네가 피터팬이냐고 아직도 어리고만 싶냐 물어본다면 네버랜드로 가는 길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당당하게 맞받아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없다면 우리가 꿈꾸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복지국가’인 ‘네버랜드’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승은(참여연대 제3기 희망복지학교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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