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7-01   2191

[동향1] 간병살인, 거대한 상식의 전환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 기자

그날 대구고등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양영희)는 꽤 여러 사건을 선고했다. 성폭력사건이 대다수였고, 22세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가명) 선고는 맨 마 지막에 내려졌다. 이슈의 중심에 선 사건, 대선후보는 물론이고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언급한 형사사건의 주인공.  재판부는 이런 사건을 대개 맨 마지막에 선고한다. 보는 눈이 많으니 판결문도 길게 꼼꼼하게 읽는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재판부는 강도영에게 존속살해죄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021년 11월 10일의 일이다. 그날 법정에 앉아 판결을 듣는 내내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영케어러에게 존속살해 죄를 적용한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다. 

내 얼굴은 이 대목에서 붉어졌다. 

“2021년 5월 1일부터는 아예 마음을 굳게 먹고 아버지를 죽일 생각으로 아버지가 있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그 시간에 술을 먹거나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였는데, 멀쩡하게 대화를 하고 친구들이랑 술 약속을 잡고, 여자 이야기를 한 것이 지금 자신이 봐도 너무 후회스러우며,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입원 중일 때 삼촌 권○○이 생계지원, 장애 지원 등을 받으라며 관련 절차를 알려주었지 만, 기본적으로 게으른 성격이라 주민센터 등을 방 문하거나 지원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없다.”

피고인 강도영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은 이렇게 고스란히 판결문에 담겨 비난과 질책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거동할 수 없는 아픈 아버지가 안방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혼자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니. 카톡으로 여자 이야기를 하고 술 약속을 잡다니.

다음 내용도 마찬가지다. 삼촌은 분명 관청을 찾아가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강도영은 스스로 “게으른 성격이라서 지원받을 노력을 하지 않고” 결국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내용만 보면 세상에 이런 패륜아도 없다. 상황과 맥락을 제거한 채 판결문의 저 대목을 보면, 딱 그렇게 읽힌다. 아버지가 죽어 가는데, 술 약속을 잡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재판부도 딱 그 ‘상식’의 범주에서 판단하고 질책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세상의 상식’이 폭력이고,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 벽이다. 가족 간병 책임에 내몰린 사람들, 일명‘독박돌봄’에 내몰린 사람들은 그 상식과도 싸워야 한 다. 간병살인 문제는 ‘그 죽일 놈의 상식’을 전복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강도영 사건’을 모르는 독자를 위해 사건 개요부터 시작해 보자. 강도영의 아버지는 공장노동자로 근무하다 2020년 9월 목욕탕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병원 측은 유일한 가족인 강도영(당시 21세)에 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비용은 많이 나오지만 아버지 생명을 살릴 가능성이 높은 수술을 할래요, 아니면 값은 싸지만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시술을 할래요?”

군 입대를 앞둔 대학 휴학생으로 경제력은 없지만, 아들로서 강도영은 전자를 택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생명을 지켰다. 다만 몸 대부분이 마비된 채, 영양 섭취와 대소변 처리까지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태로 깨어났다. 

아버지는 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약 8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간병비 포함 약 2000만 원이 강도영에게 청구됐다. 삼촌이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아 이걸 처리했다. 삼촌도 더는 돈을 댈 수 없는 처지로 몰렸다. 결국 강도영은 2021년 4월 23일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강도영은 이때 이미 도시가스, 휴대전화, 인터넷이 모두 끊긴 상태였다. 월세도 밀렸다. 쌀도 떨어져 2만 원을 타인에게 빌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쌀도 없고, 월세도 밀리고, 가스와 통신도 끊기고…. 아버지의 똥, 오줌을 치우고 2시간마다 자세를 고쳐줘야 하고 그 와중에 돈을 벌어와 밀린 월세를 해결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고. 슈퍼맨도 못할 이 일을 강도영도 당연히 못했다. 강도영은 아버지를 5월 1일부터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런 와중에 친구들과 메신저로 수다 떨고 게임을 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세상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버지가 죽어가는데 게임을 해? 강도영에겐 이게 ‘상식 내’ 행동이었다. 이유가 있다. 그는 친구들에게 “아버지 기저귀를 내가 갈아줘야 하고 지금 쌀 값도 없다”는 그 처지를 말하지 않았다. 가난은 권장 사항도 아니고, 날마다 ‘OOO 연예인 수십 억 럭셔리 아파트’ 같은 뉴스 아닌 뉴스가 인터넷을 도배하는 세상에서, 월세 밀린 처지는 그야말로 ‘최악의 쪽팔림’이었다. 22세 강도영에게도 그 정도 허영 혹은 자존심 같은 게 있었다.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게임 하자”는 이야기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 처지를 숨겼으니, 평소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게임을 했다. 여자 이야기도 했고, 때로는 이런 이중생활이 괴로워 혼자 방에서 술을 마셨다.

