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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위원회  l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만들어갑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9
  • 2019.05.10
  • 1168

‘사람은 화단에 심은 꽃이 아니다’
-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조례) 제정의 필요성

 

최재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들어가며: 이봄의 증언

 

“그래도 일단 자유가 생겨서 좋습니다.” 수감 생활을 마치고 교도소를 출소한 이가 했을 법한 이 말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탈시설’(장애인거주시설에서 퇴소하여 지역사회에서 살아감)한 어느 장애인의 고백이다. 2019년 4월 5일 서울시청에서 진행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삶 증언대회 <여기 사람이 있다>에서 탈시설 당사자 이봄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증언대로 올라가 장애인거주시설 안에서 자신이 경험한 삶을 담담히 증언했다.

 

이봄이 1994년 5세에 입소해 2018년까지 24년간 살았던 장애인거주시설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중심엔 통제와 강제적 규율이 있었고, 탈시설 후 자신의 힘으로 자립생활을 영위하는 일이 힘들지만, 자유를 얻어서 좋다고 이봄은 말했다. 밤 10시 넘어서 들어가면 혼나고 자신의 돈으로 작은 물건 하나를 구입하고 싶어도 거주시설 생활재활교사의 결재 통과 여부에 조마조마해야하는 거주시설 생활을 벗어난 것은 이봄에게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난 일이었다. 이봄은 탈시설한 그 날, 집이 생긴 게 좋아서 밤을 꼴딱 새웠다.

 

이봄은 이 증언대회에서 “거주시설을 벗어나기 위해 10여 년 동안 발버둥 쳤다.”라고 말했다. 거주시설 밖으로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보호작업장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 10만 원을 꼬박꼬박 모았다고 했다. 헌데 탈시설은 이런 방식의 개인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0년 적금으로 매달 10만 원을 단리 2% 비과세로 모아도 1,301만 원이 아니던가? 이 돈으론 주택을 얻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수십 년 거주시설 생활의 소유물이라는 게 결국 박스 두 개로 수렴하는 현실에서 세간살이를 마련하는 건 더욱 어렵다. 결국 5세의 이봄을 장애인거주시설에 밀어 넣은 장애인 정책이 변해야 29세의 이봄도 장애인거주시설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이봄에게 ‘운 좋게도’ 기회가 왔는데, 이봄이 인천의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동료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이봄은 민들레센터를 통해 탈시설 정책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전달받았고, 결국 자립생활주택으로 탈시설할 수 있었다. 인천시가 체험홈과 자립생활주택을 물량으로 탈시설 주거 물량을 확보한 토대에서 민간 기관의 서비스 제공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부분적이지만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위한 정책을 만든 인천시 장애인 정책의 변화 속에서 이봄도 2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탈시설 정책 선도하는 서울시: 누군가는 45년을 거주시설에서 살아야 한다

 

이봄이 탈시설하도록 지원한 지자체는 인천광역시이지만, 탈시설 정책을 시작하고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서울특별시다. 서울시는 관할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의 20%를 5년 동안 탈시설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2013년 장애인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09년 석암재단 산하의 장애인거주시설에 거주하던 8명의 시설 거주인(마로니에 8인)을 중심으로 석암재단생활인인권쟁취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시에 탈시설 주택 모델을 요구로 탈시설 주거 모델의 기틀을 마련한 것을 토대로 탈시설 정책의 기본 꼴을 갖췄다.

 

그런데 야심 차게 시작한 서울시의 정책은 탈시설하거나, 혹은 하지 않을 사람을 욕구조사란 이름으로 선별하고 누군가를 탈시설 대상자에서 탈락시키는 한계를 지녔다. 서울시는 탈시설 신청을 받아 탈시설 대상자를 선별했다. 이는 당사자의 선택과 욕구를 반영해 정책을 시행하는 상식적인 절차로 보이지만, 다수의 시설 거주인에겐 불쾌한 것이며 답답함을 가중시키는 일이었다. 서울시는 600명의 탈시설을 허락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탈시설에서 탈락시키며 2,400명의 시설 계속 거주를 정당화한 탓이다. 이러한 탈시설 정책의 한계는 심사 과정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서울시는 탈시설을 희망하는 거주인이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거주시설에서 더욱 훈련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의를 포함해 심사했다. 또 탈시설 후 지역사회에서 기존의 인프라(활동지원, 소득보장)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탈시설 대상자를 결정했다. 정책을 펼치는 서울시의 입장에서 탈시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탈시설 정책이란 이름으로 중증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모두 포함할 수 없으니, 기존 정책의 토대 위에서 탈시설 대상자를 선별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탈시설 정책의 한계로 인해 탈시설 심사에서 탈락한 시설 거주인들은 희망을 갖고도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서울시가 권리의 관점으로 탈시설 정책을 시행하지 않은 것이었다. 비장애인에게 거주시설에 들어가서 생활하고 싶은지 묻고,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말하기를 요구하지 않듯이, 장애인에게도 보편의 권리로 거주시설 밖 지역사회의 삶을 인정해야 하는데, 능력에 따라 줄 세우고 탈시설할 사람을 선별했다. 서울시는 탈시설은 권리라고 인정하면서도 선택권이란 이름으로 거주시설의 토대 위에서 탈시설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비장애인에 가깝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기존의 서비스 체계에 맞는 사람만 지역사회에서 살도록 정책을 설계한 것이다. 결국 돈의 부족과 거주시설 중심의 정책적 관성으로 인한 일이었다.

