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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21
  • 2021.03.01
  • 154

닥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은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정책위원, 참여연대 사회복지 실행위원

 

 

누군가는 변화라고 하고, 적응해야 하는 일상성이라고도 말한다. 코로나 시절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이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의 삶의 조건들도 바뀌어 갈 때 사회복지제도는 얼마나 튼튼하게 준비되어 있을까? 사회복지정책을 공부하지만 정작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한 제도는 환경변화에 맞춰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궁금했다. 방구석에 앉아, 당연히 가입되어 있는 사회보험제도 속에 내 위치를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당장 나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가입되어 있는 제도는 건강보험이다. 시간 강사는 학교랑 학기별로(혹은 연 단위로) 계약을 하지만, 대학은 나의 건강 보험료를 분담하지 않는다. 이미 세대주로서 지역가입자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강사의 계약여부와 관계없이 보험료를 낸다. 건강보험제도는 병원을 이용할 때 비용이 절감되는 소득보장제도이다. 건강보험료는 매달 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도 지로용지로 고지서가 날아오므로 한 달에 한 번은 금액을 확인한다. 당장 지출해야 할 돈이 확 실감된다. 병원을 자주 가지는 않지만 질병과 사고에 대한 공동 부담의 의미로 오르는 보험료를 감당해왔는데, 작년 말 건강보험료가 갑자기 급등하여 건강보험공단과 어렵게 통화하였다. 프로젝트 기반으로 일을 했을 경우 일이 끝나면 건강보험공단에 더 이상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증빙을 해야 한단다. 담당자는 해촉증명서, 혹은 퇴직 증명서를 받아서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지 않으면 소득이 계속 발생하는 것 으로 잡힌다고 설명하였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이미 해촉증명서 양식부 터 관련 문의와 조언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이런 일들을 벌써 겪어왔다는 반증이다. 보험가입자로서 자격을 유지하면서도 맡겨두는 게 아니라 개인이 해야 할 일은 빈번히 발생한다. 

 

