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10-15   636

[동향2] ‘거래 활성화 만능주의’에 빠진 부동산대책

 

‘거래 활성화 만능주의’에 빠진 부동산대책

 

조명래단국대학교 교수, 환경정의 공동대표

 

1. 주택정책을 둘러싼 갈등

어쩌다 ‘집은 있어도 원수, 없어도 원수’가 된 시대가 되었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대출이자와 집값 하락으로 힘들어 하고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치솟는 전월세를 맞추느라 허리가 휜다. 이렇다 보니 모두가 정부의 올바른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해법에서는 천양지차다. 한국일보(2013.8.21.)의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소득이 안정적이고 장년층이 많은 유주택자들은 거래활성화를 통한 주택경기 부양을 주문하고 있는 반면, 소득이 불안정하고 청년층이 많은 무주택자들은 전월세 거주자를 위한 지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집을 적당한 가격에 팔아야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년층과 달리 청년층은 좀 더 저렴하게 집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여건을 개선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이러한 견해 차이가 갈등구도로 빠르게 굳어가고 있다. 가령, 전월세난에 대해 유주택자들은 주택거래가 막혀 전월세 수요가 급증한 결과로 보지만, 무주택자들은 다주택자들이 많은 기성세대가 전세금을 올리고 월세로의 전환을 유도한 결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기성세대-젊은세대, 소득 안정계층-취약계층, 유주택자-무주택자, 임대인-임차인 사이의 대립이 중첩되어 있어 사회적 갈등으로 쉽게 확장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정부가 주택소유계층과 전월세난을 겪는 세대 간의 요구사항을 수렴하는 해법 도출에 실패’한 까닭이 주요 인자로 작용했다. 말하자면, 어느 한쪽에 손을 들어주는 정책의 편향성이 지금의 주택문제 상황을 초래한 주요 원인자란 뜻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반복되고 있는 전월세난에 대해 정부의 대책은 시종일관 ‘거래활성화’에 초점을 둬 왔던 게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의 20차례의 주택대책이 그러했고 박근혜정부의 4.1대책과 8.28대책도 그러하다.

 

물론 정부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억울해 할 것이다. 거래 활성화가 전세수요를 매매시장으로 흡수하게 되면 매매도 살리고 전월세도 잡는 일거양득의 해법이라고 정부는 굳건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선의를 받아드려도, 정책당국의 현실 진단(거래침체로 인한 전월세 수요 급증)은 너무 단순했고, 그런 만큼 대책도 단순하여 편향성을 띨 수밖에 없음은 부인할 수 없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거래 활성화’가 되면 과연 모든 게 풀릴까? 그렇다면 반복적인 대책에도 불구하고 거래활성화가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거래 활성화를 무리하게 했을 때 그 후유증은 없을까? 매매시장의 거래 활성화가 임대차시장의 안정화로 곧장 이어질 정도로 두 개의 시장은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을까? 조금만 곱씹어 보면 많은 질문과 의문점이 제기될 수 있지만 정부는 이 모든 걸 생략한 채 ‘(매매시장의) 거래 활성화’ 카드 하나에 지독할 정도로 매달렸다. 편집증과 같은 이 현상을 ‘거래활성화 만능주의’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2. 시장의 자기조정이냐, 시장의 비정상화냐?

 