 

2017년 제1차 탈시설 5개년 정책이 끝나고 2018년 서울시는 제2차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5년간 장애인을 탈시설하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탈시설 대상자는 1차 계획 600명에서 오히려 300명으로 축소되었다. 서울시 장애인 거주시설 45개소에 거주 중인 중증장애인은 2,567명인데 이 정책 속도에 따르면 누군가는 45년 후에야 장애인거주시설을 벗어날 수 있다. 45년을 버티지 못한다면 거주시설에서 죽어야 한다. 물론 45년의 시간도 탈시설 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서울시의 상황에서야 가능한 일이지, 탈시설 정책이 없는 강원도나 대전시, 세종시 등의 지자체 관할 장애인거주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탈시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2019년 한국 복지의 현실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보건복지부의 탈시설 정책

 

이럴 때 중앙정부가 나서서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면 한계를 해소할 수 있겠지만, 중앙정부의 탈시설 정책은 전무(全無)하다. 지자체별로 탈시설 정책의 편차를 줄이도록 법을 제정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산적한 과제도 많다. 장애인의 탈시설은 주거 모델만 확보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고, 주거에 복지 서비스를 결합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자원과 모델이 필요하니 국토교통부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의 협력이 필요하다. 또 5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장애인거주시설의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거주시설 중심의 민간의 복지 체계에서 탈시설은 새로운 사회서비스의 모델을 창출해야 달성할 수 있는 과제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 9년의 공백을 채우고자 마음이 급했는지, 정권이 수립되고 서둘러 움직였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탈시설지원센터 설치 등의 내용을 공약화했고, 정권이 수립된 후 2017년 7월 100대 국정운영과제 42번에서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명시하고, 같은 해 8월엔 복지부와 장애계가 함께 탈시설민관협의체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기로 약속하여 2018년까지 총 9번의 회의를 했다. 이뿐만 아니라 2018년 3월엔 커뮤니티케어를 통한 통합돌봄체계를 이루겠다고 야심 차게 발표했다. 하지만 임기 3년차가 된 현재 이런 요란한 선언들을 토대로 무엇이 바뀌었는지, 급격하게 현실이 바뀌진 않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내다볼 탈시설 정책의 초석을 만들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복지부는 커뮤니티케어 사업으로 대구 남구와 제주시에 센터를 설립하고, 공공 체계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서비스원이 2019년 하반기 설립 계획을 큰 틀에서 탈시설 정책으로 언급할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민주정부 임기 3년이 되도록 복지부는 구체적인 탈시설 목표 인원조차 정해지지 않은 현실이다. 이뿐 아니라 정부는 최소한의 예산도 마련하지 못했다. 장애인거주시설 예산으론 4,809억 원을 운영비로 정하면서도 탈시설 예산으론 14억 원, 사실상 탈시설전환지원센터가 1개도 설립하지 못하는 예산을 마련했다. 2019년 예산으로 복지부에서 71억 원을 기재부에 탈시설 예산으로 제출했으나, 기재부는 이 예산을 21억 원으로 삭감했고, 이 돈을 국회는 14억 원으로 삭감했다.

 

한편 2019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포용국가를 만들겠다며 복지 청사진을 발표했는데, “2022년이면 장애가 있어도 불편하지 않게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남녀노소 기본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이렇다 할 탈시설 계획도 수립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 2022년까지도 수만 명의 장애인은 계속 거주시설에 살아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의 기본생활이 거주시설에 계속 거주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시설 거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이런 말은 포용의 대상에서조차 배제되었다는 생각을 갖지 않기 어렵다.

