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5 2015-01-10   553

[동향1]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어른들의 협동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어른들의 협동

정성훈 ㅣ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연구기획위원,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재정 투입, 규제, 감시 등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의 재정 분담 문제가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편성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이 문제를 일으킨 정부의 무책임한 공약 이행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맞벌이 부부가 두 명의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 차라리 한 명이 직장 그만 두는 게 낫지 않겠냐고 고민했던 걸 떠올려보면 육아에 대한 공적인 재정 지원이 상당히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아이 돌봄을 가정에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과제로 간주하는 것, 즉 ‘사회적 돌봄(social care)’은 분명 확산되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보내는 비용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비용만큼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최근 수많은 가정 어린이집들이 보육료 인상을 요구하며 집단 휴업을 감행하려 한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무상보육을 위해 동결된 법정 보육료는 오히려 돌봄 환경을 개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법정 보육료가 인상된다 하더라도 과연 한국에서 아이 돌봄의 51.7%를 담당하는 민간 어린이집과 25.0%를 담당하는 가정 어린이집들이(2012년 12.31 보육통계 기준) 그 증가분을 보육교사 처우 개선이나 여러 가지 돌봄 환경 개선에 사용할지는 의문스럽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 돌봄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책임을 요구할 뿐 아니라 정부, 어린이집, 교사, 부모, 지역사회 등이 함께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돌봄 환경을 일구어나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방향에 대한 고민은 주로 ‘규제’와 ‘감시’의 방향으로 이루어져왔다. 정부는 평가인증과 누리과정을 통해 어린이집의 시설 기준과 교육 프로그램을 규제하며 교사들의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는지 급식은 기준대로 되는지 등을 보고받고 감시한다. 부모는 교사들이 혹시 아이들을 학대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때로는 관에 신고하기도 한다. 불신에 기초한 규제와 감시의 결과로 교사들의 행정 업무는 증가했고 어린이집 내부 곳곳에는 CCTV가 설치되었다. 이런 행정 업무가 어린이집이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은 낮추었을지 모르고 CCTV가 가혹한 학대 행위를 근절했을지는 모른다. 그런데 과연 이를 통해 아이들이 더 잘 지낼 수 있는 걸까? 고된 행정 업무에 시달리고 감시의 시선을 의식하는 교사들이 과연 아이들과 즐겁고 신나게 놀 수 있을까?

 

신뢰와 소통의 공동육아

 

아이 돌봄에 관여하는 담당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활발하게 소통하는 상황을 한번 가정해보자. 어린이집의 회계, 급식,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짜는 데 교사와 부모가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참여하고 함께 평가할 수 있다면, 교사들과 부모들의 회의를 통해 원장을 선출할 수 있다면, 교사의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에 관한 협상에도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다면, 몇 달에 한 번씩 부모가 휴가를 내서 일일교사로 어린이집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의 생활에 관해 교사와 부모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감시의 시선을 대신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매 끼니 급식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고해야 하는 의무는 없앨 수 있을 것이며 CCTV는 철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공상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수많은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들에서 이루어져온 일이다. 공동육아 협동조합은 주인이 따로 없고 부모들과 교사들이 모두 동등한 조합원 자격으로 참여하는 총회를 최고 의결기구로 하는 조직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이 요구하는 것 이외에는 규제와 감시를 최소화하고 신뢰와 소통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해왔다. 그래서 교사들은 부모들과 함께 아이들이 더 즐겁게, 그리고 더 좋은 친구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데 총력을 기울일 수 있었고 민간 어린이집보다 나은 처우를 보장받았다.

 

아이에게 “조화로운 이웃세계”를!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의 사례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아이 돌봄의 정신 중 하나는 아이에게 “조화로운 이웃세계”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인지 발달 및 정서 발달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세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아전담이 아닌 경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하는 연령은 대개 만 2-3세이다.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어른들 개개인의 차이를 정확히 지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의 차이를 크게 인지하며, 부모와 함께 있는 세계와 교사와 함께 있는 세계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처음 등원하는 아이의 부적응 문제는 경우에 따라 매우 심각하기도 하다. 원장과 교사들 사이에 갈등이나 불신이 있는 경우,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사이의 다툼이 부모들 사이의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 갈등하는 세계들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특히 그 여러 세계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가 크고 그 세계들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아이는 심각한 불안정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어린이집 생활에 잘 적응한 아이의 경우에도 어린이집에서는 순종적 태도를 보이다가도 집에 오면 공격적으로 돌변하는 등 이중삼중의 역할 수행을 일찍이 터득해버리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분화된 삶의 규칙들을 너무 일찍 익혀야 하는 시련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들에는 10년 이상 장기 근속하는 교사들이 많으며, 기혼 교사들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부모 조합원들의 가족과 함께 어울려 노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교사들이 함께 회의하고 함께 노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으며, 마을공동체가 발전한 경우 그런 어른들이 마을카페와 마을식당에서 어울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장면들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교사와 함께 있는 평일 낮의 시간과 부모와 함께 있는 밤의 시간 및 주말 시간의 차이를 덜 느끼게 된다. 조화로운 이웃세계 속에서 커나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어른들의 협동

 

아직 공동육아 협동조합의 문턱은 제법 높다. 법정 보육료 외에도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출자금과 조합비 등을 내야 한다. 게다가 가까운 거리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없을 수도 있고, 있다 해도 정원이 다 차 있어서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아이들에게 하나의 이웃세계를 제공해줄 수 있는 어린이집을 일구는 일은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서울시의 마포구립 성미어린이집의 경우 공립 어린이집이지만 원장, 교사, 부모들이 모두 평등한 자격을 갖고 논의할 수 있는 회의들을 통해 돌봄 계획을 결정하고, 교사들과 부모들은 방모임, 마실 등을 통해 신뢰와 소통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공동육아 협동조합과 비슷한 방식의 운영은 직장 어린이집, 민간 어린이집, 가정 어린이집 등에서도 어린이집에 관여하는 담당자들의 의지, 무엇보다도 소유자나 원장이 자신의 권위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여기에 몇 가지 제도적 보완이나 지원책만 추가된다면 공동육아에 더 다가설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공립의 경우 시설 개선이나 교사 증원을 위한 부모 출자나 기부를 허용하는 제도적 개선 방안이, 민간의 경우 비영리 운영 및 협동 운영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등이 있을 수 있다.

 

협동을 장려하는 보육 정책, 마을로 확장시키는 도시 정책

 

어린이집은 낮 시간 동안 부모와 함께 있을 수 없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고 부모들이 아이들의 안녕을 믿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보육 정책이 최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이것이다.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한다고 해서 곧 그런 공간이 마련되지는 않는다. 규제와 감시의 강화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을 뿐 좋은 어린이집을 만들지 못한다. 좋은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조화로운 이웃세계를 제공하는 곳이며,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집에 관여하는 여러 부류의 어른들이 우선 협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협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신뢰와 소통의 네트워크는 점차 하나의 마을로 확대되어 나가야 한다. 어린이집이 잘되려면 그곳에서 아이를 키웠던 선배 부모들과의 교류가 이어져야 하며, 어린이집 바깥의 어른들도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초등학교 이후의 돌봄 전망도 마련되어야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이집을 위해 보육 정책은 협동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없애고 협동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도시 정책은 협동의 힘들이 서로 만나서 마을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그런 만남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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