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 툭하면 “불만 있음 나가라”
[복지는 권리다-보육②]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왜 필요한가
복지는 시혜다? 보수진영이 유포한 논리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꼴지 복지’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복지는 시혜가 아닌, 보편적 권리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총 8부로 나눠 한국의 복지 상황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 기획에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여성단체연합, 전교조, 참여연대, 청년유니온(가나다 순) 등 6개 단체가 함께합니다. 자신의 사례를 기사로 올려주시거나, 댓글을 달아주시면 편집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편집자말> |
경기도 수원에 사는 최윤희(35·가명)씨는 6살 민서(가명)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으로, 교육 프로그램, 식자재 선정 등 어린이집 운영 전반에 부모들이 직접 참여한다. 회계 역시 투명하게 관리된다. 민서가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회비는 두 달에 110만 원. 여기에 ‘유기농 식단’을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식대 80만 원을 추가로 낸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9년 발표한 만 4세 표준교육비용(월 기준) 28만3400원을 훨씬 웃도는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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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형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다가 지난 2009년부터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다는 최윤희씨는 “워낙 TV나 이런 데 안 좋은 데(어린이집)가 많이 나와서, 애를 장시간 믿고 맡길 수 있는 데를 찾다보니까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찾게 됐다”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에서 상근으로 일하고 있는 황기우(36)씨 역시 아들 지현(6)이를 생후 8개월부터 5년 가까이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회비는 월 50만 원. 다행히 황씨는 구청에서 보육료 약 30만 원을 지원받는다.
황씨는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비용이 비싸기는 하다”면서 “그래도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부모들이 애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체벌이라든지 식자재 문제가 발생해도 부모가 감시할 수 있는 통로가 없는 반면, 협동조합은 그런 게 오픈되어 있어 애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원장에 따라 서비스·비용 천차만별… 민간 어린이집은 ‘복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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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달에 50만 원이 넘는 보육료를 내면서 어린이집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미영(29·가명)씨는 오후 9시가 되어서야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다. 4살, 5살 연년생 두 아이 중 둘째는 강원도에 있는 시댁에 맡겼다.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두 분 다 직장에 다녀서 손자를 봐줄 여력이 없다. 현재 큰 아이를 강북구의 한 민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는 이씨는 한 차례 어린이집을 옮겼다.
“처음에 다른 민간 어린이집에 보낼 때 애기가 열이 38도까지 올라갔는데 어린이집에서 이걸 몰랐던 거예요. 애가 집에 왔는데 저녁 때 되니까 열이 39도. 어린이집에 이야기를 했더니 ‘몰랐다’ 그러더라고요. 열나는 게 되게 중요한 건데… 바로 옮겼어요. 다행히 지금 다니는 데는 바로 담임선생님이 아이한테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학부모들 사이에서 어린이집 선택은 ‘복불복’으로 인식된다. 원장이 어떠한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서비스와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민간어린이집은 특히 그렇다.
이미영씨는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특별활동비로 6만 원을 내고 영어, 체육, 미술, 음악 수업을 듣고 있는데 이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은 애가 말도 못할 때였는데 특별활동으로 음악수업 하나 들으면서 4만 원을 내고 우윳값도 따로 냈었다”면서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은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냐’면서 우유값도 안 받고 옮겼을 당시에는 애가 너무 어리니까 특별활동도 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씨는 “차량운행비도 받는 데도 있고 안 받는 데도 있고 기준을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박수정(가명)씨는 어린이집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온다. 2010년부터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한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는 박씨는 원장과의 계속되는 충돌로 ‘퇴소’ 압박을 받고 있다. “불만 있으면 나가라.” 이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자주 듣는 소리다. 한 학부모가 ‘CCTV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자 원장은 ‘CCTV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나간 학부모도 있다. 박씨는 “이 어린이집이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이 지역에 보육시설이 많지 않다 보니 대기인원이 100명이 넘는다”면서 “그걸 원장 선생님이 악용을 한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얼마 전에 학부모 회의가 열렸어요. 한 엄마가 이야기를 꺼냈어요. 방학기간 동안 유아반 당직 선생님이 한 분 있었는데, 선생님이 음식 만드는 동안 아이들이 서로 때려서 다쳤는데도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엄마가 ‘방학 기간이라도 조리 선생님이 나오셔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어요.
그 엄마가 저처럼 ‘직장맘’인데 평소에 아이 늦게 (집에) 데려간다고 원장선생님한테 자주 전화를 받았대요. ‘엄마 때문에 선생님 퇴근 못한다’라고요. 이것도 황당한 게, 원래 유아반 정규 수업 시간은 오후 5시 반까지예요. 그런데 선생님 한 분이 개인 사정으로 오후 4시쯤 퇴근하고, 다른 아이들도 일찍 집에 가니까 이 아이도 빨리 데려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엄마가 ‘정규 수업 시간까지는 아이를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항의했어요. 그러니까 원장 선생님이 그 엄마한테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엄마도 아니고, 불만도 많은 것 같은데 나가라’고 말하는 거예요.”
원장에게 항의해도 소용이 없자,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마포구청과 구의회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마포구청은 개별적인 시정조치에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해당 어린이집 현장 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특별활동비·야외활동비 관련, 수입과 지출이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돼 추가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신청”… 5명 중 1명은 국공립 ‘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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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어요.”