한국에만 있는 전세는 임대하는 방식이면서 집을 소유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전세 끼고 집을 사거’나 ‘전세가가 매매가의 60%이상 되면 매매로 돌아서’는 전세의 메커니즘은 소유(매매시장)와 임대(임대시장)를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집을 사고 파는’(매매주택의 거래) 가운데 ‘전세 주택의 방출’(임대주택의 공급)은 전세제도가 이른바 필터링다운(filtering-down, 상위계층에서 하위계층으로 주택점유기회의 확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방증해 준다. 매매주택의 거래를 통해 전세주택 등이 부수적으로 생겨나는 덕분에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소홀히 할 수 있었다. 주택공급이 늘고 매매거래가 활발해지면 전월세 문제도 일정하게 해결되었던 게 그간의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가능성은 집값의 지속적 상승, 그리고 그에 대한 기대다. 고도성장에 의해 경제전반이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그에 따른 토지주택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동안, 이 기대는 늘 실현되었다. 말하자면 거시경제 활황의 한 축으로서 주택시장이 활황을 이루는 동안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은 선순환적 관계에 있었다. 이는 지난 40여 년간 지속된 고도성장기 동안 한국 주택시장이 실제 작동해 온 모습이다. 그러나 1998년 IMF위기를 겪으면 한국경제(실물경제)는 고성장의 에너지를 잃은 채 저성장기로 접어들었고, 부동산경제는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저성장기로 접어들었다. 2006년 최고조에 달했던 연간 108만의 주택거래건수는 2012년 말 73만 건으로 30% 줄었고, 주택가격(07년 말-12년 말)은, 서울에서 8.5% 감소(아파트기준)했지만, 전국적으로 0.5% 오르는데 그쳤다. 거래감소와 가격상승의 둔화(혹은 가격하락)는 고도성장기의 과잉 팽창된 시장이 스스로 추슬러 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두고 정책당국은 ‘침체’, ‘위기’, 급기야 ‘시장의 비정상’으로 ‘진단’함으로써 시장회복 혹은 거래회복을 부동산대책의 지상최대 과제로 삼게 되었다. 2007년 수준으로 주택거래를 되돌려 놓는 것을 겨냥한 4.1대책은 그 전형이다. 이렇게 진단하고 처방한 것은 정책당국이 시장 기득권자의 위기감을 주로 의식했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기 동안 팽창된 공급구조에 여전히 갇혀 있는 업계나 빚을 지고 주택을 매입한 유주택자들에게 거래감소와 가격하락은 일터와 자산을 잃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서민의 고통을 넘어 국민경제의 불안요인으로 확대 해석되면서 정부에 대해 특단의 대책 강구를 요구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쉽게 부응했던 것은 주택행정의 인적 구조나 제도가 주택의 대량생산과 공급에 맞추어왔던 것과 무관치 않다. 어떤 경우이든, 고도성장 이후 시장의 하향 안정화를 ‘시장의 비정상’으로 진단하는 것은 활황기의 시장을 정상으로 볼 때만 가능한 것이다.

 

3. 전월세난을 부추긴 거래 활성화

 

 ‘거래감소와 가격하락’을 시장의 비정상으로 판정하고 매매주택 중심의 거래활성화에 올인(all-in)하는 정책의 선택은 변모하는 ‘시장상황에 대한 오판과 정책의 편향성’에 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거래활성화는 주택산업을 살리고 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중산층 붕괴를 막으며 국민경제에 활력을 넣는 긍정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기에 과거 활황기로 되돌리려는 거래활성화는 그 부정성도 적지 않지만 이를 너무 쉽게 간과하거나 무시해온 점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이명박 정부 때부터 거래활성화 중심의 대책이 반복적으로 시행되면서 정책의 편향성과 왜곡은 더욱 깊어갔다.

 

(오판에 의거한) 매매주택 중심의 거래활성화 대책이 동반한 부정성은 시장위축의 흐름을 반전시키지 못하면서 오히려 시장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보냈을 뿐 아니라 정책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을 초래했다. 가령 거래회복을 위해 취득세의 한시적 감면 대책을 반복적으로 실시했지만 주택거래는 2006년 108만 건에서 2012년 73만 건으로 지속적으로 줄었다. 한시적 감면으로 인한 반짝 거래는 백화점 세일 때 고객이 많이 찾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에 불과했다. 주택거래의 경향적 감소는 과열된 시장이 거시경제의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를 조정해가는 과정으로서, 협소한 주택대책으로 그 경향을 반전시킬 수 없다. 무리한 반전 시도는, 즉 인위적인 부양대책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만 주어 시장실패를 결국 불러올 뿐이다. 각종 금융 및 세제 규제를 완화해 집을 사도록 부추겼지만, 이는 거래의 미미한 증가로 끝나고, 가계부채의 급증으로 인한 국민경제의 불안정, 하우스푸어의 양산, 그에 따른 가격의 추가하락(나아가 주택매매 기피)이란 후유증만 크게 남겼다. 시장의 실제 반응이 이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활성화대책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예, 국회에서 법 개정의 지연) 정부는 강도가 높은 추가 대책들을 계속 쏟아냈다. 그와 비례하여 정책의 왜곡과 편향성은 더욱 깊어갔다.

