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05-01   325

[편집인의글] 복지동향 제271호

편집인의 글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동향 편집위원

 

가정폭력, 권력 구조의 사적 재현

극한의 상황이…허용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매우 은밀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력은 정형을 갖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이 쉽게 닿지 않는 공간과 관계 안에서 체벌은 종종 훈육으로 정당화되고, 도 넘은 집착과 강요된 친밀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려 누군가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

 

폭력은 주체와 대상의 층위,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개인, 집단, 조직, 사회, 국가가 폭 력을 사용하고 또 폭력에 희생되기도 한다. 가시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물리적 폭력이 고전적 형태라면 정서적 폭력은 뒤늦게 폭력의 형태로 주목되었다. 날아오는 주먹이나 날카로운 목 소리 대신 또각또각 활자를 매개로, 행위자조차 특정할 수 없이 일어나는 사이버 폭력은 과 학이 부수한 폭력의 신종이다.

 

이처럼 폭력은 민감하게 감지하고 엄격하게 해석할수록 존재의 방식을 달리하며 교묘히 분 화해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친밀을 가장한 관계 뒤에서 각양의 모습으로 생존하며 잔인하 게 행사되고 있다. 아동학대, 노인학대, 가정폭력 여러 이름으로 명명되지만 모든 폭력은 권 력의 구조와 질서를 재현하는 사회적 프렉탈이다. 가정폭력 또한 여성과 남성, 돌보는 자와 의존하는 자 사이에 기울어진 권력의 중심추를 복제하는 자기유사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번 호는 가정의 달을 맞아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주제로 기획 세션을 구성했다. 첫 번째 원고는 폭력에 담긴 사회성과 정치성을 주제로 사적 영역에서의 폭력을 사회정치적 산물로 조명하는 분석적 관점을 논의했다. 두 번째 원고는 가정폭력처벌법의 한계를 중심으로 가정폭력을 향한 사회적 시선을 다루었다. 세 번째 원고는 아동보호체계의 한계와 과제를 아동권리의 관점에서 논의했다. 특히 2019년 발표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중심으로 아동보호체계의 변화와 한계를 분석했다. 네 번째 원고는 노인학대를 주제로 그 실태를 정리하고 예방과 보호체계의 문제점을 분석했으며, 주요 개선과제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논의했다. 동향에서는 아프면 쉴 권리를 위한 법정유급병가와 상병수당, 그리고 최근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유리씨 사례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위한 행진을 다루었다. 복지톡에서는 꽃을 심고 비질하며 마을을 지킨 동자동 쪽방 주민을 만났다.

 

아마도 인간은 폭력과 짝이 되어 노아의 방주에 올랐나 보다. 아동, 여성, 노인, 약자의 희생 에 의미 없는 분노로 일말의 정의감을 휘발하고, 빠른 체념과 오랜 망각을 지속하는 한 폭력 은 인간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집단적 무감각과 사회적 무능을 먹이로 더욱 극악하고 교 활해지는 가정폭력에 맞서 권력의 기울기를 조절하는 제도적 균형추를 정교화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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