지난해 4월부터 마포구에 있는 한 구립어린이집에 딸 윤아(3)를 보내고 있는 김소영(35· 가명)씨는 “저는 너무 만족스러워서 기사 쓸 게 없을 것 같은데요”라며 웃어보였다. “시댁은 부산에 있고 친정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정말 막막했다”는 김씨는 윤아가 태어난 지 일 주일 만에 입소대기신청을 했다. 이후 1년 넘게 기다린 끝에 윤아는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박양숙 서울시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김씨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내 아동 50만 2623명 가운데 국공립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은 5만 5061명으로, 10.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아동 9명 가운데 1명만이 국공립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서울시 아동 5명 중 1명꼴인 10만여 명이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 대기중으로 나타났다.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 대기자는 많게는 수천여 명에 달한다(서울보육 포털서비스에 따르면, 3일 현재 강남구 삼성어린이집 입소대기자는 3960명이다).
김소영씨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만족스러운 이유’로 ‘교사의 처우’를 꼽았다. 김씨는 “민간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제 친구들 보면 박봉이고 할 일도 많아서 이직률이 높은데, 아이들한테는 주양육자가 바뀌는 게 치명적”이라면서 “국공립은 아무래도 처우가 민간에 비해 낫다보니 이직률이 낮아 선생님과 아이들이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상은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당 등을 다 합한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들의 월 평균 급여는 약 167만 원, 민간 어린이집은 약 126만 원으로 40만 원 정도 차이가 났다. 가정형 어린이집은 이보다 더 낮은 약 114만 원이었다.
보육료 외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회권 국장은 “보육료는 일정 금액 이상 받을 수 없도록 상한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국공립이든 민간이든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민간의 경우 특별활동을 여러 개 하도록 해서 수익을 내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안양에 있는 민간어린이집에 5살 아이를 보내는 최민경(36·가명)씨는 “민간어린이집에서는 특활비로 따로 받는데, 이번에 어린이집 옮길 때 보니까 최소 4만 원에서 최대 10만 원까지 부르는 곳도 있더라”고 전했다. 박 국장은 “지자체별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민간에서는 이를 잘 지키지 않고 규제도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지속적인 관리·감독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국공립 어린이집의 신뢰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여기도 저기도 ‘서울형’ 남발… 제대로 ‘검증’한 건지 의심”
문제는 ‘돈’이다. 50명 정원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새로 짓는 데는 약 30억 원의 재원이 든다. 국공립보다 적은 비용으로 국공립 수준의 어린이집을 만들 방법은 없을까. 지난 2009년부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존의 어린이집에 서울시가 환경개선비와 운영비, 인건비 등을 보조해주고 국공립 수준으로 교육의 질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와 함께 ‘서울형 어린이집’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형 어린이집의 보육료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같다. 보육교사 처우 역시 국공립과 민간의 중간 수준이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서울형 어린이집을 벤치마킹한 공공형 어린이집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작 서울형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학부모들은 민간 어린이집과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겠다는 평이다. 직장생활로 바쁜 동생을 대신해 친정어머니와 함께 조카가 다닐 어린이집을 알아본 적이 있다는 박민영(33·가명)씨는 “집이 아파트 숲 안에 있다 보니 단지 안에 몇 동에 한 개씩 서울형 어린이집이 있더라”면서 “여러 가지 항목의 평가를 통해 인증을 한다는데 왠지 남발하는 느낌도 있고, 제대로 평가하고 철저히 인증하는지 의심도 갔다”라고 말했다. 서울보육포털서비스에 따르면, 2월 3일 현재 서울시내 6182개 보육시설 가운데 서울형 어린이집은 2528개. 40%가 조금 넘는다.
4살 아이를 100일이 갓 지난 후부터 성북구에 있는 서울형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이민정(36·가명)씨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서울형 어린이집이 아무래도 서울시 지원을 받다 보니 선생님들이 서류상 할 일이 많아서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보다는 사진 한 장 찍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처음에는 서울형 어린이집 보내는 게 꺼려졌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서울형 어린이집이 시설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일반 어린이집과 수업내용이 다른 것 같지도 않다”면서 “다만,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서울시에 하소연할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은 있다”라고 덧붙였다.
“국공립 비율 5%→30%, 공공이 민간 견인할 것”
이에 대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미취학 아동정책을 연구하는 최정은 연구원은 “아무리 교육이 비영리적이라고 하지만, 민간에서는 교육을 통해 영리를 취하려고 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서울형 어린이집의 경우 지원은 지원대로, 돈은 돈대로 들어갔음에도 외부 관리와 감독에 한계가 있고, 내부에서도 자율적인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 못했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최 연구원은 “민간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5%대인 전국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30%까지 끌어 올리면 공공이 민간을 견인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공공이 많아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부실 민간 어린이집’은 자연스럽게 퇴출될 것이라는 거다.
박차옥경 국장 역시 “정부와 지자체에서 민간에 돈을 풀고는 있지만 부모가 교육의 질이 높아졌다고 느끼지는 않는다”면서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더라도 국가가 보육을 책임진다는 측면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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