비자발적 실업기간(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야 한다. 국민연금도 당장에 돌려받는 돈은 아니다. 납부한 이력으로 기록되는 국민연금은 65세 이후 소득의 일부가 되어 죽을 때까지 지급된다. 국민연금은 어플(앱)을 깔면 예상 연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체감하는 시점은 10년 이상이 남았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어떤가? 시간강사의 고용보험은 국민 연금을 가입할 때 함께 적용된다. 이 말은 학교가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학기와 방학에 따라 가입과 자격 박탈을 왔다 갔다 했기에 소득이 중단되는 방학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지 않았다. 고용보험제도에서는 이직이 발생한 시점 이전에 18개월간 180일 이상 보험료를 납입하면 실업급여를 탈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제도 안에 들락 날락 했던 내 이력에서 최소한의 가입기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나는 실업급여 자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제일 먼저 포털 사이트로 들어가 ‘시간강사 실업급여’를 검색하고, 다행히(!) 제일 먼저 뜬 나름의 공신력 있는 사이트 에서 유사한 사례와 관련 정보를 확인한 뒤, 다시 고용보험 포털로 접근하였다. 고용보험 포털에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최소한 3∼4번의 본인 인증을 거 쳐야 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미 회원가입을 했어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면 다시 인증의 굴레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 제일 궁금한 실업 급여를 탈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는 ‘신청’해 봐야 알 수 있었다. ‘신청’ 이후에는 어떤 증빙들을 제시해야 하는지, 어떤 서류를 준비하고 모아두어야 하는 지, 최소한 계약서라도 잘 모아둘걸 하는 후회와 반성, 그리고 그동안 지나쳤던 무수한 서류들이 덤으로 따라온다. 포털 검색에서 노무사가 답변한 사이트가 먼저 뜨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하지 않은 몇 개의 블로그를 훑어보고 짧은 시간에 나의 부정적 확증편향을 강화시킨 후, 불안한 마음으로 관련 콜센터에 전화했을 것이다. 산재보험은 내가 직접 보험료를 내는 게 아니니까 이 또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적용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코로나 시대에 줌으로 수업을 하게 된 이상 학교에서의 사고보다는 집에서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르고, 이는 현장 기반의 산업재해 인정에 해당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는 4대 사회보험의 중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설명 했지만, 막상 나의 권리를 확인하려고 하니 절차가 복잡한 건 기본이었다. 살아가면서 닥치는 일들은 사회보험의 당연가입만큼 쉽게 해결되기보다는 ‘신청’ 하려는 결심부터 용기가 필요했다. 수급권자로서 보험료를 납부하면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언제든지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는 제도를 둘러싼 다른 조건 들에 부딪혀 실현되지 않았고, 종래에는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는 상황들과 연결되었다. 자격이 안 되거나 증빙이 부족하거나, 조건이 안 맞아서 이용하지 못하는 일들과 더 자주 충돌하는 것이다. 굳이 모든 상황을 다 경험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사회보험이 처리해주는 일들은 사회적 위험, 소위 다치거나 아프거나 일을 못하거나 나이 들거나 하는 괴로운 일들이니 말이다. 나이 들어 연금까지 가려면 더 먼 일이기도 하다. (20대 청년들에게 40년 이후의 노후를 상상하라는 것은 늘 비현실적인 얘기였다.) 소득활동과 사회보험의 연결고리는 위험대비를 위한 조건인데 소득활동과 중단을 개인이 하나하나 다 증명해야 하고, 보험가입을 위해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등 여전히 제도의 테두리는 경직되어 있다. 제도가 부족하면 채우면 되지만 부당함을 유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가입하고 보호받는게 사회보험의 작동 원리였다면 이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비자발적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사각지대는 더 이상 채워야 할 부분이 아니라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내 경우는 단순했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신청과 증빙으로 공적 제도와 마주해야 하는 삶은 너무 고단하다. 

 

나의 수급권을 확보하고 설명해 주기 위해 거쳐 간 조력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최근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조 기사를 접하면서 그분들이 숙지해야 하는 내용이 1,000가지가 넘는다1)는 사실에 놀랐다. 몇 가지 매뉴얼만 알면 전화 받는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알아야 할 매뉴얼은 일하는 현장과 근로 계약, 돈을 버는 방법 등 다양한 상황에 따라 백과사전 3권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매뉴얼이 복잡하면 누가 제대로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더욱이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조차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으니 점입가경이다. 

 

코로나로 인해 보이지 않는 노동자였던 사람들-택배기사, 돌봄노동자들은 과연 언제 어디서든 닥칠 위험(사고와 질병)에 대비해서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사회보험 적용 범위 안에 포함되는가? 수급권이 막막함으로 먼저 가로막히고, 내가 제도의 사각지대에 위치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정책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이 커진다. 제도를 개혁하고 조정하는 일은 법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법 제정은 정쟁에 휩싸여 사람은 늘 뒷전이었다. 국민의 세금을 걷어 국민을 위해 살림을 하는 부처에서는 여전히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격과 조건을 따지고 삶을 개선할 여지에는 관심을 주지 않고 있다. 이제는 법 제정이 정책적 노력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이며, 적용과 절차를 매뉴얼로 만드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살피라는 요구가 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말로만 떠들었던 사회보험 가입자로서의 자격과 보호조건을 따져보니 내가 어디에서 제도 개혁을 위해 전투력을 다져야 할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사회보험제도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한 번씩 점검해보자. 제도 안에 사람을 들여다보고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첫 번째 단계의 시작이다.

 


1) “하루 120콜, 3분 이상 ‘빨리 끊어’… 우수콜센터 건보공단의 실상”, 오마이뉴스 21. 2. 4.(오마이뉴스에서 건보공단콜센터 문제를 연속시리즈로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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