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3-10   743

분권화의 딜레마

분권화 문제는 새 정부의 초반 핵심 정책이슈의 하나로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방자치제 부활 후 10년을 넘어섰고 민선 단체장 3기가 시작된 즈음인데, 지방자치는 무늬뿐이며 중앙집권 현상은 모양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시각이 비등하고 있다. DJ 정권 후반기 이후 각계 지식인을 포함하는 시민단체는 물론 일부 지방의 시도지사들과 의회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연대조직의 결성과 자치헌장 선언 등이 이어졌고,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분권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해왔던 터이다.

분권화의 의미는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 하나는 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인 자치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자치적인 조직·행정·재정·인사 등이 이뤄짐으로써 중앙에 예속되어 위임된 사무를 집행하는 수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행의 지방이양촉진법이 아닌 한시적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하고, 중앙정부 관료 중심의 지방이양위원회가 아닌 개혁적 지방인사를 대폭 포함하는 지방분권 특별위원회가 조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자치경찰제 도입, 교육자치제 개선,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시도 통합 주장과 함께 국세 일부의 지방세 전환에 대한 요구도 이슈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일본은 6:4인데 우리 나라는 8:2이고, 연평균 세수증가율은 국세가 8%대지만 지방세는 3% 수준에 머물러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국세로 돼 있는 양도소득세·증여세·상속세·주세·부가가치세를 지방으로 이전시키고 법인세 일부도 지방세로 활용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하나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지역내총생산(GRDP)을 비롯한 지방의 재정확보 기반에 기복이 크기 때문에 자칫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지방교부세율의 대폭적인 상향조정, 지방양여금의 확대, 포괄적 국고보조금제도로의 전환 등이 있긴 하다. 취약한 지방재정 보강책으로 지자체들이 카지노를 비롯하여 경마·경정·경륜에 전통 소싸움까지 각종 사행산업에 눈을 돌려 재정보강에 혈안이 되고 있는 현실도 수용여부를 둘러싸고 견해가 엇갈린다. 이것도 딜레마이다.

사회복지 부문의 경우를 보자. 지방자치법은 주민의 복리 및 생활편의와 직접 관련된 사무는 시·군·자치구에 우선적으로 배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지자체가 권한에 상응하는 재정부담을 해야 할 경우 한정된 재정부담 능력 때문에 문제에 부딪힌다. 현재 일부 군 지역이 10%대의 매우 낮은 재정자립도를 보이는데, 기초자치단체가 지금처럼 적지 않은 사회복지 서비스 관련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일부는 도의 폐지를 주장하지만, 기초자치단체간의 심각한 부담능력 차이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도 단위의 부담의 분산이 필요하다. 분권화의 이상과 재정부담 능력이란 현실 사이의 딜레마는 여기에도 있다.

분권화의 다른 하나는 수도권 집중현상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서울은 모든 지방의 돈과 사람과 자원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블랙홀로 일컬어진다. 정치나 행정뿐 아니라 경제·문화·교육·언론·정보를 포함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수도권 집중이 갈수록 심화됨으로써, 비수도권 지방이 고사 직전의 상황에 몰리고 있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다. 인구의 47%, 금융거래·조세수입의 70%, 30대 대기업 본사의 89%가 서울에 있고, 수능성적의 최상위 5% 중 60%가 서울에 몰리며, 이른바 명문대는 대부분 서울에 편중해 있다. 지방에 살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80.5%란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권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어야 하고, 법 제정을 통해 균형발전을 이루어 지방을 살려야 나라의 경쟁력이 커진다고 보는 것이다.

보건과 복지의 부문에도 수도권 편중현상이 없지 않다. 몇 가지 예만 들더라도, 종합병원의 41%, 사회복지관의 40%,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43%가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인구비중에 비해 낮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런 사고는 집중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다. 국립 특수학교와 학급은 모두 서울과 경기에만 있고, 기타 웬만한 국립 시설의 설립은 서울이 우선인 점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주요한 조직의 핵심들이 수도권에 집중한 관계로 웬만한 회의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회의 한 번 참가하는 것도 힘들어 결정권을 위임하기가 일쑤이다. 이 모든 집중현상을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해소하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능력을 의심하고, 중앙의 민간 사회복지 조직은 지방조직의 자율적 운영능력을 불신한다. 그래서 단체사무의 73%가 중앙위임사무이며, 지방 공동모금회는 독립법인이었다가 몇 개월만에 중앙회의 지회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자치능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키워질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함량미달의 숱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직무와 관련한 각종 비리로 법정 구속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음으로써, 자치권 강화의 명분을 약화시키면서 딜레마의 일인이 되고 있다. 주민발안이나 주민소환과 같이 지방의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주민권한의 강화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지방에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담당할 복지법인 설립 능력을 갖춘 재력가가 적고, 인재 풀도 빈약해서 시민운동에도 애로가 많다. 이 점도 딜레마이다.

이처럼 분권화는 선택이 아닌 필사의 조건이라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딜레마가 적지 않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여하튼, 이처럼 분권화를 향한 ‘지방의 반란’이 일고 있는 지금 수도권 인사들은 어떤 심정인지 궁금하다.

감정기 / 경남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kamjk@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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