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8-10   1154

[심층7] 무모한 도전으로 최저생계비 현실화 한 발짝 ‘전진’


3인 가구 김소연



유난히 더운 7월이었다. 참여연대의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다. 최저생계비는 아주 중요한 복지정책인 반면, 우리 사회에 도입된 지 10년이나 된 해묵은 주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기사 쓰기 참 어려운 의제란 얘기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낡은 주제를 조금이라도 이슈화시키기 위해서는 뭐든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몸은 조금 고생스럽겠지만 좋은 기사가 나온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이것이 기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6월30일 내 몸보다 더 큰 가방을 끌고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재개발 예정 지역인 ‘장수마을’에 오르면서 조금은 후회했다. 이 무시무시한 언덕을 매일 오를 수 있을까? 낯선 가족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기사를 잘 쓸 수 있을까? 무모하게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내 성격을 잠시 원망하기도 했다.


내가 한 달 동안 새로 둥지를 틀고 살아가게 될 희망이네 집에 들어섰을 때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다름 아닌 강아지였다. 어머니와 희망이는 어떻게 참아보겠지만 강아지와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첫날 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토피까지 걸린 강아지가 자기 몸을 긁어대면서 낑낑 거렸던 소리가 애처로웠고, 내 옆에서 자려던 강아지의 체온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족, 그리고 111만919원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졌다. 3인 가구다. 초등학교 6학년인 희망이와 어머니(47) 그리고 나. 희망이네는 한 부모 가정이다. 어머니는 보험 설계사 일을 하신다. 희망이는 초등학교 6학년 치고는 체격이 무척 작았지만 성격이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아 사람을 참 기분 좋게 만드는 아이다.


우리에게 할당된 돈은 111만919원이다. 주거비 등을 빼면 77만2800원으로 한 달을 지내야 했다. 가계부는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최저생계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식료품비로 41만7451원이다. 우선 어머니와 희망이는 그동안 살아왔던 생활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배려를 하기로 했다. 반면 내 생활방식은 철저히 최저생계비에 맞춰야 했다.


직장에 출근한 뒤 점심값은 3000원에서 해결해야 했고, 저녁은 무조건 집에서 먹기로 계획을 세웠다. 최저 생계비에서 3인 가구 한 끼 식사비용은 3500원이다. 1인당 1166원 꼴이다.


하지만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일하는 서울 종로구와 마포구 주변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3000원짜리 밥을 파는 식당이 없었다. 평균이 5000원이다. 인터넷을 뒤져 한 끼에 3000원 하는 밥집을 알아내긴 했으나, 갔다 오는 데만 30분 이상 걸리는 곳에 있어 포기했다. 3000원으로 가능한 점심은 라면과 김밥, 떡볶이 등 분식뿐이다.


첫 일주일은 결국 혼자서 분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부실한 식사보다, 혼자 먹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왕따’가 된 것 같아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은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었고, 한 끼니에 5000~7000원을 써야 했다. 점심값 평균인 3000원을 맞추려고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도시락을 쌌다. 반찬으로 김치를 가져갔다가 기자실에 냄새가 퍼지는 바람에 하루 종일 민망해한 적도 있다.


점심보다 더 큰 문제는 저녁식사였다. 반드시 집에서 먹어야 했기 때문에 7월 내내 저녁 약속을 전혀 잡을 수 없었다. 물질적 결핍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교육비는 거대한 벽


교육비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다. 최저생계비에서 3인가구의 교육비는 4만9844원(학습지·참고서)이다. 희망이는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아 영어와 수학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한 달에 각각 15만원씩 30만원이 든다. 학원 두 곳을 보낼 경우 교육비에서만 25만원 가량이 적자가 난다. 식료품비와 교통·통신비 등 다른 분야도 예산이 빡빡해 부담이 너무 컸다. 어머니에게 학원을 한 곳만 보내자고 제안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게 다 제 탓 같아요. 학원비가 부담스럽지만 차라리 먹는 것을 아끼는 게 나아요.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아이가 집에 혼자 있어야 하거든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있으니 불안하죠.” 보험일을 하면서 혼자 아이를 키워온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난색을 표시했다. 희망이도 학원을 원했다. “방학 때 친구들을 만나려면 학원에 가야 해요.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심심하고요.”


상의 끝에 영어학원은 중단하기로 했다. 대신 아이를 혼자 놔둘 수 없어 한달에 2만5000원 하는 손글씨(POP)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7월 중순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가 있었던 터라, 퇴근 뒤 집에서 희망이에게 국어와 사회,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어쨌든 교육비는 12만5156원이 초과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초등학생의 87.4%가 사교육을 받고 있고, 1인당 평균 학원비는 24만5000원이다. 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최저생계비에는 반영돼 있지 않다.


어이가 없기는 교통·통신비도 마찬가지다. 최저생계비 품목을 확인해보니, 휴대전화는 아예 필수품에서 빠져 있었다. ‘0원’이란 얘기다. 한 부모 가정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도 휴대전화가 ‘필수품’이다. 허례허식이 아니라,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신속히 연락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 가족 세 사람의 휴대전화 비용 14만2000원은 고스란히 초과 금액이 됐다.


올 3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지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휴대폰(모바일 전화) 가입자 수가 4794만4222명으로 조사됐다. 인구 1만명당 9835명이 가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국민 대다수가 갖고 다니는 필수품으로 가난한 사람이 가져서는 안 될 ‘비싼 물건’이 아니다.



체험 28일째 파산


최저생계비로 버틴 지 28일째, 결국 파산을 하고 말았다. 최저생계비에서 비중이 가장 큰 식료품비를 줄여보려 애썼지만 2만7989원이 초과됐고, 교육비(-12만5156원)와 교통·통신비(-16만1484원) 등에서 적자폭이 커지면서 111만919원은 바닥이 났다. 한달 체험을 마친 31일에 계산해 보니, 세 식구가 모두 127만4470원을 써 16만3551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이만큼 버틴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옷이나 신발은 전혀 사지 않았고,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도 내지 않았다. 외식은 물론 집에서 삼겹살도 한 번 구워 먹지 못했고, 교양·오락비로는 3500원(영화잡지)을 쓴 게 전부다. 특히 여름이라 연료비가 ‘0원’이었고, 가족 가운데 크게 아픈 사람이 없어 보건의료비도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최저생계비만으로는 한 달을 ‘생존’할 수 없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최저생계비를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품목별로 잡혀 있는 최저생계비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아낀다고 아꼈지만 세 식구 앞엔 적자 가계부가 놓였다. 당장 오늘 쓸 돈이 부족한 탓에 미래를 위한 저축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이나 어머니가 갑자기 큰 병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우리 식구는 그 순간 극빈층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가진 것이 없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일상을 따라다녔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삶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체험을 마치며


최저생계비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빈곤선 구실을 한다. 실업·장애·노령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 가구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이 됐을 때 국가가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다. 이는 누구나 최저생계비 정도의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 최저생계비는 무엇일까? 법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최저생계비를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최저생계비는 하루하루 생존 수준으로 가난을 버티며 살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버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체험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무모하고 한계가 많았던 체험이 최저생계비 현실화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한겨레> 2010년 8월2일자 기사를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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