 

가령,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중심으로 거래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매매주택 혹은 소유주택의 매입과 처분 등을 쉽게 하는 대책에 집중했다. 그 결과, 임대주택의 안정적 공급이나 임대료를 적정하게 유지하는 등의 임대차 시장의 관리를 자연히 소홀히 했거나 방치했다. 그것도 오래 세월동안. 세입자 지원 방안이 줄곧 제시되어 왔지만, 이는 기껏해야 매매주택 중심 거래활성화 대책의 부수적이거나 보완적인 것에 불과했다. 임대주택의 공급부족과 전세가 급등으로 그려지는 전세난은 이렇게 보면 매매주택 중심의 거래활성화란 정책 편향성이 초래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매매시장 활성화를 통해 전월세문제를 잡겠다는 모순적인 8.28 대책을 또 다시 내놓았다. 전세수요를 매매시장으로 끌어들인다는 명분으로 매매수요를 저인망식으로 훑어 내는 극단적인 처방도 제시되었다. 국민주택기금에서 대출되는 초저리 장기 모기지(수익공유형, 손익공유형 모기지)가 그러하다. 시장의 반응이 뜨겁지 만, 기실 매매시장을 살리는 정부의 조바심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대책으로 왜곡과 모순이 적지 않는 제도다. 

 

생애최초주택구매자는 지금의 전월세난을 야기한 주 원인자가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입자들의 90%가 주택매입을 꺼리는 상황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에게 전례 없는 초저리의 장기모기지를 대출해주면서까지 집을 사도록 해야 하나? 생애최초주택구매자에 대한 혜택은 기존 대책(예, 4.1대책)에서도 이미 충분히 제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사회적 기금이라 할 수 있는 국민주택기금을 유례없는 파격적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고 가격하락 시 손실까지 정부가 부담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거래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면 이러한 모기지 제도는 민간금융기관이 시장원리에 맞게끔 개발해 제공해야지, 공적재원과 진배없는 국민주택기금으로 운용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가격의 정체내지 하락이 예견되는 상황에 무리한 대출에 의한 주택매입은 미래의 하우스푸어를 정부가 양산하고, 가격하락에 따른 손실금 누적으로 국민주택기금의 고갈을 정부 스스로 불러올 수 있는 위험도 적지 않다. 부족한 공공주택의 공급재원으로 국민주택기금을 우선 사용해야 할 기회를 가로막는 자원배분의 왜곡 문제도 가볍지 않다. 민주적 공론화를 제대로 거친다면, 결코 쉽게 도출될 수 없는 대책이다. 이 모두는 거래활성화만 고집함으로써 나타나는 정책의 편향성과 왜곡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4. 거래 활성화의 꽃, 다주택자는 ‘안전한 전세주택’ 공급자다?