혹자에겐 상식 밖이겠지만, 쌀값 2만 원도 없어 극도의 우울과 무기력에 빠진 그에겐 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주민센터에 가서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가난을 입증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이 제일 싫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린 보편적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주민센터에 가서 말하면 다 들어 준다는 보장도 없다. 가족 동반자살 같은 일이 왜 벌이 지겠나.

누군가에겐 행정 관청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는게 식은 죽 먹는 것 마냥 쉽겠지만, 어떤 이에겐 살 떨리게 무섭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말은 입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다. 들어주는 귀가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입을 연다. 한국 사회가 가난하고, 장애가 있고, 상대적으로 학력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준 적이 있던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듯 묻는 건,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하지 않 아도 되는 사람들의 문제적 말버릇이다. 말이 말처럼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게 문제이듯이, 저 질문은 ‘가난한자다움’을 요구하는 폭력이다. 

주민센터를 찾아가 조리 있는 말로 가난을 입증하고, 아버지의 처지를 조리 있게 설명하는 22세 청년. 또 이걸 민원인 처지에서 귀담아 경청하고 어떤 복지서비스가 있는지 친절히 안내하는 공무원…. 이런 완벽한 풍경은 유감스럽게도 판타지에 가깝다. 

게다가 강도영은 장애인진단에 필요한 병원비 5만원도 없었고, 아버지를 병원까지 모시고 갈 구급차 비용도 없었다. “내가 게으른 성격이라 도움 요청을 못했다”는 강도영의 말은 죄책감에서 나온 자책이었다. 나의 상식으로 만 세상을 보면, 타인의 행 동은 대부분 ‘상식 밖’이다.

강도영 사건 1심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피고인(강도영)은 민법상 피해자(아버지)를 부양 할 의무가 있는 피해자의 아들로서, 더 이상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인하여 OO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피해자를 퇴원시켜 2021. 4. 23.경부터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홀로 피해자를 돌보게 되었다. 피고인은 퇴원 과정에서 굿모닝병원의 의료진으로부터 소변통을 비우는 방법, 경관으로 물, 음식, 약을 주입하는 방법, 기저귀를 갈아 주는 방법 등을 안내받았다. 그와 같이 안내 받은 사항들을 잘 이행하여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를 돌볼 책임은 피고인에게만 전적으로 맡겨진 상황이 었다.” 

민법 제974조에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부양 의무가 있다고 나온다. 쉽게 가족에겐 서로를 부양할 의무가 있고, 강도영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거다. 이 역시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상식만 들이민다면, 요즘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빈번한 비극 – 간병살인, 발달장애인 자녀에 대한 부모 살인, 장애인 자녀 살인 후 자살 – 해결이 난망하다. 다시 강도영 사례를 보자.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건 강도영의 책임이 맞다. 윤리와 도리상 그렇고, 법으로 봐도 그러하다. 강도영도 이 굳건한 상식을 지키려 했다. 그 윤리와 도덕과 법을 지킬 사정이 되지 않았음에도 모두 자기 몫이라고 여겼다. 그 생각 탓(법도 그렇다)에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다가 결국 살인자가 됐다.  

민법 해당 조항의 위헌, 혹은 법 개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돌봄의 사회화, 돌봄국가 책임을 고민하고 이걸 제도화하려면 ‘가족은 가족 책임’이란 그 굳건한 상식이 흔들려야 한다. “네 부모 아픈 건 네가 책임져야지!”라는 생각이 강하면 영케어러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들은 막강한 효자 아니면 패륜아가 돼야 한다.  

우리가 믿고 떠받드는 그 상식이 전복되지 않으면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지옥은 이 땅에서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생각도 아니다.

사실 상식은 늘 변했다. 누군가는 “호주제가 폐지되면 우리 사회는 개돼지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 40~50대에게 몽둥이 없는 학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 만, 지금은 몽둥이 휘두르면 그 자체로 야만이다. 아이 양육은 온전히 여자의 몫인 게 상식인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그런 상식 밖 생각을 하면 큰일 난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는 상식을 넘어서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부모를 살해한 자식을 가중처벌하는 건 합당한 일일까? 우리의 상식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근데 이거 아시는지 모르겠다. 존속살해죄를 가중처벌하는 나라는 전 세계 주요 국가 중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우리와 같은 법이 있던 일본은 최근 해당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강도영 상고심을 맡았던 변호인단은 최근 해당 법 조항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위헌 결정이 나오면 강도영은 재심을 청구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간병에 실패한 청년을 징역 4년으로 응징한 오늘의 상식이, 내일은 야만적인 일의 예로 거론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상식은 진리가 아니며 늘 변화한다. 간병살인을 막으려면 ‘간병은 가족책임’이란 상식부터 의심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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