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4-01-01   552

<김창엽의 건강세상만들기> 의료시장을 ‘개방’하라고?

우리나라 경제부총리는 교육정책, 의료정책까지 건드리지 않는 분야가 없는 모양이다. 최근에 또 한마디를 하셨는데,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이 너무 형편없다고? 그 중에서도 교육과 의료가 큰 문제란다(연합뉴스 12월 28일자). 나라 경제 전체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니 사실이라면 이만저만 큰 일이 아니다.

부총리가 내놓은 해법은 간단하다. ‘개방’이 핵심이다. 의료와 교육개방이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이나 전반적인 국가경쟁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줄기차게 개방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부총리의 소신인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개방 이야기가 하루 이틀된 것도 아닌 바에야 지겹게 비슷한 이야기를 또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개방의 파고는 높고 거친데, 의료가 예외가 되기에는 치밀한 논리가 있어야 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 전에 상식적인 질문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개방은 단순한 정책차원을 넘어 마치 종교적 교의의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제 보통 사람의 정신까지도 파고들어, 개방이 이롭다거나 혹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신앙’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근거도 없이.

‘믿음’이 어디 의료분야라고 예외일까. 의료시장 개방은 한발 앞서 벌써 깃발이 높게 걸렸다. 미국의 어디어디 병원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관심과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다행인가 불행인가. 정부가 구상하는 개방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아직도 알기 어렵다. 외국의 상업 병원이 국내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자유구역에 돈벌이용으로 대형병원을 짓게 하고 이 병원은 보험에서 제외시켜 주겠다는 것인지? 게다가 몇 달전에 지역특구라는 것을 신청받았는데 그 중에는 ‘의료특구’도 끼여 있었다고 한다. 정부의 떠보기까지 겹쳐 이래저래 당분간 헷갈릴 모양이다.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큰 방향은 알 만하다. 일부 지역에 지금의 제도에서 벗어난 대형병원을 짓고 ‘돈벌이’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앞장서는 정부나 일부 민간이 내세우는 명분은 간단하다. 외국으로 나가는 환자들이 국내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그 하나요, 최고급병원을 유치해서 주변 국가들의 환자들이 이곳으로 오게 하자는 것이 두 번째다. 아직도 횡행하는 조금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특구에 외국자본의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좋은 외국병원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 말하자면 세 번째 명분쯤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명분은 근거가 없다. 외국으로 나가던 환자가 안 나간다는 것은 그냥 순진한 생각이라고 하자. 다행히(?) 이들을 붙들어둔다 해도 영리를 쫓는 외국 병원이 이익을 유출하는 것을 어떻게 막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익은 겨우 고용효과 정도다. 다른 명분인 외국 환자를 끌어들일 경쟁력 있는 병원도 언뜻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선진국과 비교한 경쟁력도 의문이지만, 이건 지금 있는 법과 제도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지 묻고 싶다.

지금도 중국에서 일본에서 성형수술을 받으러 환자들이 온다지 않는가. ‘경쟁력’이 있는 병원은 지금도 ‘시장가격’을 받고 외국인 환자를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잘만 된다면 외국인 전용병원을 서울 한복판에 지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특구에 좋은 병원이 있어야 외국자본 유치에 이롭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는 데에 핵심적인 요소를 생각해보면 판단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의료시장 개방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익은 불확실하지만 손해는 명확하다. 왜곡된 의료 과소비가 빚어질 것은 불 보듯 환하고, 특구에 진출한 힘센 국내외 의료기관들이 건강보험을 입맛에 맞게 바꾸라고 압력을 가할 게 뻔하다. 또, 진료비든 보험이든 특구 바깥의 병원들이 “우리도 평등한 대우를” 주장하면 어떻게 막을 작정인가. 결국 한국 의료는 단기간 내에 상업적 의료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99.9% 이상의 개별 의료기관이나 의료인도 별 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돈벌이 위주의 의료가 처할 운명은 현재의 미국 의료에서 첨단 의학기술만 뺀 꼭 그대로다. 개인은 엄청난 의료비 부담에 고통받고, 기업은 직원들의 의료비와 보험료 부담으로 허덕이며, 의사와 병원은 상업적 보험에 메이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가혹한 시장이 미국 의료의 실상이 아니던가.

아마 이래도 정부는 낙관하고 극소수 민간병원은 눈앞의 이해만 쫓을 것이다. 개방은 특구에 한정될 뿐이며, 다른 지역 모든 국민에게는 튼튼한 공공의료체계를 통하여 충분한 의료보장을 할 것이라고. 그러나 이건 믿기 어렵다. 내년 예산안에 공공의료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확인해 보라. 공공의료 강화라는 공약이 지켜지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세계적으로도 의료시장 개방은 전혀 대세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조차 각 나라가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스스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의료시장 개방에 대한 ‘믿음’은 사막의 신기루일 뿐이다. 정부든 민간이든 신기루 속의 오아시스를 확인하기 전에 환상을 접어야 한다. 대신 물이 솟구칠 깊은 샘을 파는 것이 제 길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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