 

8.28대책이 전월세란 해결을 위한 거래활성화 대책이지만, 실제 역점은 집을 살 수 있는 자들이 더 쉽게 사도록 하는 데 또다시 주어지고 있다. 무주택자나 최초생애주택구매자는 그런 점에서 기껏해야 조연이거나 들러리다. 여유가 있지만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거나 보유에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고가 전세가 기실 전세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전세주택 품귀를 초래하는 주범임을 주목하면 그렇다. 그렇게 해서 정부(그리고 정부를 돕는 시장전문가들)는 거래 활성화의 선도자로 다주택자를 주목해 왔다. 여유를 가진 다주택자들이 구매에 나서고 보유한 주택을 전세주택으로 내놓으면 전월세난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철폐를 거래활성화를 위한 4.1대책의 핵심으로 이미 제시했다. 8.28대책에서는 이에 더해 취득세 영구인하 방안이 제시되었는데, 다주택자에게도 1주택자와 같은 인하 취득세율을 적용하기로 함에 따라, 다주택자가 결국 최대수혜자가 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의도한데로 된 것이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주택이 ‘안전한 전세주택’으로 방출될 것이란 보장은 전혀 없다. 임대료 상승을 막을 수 있는 유인책이 전혀 없는 현실에서 임대인으로서 다주택자들은 집값 하락을 벌충하거나 부채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전세가를 높이거나 수익률이 높은 월세를 강요할 개연성은 너무 크다. 또한 계약기간이 끝나면 임대료를 올리기 위해 임차인을 바꿀 개연성도 너무 크다. 실제 시장에서 전세의 고가화와 월세로의 빠른 전환이 다주택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임대인 중심의 임대차 시장에서 매매활성화를 통한 임대주택의 방출이 자칫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는 것도 문제려니와, 실제 임대주택이 신규로 얼마만큼 공급될 지도 의문이다. 다주택자들이 매입하는 주택은 신규주택이거나 기존주택이다. 미분양적체에서 보듯이, 가격하락에 대한 우려 등으로 신규주택 구입에 쉽게 나서지 않는 것은 다주택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목 좋은 데 있는 기존주택을 구입하는 것을 선호할 텐데, 이 경우엔 전세월주택의 추가공급 여지가 그렇게 크지 않는 한계가 있다. 주택을 처분하고 다른 주택을 구매하지 않는 한, 기존 소유자(예, 하우스푸어)는 결국 세입자가 되어 임대주택의 추가 수요를 낳는다. 세입자들이 사는 주택을 매입하면, 임대주택의 추가공급 효과는 제로가 된다. 다주택보유가 쉬워지면, 장기적으로 주택의 소유 집중이 초래되어 저소득 무주택자들의 주택매입기회가 그 만큼 줄어드는 문제도 있다. 다주택자에 의한 ‘안전한 임대주택의 방출’이 현실에서 그만큼 제한적이고 자칫 왜곡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거래활성화 만능주의의 시각에서는 이 모두가 놓쳐지고 있다.

 

OECD국가 중에서 한국은 주거불평등이 가장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소득 지니계수는 2000년 0.39에서 2010년 0.46(0.4넘으면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소폭 높아진 반면, 부동산 자산 지니계수는 같은 기간 0.62에서 0.70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부동산자산 지니계수가 소득 지니계수 보다 훨씬 높은 것은, 소득이 낮아질수록 주거수준이 더 급속히 열악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다주택보유에 대한 규제를 풀면, 악화되고 있는 주거 불평등 혹은 자산불평등은 더욱 악화되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그 만큼 해치게 된다.

 

5. 거래활성화와 역행하는 ‘임대중심의 시장거래’

 