 

대안은?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를 위한 법(조례) 제정

 

시설 거주인은 자그마치 3만 명이 넘는다. 2007년 314개에 불과하던 장애인거주시설은 1,517개로 규모를 확대했고 같은 기간 21,709명이었던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은 2017년 30,693명으로 증가했다. 지난 9년의 보수 정권이 시설 소규모화란 이름으로 장애인을 시설에 분리한 정책의 결과다. 2008년 UN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해 국제사회, 국민과 약속을 하고도 지난 정권에선 장애인을 시설에 분리하며 약속을 어겼다. 지난 복지 정책의 철학은 분리하여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복지 패러다임이었다. 장애를 가진 개인이 시설 거주인이란 정체성으로 71%가 휴대전화를 소유하지 못하고(2017, 국가인권위원회 중증·정신장애인 생활시설인에 대한 실태조사), 다수의 장애인의 일상이 하루 종일 TV를 시청하는 삶을 살아도, 복지정책이란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했다.

 

 

<표 2-1>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원과 시설 수 현황

시설 거주인의 숫자는 몇 년간 3만여 명에서 고착된 상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보다 적극적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그리고 거주시설이란 기존의 복지 체계를 꼼꼼히 살피되 새로운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통합과 참여의 정책이다. 시설 소규모화, 탈시설을 특별한 일로 여기며 정책을 펼친 분리의 역사를 끝내고 중증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지 않는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 그 시작으로 제안하고 싶은 일은 법 제정을 통한 10년 내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다.

 

도덕적으로 탈시설이란 가치가 옳다고 동의하더라도 10년 내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한다는 계획에 쉽게 동조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구체적인 시설폐쇄법 제정을 통한 장애인의 통합을 추진한 나라가 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와 스웨덴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바자리아법’을 통해 정신장애인시설까지 폐쇄하고 지역사회 탈시설을 법제도로 지원하고 있다. 바자리아(Basaglia)는 정신과 의사가 ‘자유가 치료다’라는 슬로건으로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도록 하는 운동을 전개했고, 이탈리아에선 1978년 세계 최초로 정신병원폐쇄법(바자리아법)이 공포되었다. 스웨덴에서는 1994년에 LSS법을 제정하여 1999년 12월 31일 시설을 폐쇄해 시설에 수용된 모든 장애인을 사회로 복귀하도록 하였다. 10년 내 장애인거주시설 폐쇄와 자립생활 정책 마련, 정부가 의지를 갖고 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면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맺음말을 대신하여

 

이봄님의 증언과 짝지어 말하고 싶은 삶이 있다. 오는 5월 6일 결혼하는 최영은님과 이상우님의 삶이다. 두 사람은 충북 음성 꽃동네 장애인거주시설 희망의집에서 만났는데, 서로 좋아하면서도 만나서 연애하지 못했다.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은 ‘원장실로 끌려가서 혼날까봐.’라는 이유였다. 영은과 상우가 있던 장애인거주시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거주시설은 시설 내 연애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 방에 4-5명씩 함께 거주하며 항상 나를 지켜보는 ‘생활재활교사’가 있는 거주시설에서 구조적으로 사랑은 봉쇄되며, 사랑을 드러내는 자는 축복이 아닌 눈치와 어울림이 아닌 소외의 환경에 처해야 하는 것이 거주시설에서의 현실이다.

 

하지만 장애가 있다고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두 사람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해 2015년부터 연애를 시작했고, 수급비를 알뜰살뜰 절약하여 결혼 전세자금 5천만 원을 모았다. 영은과 상우는 꽃동네 희망원에 적힌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을 받은 것’이라는 문구를 깨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인간임을 선언하고서 당당히 지역사회에서 사랑하며 살아간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을 주창하는 목소리를 들은 다수의 사람은 ‘그러면 장애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역사회는 아직 위험하지 않나? 거주시설 인프라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등의 기우를 앞세우기 십상이다. 어려운 일이고,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위험한 것이며, 국가가 장애를 가진 개인에게 마땅히 지켜야 하는 말은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약속이 아니던가? 이봄과 영은, 상우를 비롯해 탈시설한 당사자들은 ‘장애인거주시설, 거기에 내가 있었고, 지금도 사람들이 있다고’ 다급하게 목으로, 몸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은 화단에 심은 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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