매매주택중심의 거래 활성화 대책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전 방위적으로 실시되었지만, 부동산시장의 흐름은 오히려 이와 거꾸로 갔다. 지금 시장에서 주택거래는 매매에서 임대 중심으로 반전되어 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시절, 6대 4의 비율로 매매 비중이 컸지만, 지금은 2대 8의 비율로 임대가 압도적이다. 2013년 5월 기준으로 전국에서 거래된 주택 가운데 매매는 14.7%에 불과했지만 임대는 84%에 달했다. 주택거래 10건 중 2건만 매매고 8건은 임대다. 임대 중에서 월세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주택거래가 임대중심으로 바뀐 것은 그동안 팽창된 매매시장의 선순환구조가 깨지면서 생긴 반사효과다. 주택보급률 100% 초과, 계속된 공급중심정책으로 인한 주택의 상대적 과잉 공급, 주택 구매인구의 감소, 국민 90%가 여전히 높다고 여기는 주택가격, 실물경제 위축으로 인한 실질 소득의 감소(구매력 감소), 점증하는 가계부채의 부담, 조정에 의한 가격의 추가 하락우려, 시세차이 기대의 상실 등으로 인해 매매시장의 내부 순환 고리가 끊기면서 위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매매시장에 대한 참여를 기피하는 주택 소비자들은 임대시장에서 대체주거를 찾고 있고, 집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수익창출로 발 빠르게 연결 짓고 있다. 임대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고도성장기 주택시장이 스스로 조정해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임대중심으로 바뀐 부동산 시장이 매매중심으로 다시 재편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임대 비중이 급속히 커져서 부동산 시장이 역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떠한 매매거래 활성화대책을 내 놓아도, 무주택 세입자들이 이에 쉽게 참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매매시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절대다수의 차가(借家) 가구는 결국 임대차 시장에서 주거안정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의 대책이 매매시장 활성화에만 맞추어져 있어 각종 정책혜택이 여기로만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재산권자인 임대인이 지배하는 임대차 시장에서 임차인은 주거적 삶을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임대인의 재량에 스스로의 주거안정을 맡겨야 한다. ‘안전한 임대주택(공공임대주택 포함)의 절대부족’, ‘임대료의 지속적 상승 압력’, ‘계약연장을 협상할 수 없는 임차인의 취약한 권리’, ‘등록이나 과세 의무를 지지 않는 비공식적인 임대차 관행’ 등으로 임차인의 안정적 주거적 삶은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 동안 임차인들은 전세를 잠시 거쳐 가는 것으로만 여겨 주거불안의 고통을 감내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가구가 임대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지금에는, 재산권자를 보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주거권자(세입자)도 제도적으로 보호받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임차가구는 전체가구(1773만 가구)의 46%인 820만 정도가 되는 데, 이중 제도권 임대주택에 사는 150만 가구를 제외한 670만 가구는 민간임대에서 제도적 보호막 없이 살고 있다. 자가(自家) 가구의 4분의 1이 차가(借家)에 사는 걸 고려하면 전체 가구의 6할 정도가 임대로 살고 있지만, 임대인에 맞서는 임차인의 보호는 사실상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대시장은 사실상 블랙마켓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OECD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자가 보유율이 가장 낮고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가장 적을 뿐만 아니라 민간임대주택의 사회적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최악의 나라’에 속한다. 매매주택시장 활성화에만 올인 해 온 결과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주택대책은 매매주택 활성화에만 변함없이 매달려 있다. 8.28대책에는 세입자를 위한 대책으로 월세소득 공제율 확대(50%->60%, 300만원->500만원), 전세·매입 주택 2만3천호 공급, 전월세대출금 한도 확대(5600만원->8400만원), 임차인을 위한 우선변제금 한도확대(2500만원->3400만원), 주택 바우처(약 월10만원 상당) 제공 등이 제시되어 있다. 이런 처방으로는 가구의 6할에 해당하는 임차가구의 주거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 임대인 중심의 임대차 시장에서 이러한 혜택은 그나마 임대인 이익보전을 위한 것으로 오용될 수 있다. 가령, 임대주택 공급이 제한되어 있고 임대인이 세원노출을 꺼리는 상황에서 전월세 대출금 한도 확대나 월세소득공제는 결국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너무나 크다. 우선변제금 한도확대나 주택 바우처 제공은 실제 혜택 대상자가 적을 뿐 아니라 혜택규모도 너무 적어 그저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6. 매매 시장 활성화에서 임대차 시장 안정화로

 

세입자의 전월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정책의 의도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거래활성화를 통한 전세수요 흡수’란 진단의 오류와 그로 인한 정책의 편향성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의 편향성으로 인한 정책 효과의 왜곡, 다른 쪽 정책 대안을 배제함으로써 정책의 상대적 피해 집단을 양산할 수 있는 게 매매주택 중심 활성화 대책의 맹점이 아닐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월세 상한제 반대다. 매매주택 거래활성화를 지지하는 입장은 공급자, 유주택자, 임대인 중심의 시장관행을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로 한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전월세 상한제는 재산권자인 임대인들이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고 계약조건을 유리하게 유지하는 등을 어렵게 하는 방해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면, 이들은 4년 치 전세 값을 한꺼번에 올리고 집 세놓기를 일정기간 거부하는 등의 집단행동을 취할 뜻도 은근슬쩍 내비치고 있다. 이렇듯 재산권자들은 시장을 왜곡시켜 전세난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를 내걸고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지독할 정도로 반대하고 있다. 집 있는 사람이 주도하는 거래활성화와 집 없는 사람을 위한 전월세 상한제는 마치 양립할 수 없는 영원한 대립 쌍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는 사실상 블랙마켓과 같은 한국의 임대차 시장을 ‘정상시장’으로 간주될 때만 유효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임대료는 방임적인 시장임대료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정책과 제도규준에 의해 규율되는 여러 유형으로(예, 시장임대료, 정책임대료, 복지임대료, 적정임대료, 공정임대료 등) 나뉘어 운용되고 있다. 선진국의 임대료는 대개 헌법이나 민법 등에 보장된 재산권자(임대인)와 주거권자(임차인)간의 대등한 협상과 타협의 결과로 책정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영국의 ‘물가연동 공정 임대료제(민법에 기반)와 임대료 조정제’, 프랑스의 ‘건축비 상승분 80% 이내 임대료 인상 상한제와 임대인-임차인협의체를 통한 임대료 조정제’, 독일의 ‘지역별 차임제(’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임대료 인상액 상한제, 민간임대주택의 경우 3년간 20% 이내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 등은 시장 질서를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회적으로 규율되는 임대료 제도의 예들이다. 

 

시장물가나 은행이자율 등과 연동된 적정 임대료 혹은 공정임대료 개념의 전월세 상한제는 민법에 보장된 임대인과 임차인의 대등한 관계를 반영하는 시장거래가격에 가깝다. 이런 경우, 전월세 상한제는 시장 원리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전월세 상한제가  적절히 운영되면 전월세란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전월세가의 급등을 단기적으로 잠재우고 장기적으로 예측가능하게 유지함으로서 가구의 6할에 해당하는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규칙화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성이 있음에도 시장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 기초한 거래활성화 만능주의 관점에서는 전혀 주목도, 검토도 못 받고 있다. 긍정성을 인정한다면, 그 효과를 거양하기 위한 보완방안들은 무수히 많지만, 반시장적이란 이유 하나로 이 모두가 기각되고 거부되어 왔다. 이 또한 거래활성화 만능주의가 갖는 정책적 폐해의 극명한 예가 된다.

 

최근 한 방송사(SBS, 현장 21)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76.5%는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대해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주인도 73.4% 찬성했고, 세입자는 82.5%가 지지했다. 그렇다면, 전월세 상한제 반대론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반대를 할까? 전월세 상한제가 전월세난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지 않는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능사가 결코 아니다. 재차 강조하는 것은 매매주택중심의 거래활성화에만 매달림으로써 이와 배치되는 전월세 상한제와 같은 정책대안이 갖는 긍정성이 전혀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택시장은 이미 임대거래 중심으로 바뀌어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는 어떠한 매매주택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도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역전시킬 수 있는 부문은 극히 제한적이다. 매매주택거래 활성화만으로는 임대차시장 불안정에 의해 야기되는 전월세난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전월세 대책은 매매시장으로 옮아가지 못하는 절대다수의 가구(6할)가 임대차시장에서 안정된 주거적 삶을 살도록 직접으로 돕는 것이 돼야 한다. 안전한 임대주택의 공급과 적정 수준의 임대료 유지는 임대차시장 안정화를 돕는 핵심 장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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